'왕릉뷰 아파트' 58m 나무 심으라는데…"200년 키워야 그 크기"

'아파트를 철거하거나, 58m 나무를 심거나.'

세계문화유산인 왕릉 앞에 지어져 경관을 훼손한 신축 아파트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문화재청은 일정 높이 이상의 나무를 심어 아파트를 보이지 않도록 하는 안을 제시했다. 나무 식재 대신 일정 높이 이상으로 지어진 아파트 동을 일부 철거하는 안도 함께 나왔다.


수목 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이같은 나무를 구하기도 어려운데다 비용이 만만치 않아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건설업계 역시 이미 건축이 완료된 아파트를 다시 철거하는 것은 큰 액수의 비용이 들어 건설회사뿐만 아니라 입주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서 철거 여론이 거세지면서 당분간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200년 키우든지 멸종위기종 가져와야"…전문가도 고개 젓는 '58m 나무'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장릉(사적 제202호)에서 인천 서구 검단신도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 사진 = 뉴스1

2019년 착공한 인천 검단신도시의 한 아파트는 오는 2022년 6~9월 3400여 세대가 3개 단지에 입주할 예정이며, 분양이 모두 완료됐다. 그러나 아파트 높이가 반경 500m 안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인헌왕후릉)의 경관을 가리는 높이인 최고 79.5m로 측정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심의 기준은 높이 20m지만 무려 60m 가까이 법령을 위반한 셈이다.

문화재청은 심의 결과 경관을 훼손하는 아파트 동을 철거하거나 아예 안 보이도록 하는 높이의 나무를 심는 대안을 내놓았다. 지난 11일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8일 문화재청에 '왕릉뷰 아파트' 시뮬레이션 결과를 받았다. 이 결과에는 문제가 되는 아파트를 모두 4층으로 만들거나 최소 30m~최대 58m의 나무를 심어 가리는 방법이 담겼다.

문제는 이 높이의 나무가 국내에서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립세종수목원에 따르면 국내에 40m 이상 자라는 나무는 남쪽 지방에 있는 소나무 등이지만, 식생과 기후 등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무 장벽'에 사용하기는 어렵다. 수목원 관계자는 "메타세쿼이아 등 큰 종류의 나무는 자체 증식 기술을 갖고는 있으나 국내 자생종은 아니다"라고 했다.


또 이러한 종류의 나무를 해외에서 옮겨 심더라도 기후가 맞지 않아 나무가 죽을 가능성도 크다. 학계에 따르면 아시아에서 가장 길게 자라는 나무 중 하나인 흑룡강 일대의 잣나무 등은 최소 300년 이상을 살아야 40m 이상 높이로 자란다. 만약 수입해 김포 일대에 식재하더라도 더위와 추위가 공존하는 한국 계절에 적응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자이언트 세쿼이아'라는 길이 100m·무게 2000톤 이상의 세계 최대 크기의 나무가 있으나 무분별한 벌목 탓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적색목록 '위기'에 등록된 멸종위기종이다. 수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할뿐더러 국내에서 이 나무를 심은 사례도 없다.

박필선 서울대학교 산림학과 교수는 "어린 나무 종자를 들여와 200년 이상 키워서 (그 높이로) 만들겠다거나 40m 이상 크기의 나무를 수입해 키운다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라며 "그렇게 큰 나무를 옮겨서 심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일부 철거도 안전 문제로 어려워…"아파트 철거해달라" 청원은 20만 넘어

미국 캘리포니아의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 앞 관광객이 서 있다. / 사진 = 게티이미지

결국 '왕릉뷰 아파트'를 철거하는 방법밖에 없는 셈이지만 이 역시도 비용 등의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문화재청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3개 아파트에서 문제가 되는 20개 동을 모두 4층으로 만들어야 한다. 왕릉이 있는 산의 능선을 기준으로 해도 아파트가 1층에서 최대 19층 이상을 케이크 뜨듯 덜어내야 해 하루아침에 20층 아파트가 1층으로 변하는 셈이다.

건설업계는 아파트의 일부 층을 철거하는 것은 안전 문제와 비용 문제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한 건설회사 관계자는 "현장 담당자가 아니어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공정률이 50%를 넘는다면 일부 층만 철거하는 것은 거의 아파트를 새로 짓는 정도로 비용이 든다"라며 "남은 층이 얼마나 안전할지도 장담이 어려울뿐더러 분양 세대 배분도 힘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아파트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 당분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김포 장릉 인근에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올라간 아파트를 철거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21만 6000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세계에서 인정한 문화유산을 건설사와 지자체의 안일한 태도로 훼손해서는 안된다"며 "철거를 최소화하면서 문화유산 경관을 보존해달라"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