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부 잘하는 경찰보다 사명감 있는 경찰이 필요하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한국은 경찰을 향해 정반대의 비판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경찰의 과잉대응과 지나친 무력 사용이 경찰권의 남용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제기되었고, 'Defund the police'(경찰에 정부 예산을 주지 말라)라고 하거나 심하게는 'Abolish the police'(경찰을 폐지하라)고 주장한다.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살인을 일삼는 경찰은 필요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이유로 경찰을 못 믿는다. 지난 15일 인천 남동구 서창동의 빌라에서는 층간소음 갈등으로 출동한 경찰관이 피의자가 흉기를 휘두르는 현장을 일탈해 피해자가 심각한 부상당한 일이 벌어졌다. 보호받아야 할 스토킹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무고한 여성이 목숨을 잃은 일도 벌어졌다. 믿고 싶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경찰의 미숙한 대응 너머 '무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은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세금을 내고, 그들에게 권한을 위임했지 않나? 그런 경찰이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면 우리는 도대체 누굴 믿고, 어떤 경찰을 필요로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 이제 경찰이 답해야 한다. 이런 사태가 세계적인 무역대국, 경제대국이요 선진 민주국가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대명천지에서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결방안은 없을까.

혹자는 경찰의 기강해이라고 질타하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여경이니 남경이니 하는 해서는 안 될 젠더까지 들먹이지만, 필자의 눈에는 지엽말단에 지나지 않는 원인으로 보인다. 근본적 원인은 경찰이 우리 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경찰인지 묻는 데서 찾아야 한다. 사회와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은 경찰의 사명이다.

여기서 안전이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fear)을 말한다. 우리는 과연 이 같은 경찰의 숭고한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선발하고 채용하고 교육훈련하고 있는가. 직무 적합성이나 직무 수행 능력보다 누가 더 시험성적이 높은지로 가름해 선발한다면 위험하고 힘든 경찰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제돼야 할 사명감과 열정을 가진 경찰관을 선발하기란 어렵지 않을까. 우리는 경찰 업무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히 시험 잘 보는 경찰을 뽑는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나. 그래서 이런 상황까지 오지는 않았을까.


이제는 '시험 선수'가 아니라 경찰 직무에 적합하고 수행 능력과 열정, 사명감을 갖춘 사람을 경찰로 뽑자. 사명감이 투철하고 열정이 충만한 사람에게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걸맞은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자. 경찰 업무는 혐의가 같아도 사건의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강의실에서 교과서로 배우기 힘들다.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불행하게도 신임 경찰이 모든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는 없다. 간접 경험을 통한 학습이 요구된다. 교육과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층간소음이나 스토킹, 사이버 범죄 등 새로운 치안 수요에 맞는 교육 과정을 세워야 한다. 또 세계적인 IT 강국답게 메타버스 등 새로운 교육 방식을 도입해 현장을 간접적이나마 경험하게 하자.

이처럼 경찰 직무에 적합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 출중하며 사명감과 열정이 충만한 경찰관을 선발하라면 또 한 가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경찰관의 선발과 채용 절차를 개선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업무와 별 상관 없는 학과 시험 위주로 뽑을 뿐 부적절한 사람을 솎아내는 제도는 없다. 이를 해소하려면 먼저 지금 우리의 선발제도인 '선 임용, 후 교육훈련'이 아니라 '선 교육훈련, 후 임용'으로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 여기에 수습 기간을 충분히 가져서 스스로 또는 평가를 통해서 부적절한 신임 경찰관을 가려낼 필요가 있다.

또 경찰의 입직 창구를 단일화해 경찰관이 경험할 수 있는 가능한 많은 상황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은 경찰관 입직 창구가 순경밖에 없다. 또 경찰이 승진에 매달리지 않도록 경찰의 계급을 현재의 절반으로 줄일 필요도 있다. 끝으로 경찰이 충만한 사명감과 열정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상도 보호도 필요하다.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이고, 문제 해결도 당연히 사람에게서 찾아야 한다.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서 여타의 직업과 다를 바 없는 '직장인으로서 경찰관'보다 경찰 업무에 적합하고, 그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사명감 충만한 경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