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니스' 역병보다 지독한 내 이웃

'해피니스', 사진제공=tvN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해피니스'(극본 한상운, 연출 안길호)가 이제 단 두 회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광인병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가져다 쓴 이 드라마는, 극단의 상황이 우리의 이웃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의 참상을 보여주며 이기(利己)의 말로에 대한 물음을 내던진다. 현실적 판타지의 공감과 스릴, 결코 빨리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드라마다.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면 '해피니스'는 이렇게 소개돼 있다. 감염병이 일상화된 뉴노멀 시대, 고층을 일반 분양으로 저층을 임대주택으로 나눈 대도시 신축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계급 간 차별과 은근한 신경전을 그린 드라마라고. 맞다. '해피니스'는 스릴러를 가장한 차별을 담아낸 드라마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며, 보는 화마다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회의가 있다. 그렇게 이 작품은 자신들이 표방한대로 이 수식어에 꽤 어울리는 행색을 갖춘다. 평범하지 않은, K-스릴러의 신기원.



최근 한국 드라마는 장르물에 빠졌다. 플랫폼의 범람으로 콘텐츠에 대한 자극의 역치가 높아져서다. 죽은 자들의 축제같기도 한 요즘 드라마들은, 이제 단순히 눈을 뒤집어까고 이를 드러내는 것만으론 그닥 큰 감흥을 느끼기가 어렵다. 판타지의 허상을 넘어선 다른 한방이 필요하다. '해피니스'는 이 한방을 현실에서 찾았다.

'해피니스', 사진제공=tvN

현재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인해 자유로운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백신 접종률이 80%까지 진행된 후 정부에서도 '위드 코로나'를 공표했지만, 이놈의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 집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부정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해피니스' 속 고립된 주민들의 모습은 실제 현실과 다를 바 없어 보여 공감을 넘어 아렸다.



극중 광인병보다 더 소름끼치는 인간의 이기심 역시 가차없이 뼈를 때렸다. 오주형(백현진) 국해성(박형수) 오연옥(배해선) 고세규(김영웅) 지문희(이지하) 등은 인간의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캐릭터다. 그 중에서도 오주형은 광인병을 무서워하기보다 이용하고, 끊임없이 교묘한 술수로 주인공인 새봄(한효주)와 이현(박형식)을 괴롭힌다. 두 사람만 없앨 수 있다면 또 다른 이가 희생되는 것과 상관없이 모두가 마시는 물에 광인병 약을 몰래 탈 정도로 악랄하다. 둘만 없다면 부인을 살해한 증거를 지울 수 있다는 검은 마음 때문이다.


나머지 주민들도 새봄과 이현 덕에 먹을 것을 얻고, 광인병에 걸린 이들로부터 직접적인 보호를 받아도 고마움보단 이기심을 더 드러낸다. 이들 덕에 지켜낸 목숨은 까맣게 잊은 채, 고립된 아파트에서의 자기 처지만 생각하며 두 사람을 계속해서 위험으로 내몬다. 주민이 아닌 입주청소부 고세규(김영웅)은 새봄의 배려 덕에 아파트 내 보금자리도 얻고 식량도 얻지만, 고립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존의 위협을 느끼자 눈을 희번득거리며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한다. 물에서 건져놨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옛말을 퍽 실감하게 한다.

'해피니스', 사진제공=tvN

이렇게만 보면 행복, 행운을 뜻하는 드라마 제목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자칫 고구마 같은 갑갑함만 있는 건 아닌가 할 수도 있다. 허나 이들의 이기심이 있기에 새봄과 이현의 사이다 같은 의협심이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특히 새봄이라는 인물에서 피워낸 행운은 그가 항체를 가진 특별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특별하지 않게 존재한다는 것에서 큰 위로를 준다. 새봄은 존재 자체가 행운이며, '해피니스'는 새봄을 통해 우연히 베푼 선의의 필연적 행운을 시사한다.


그래서 비록 광인병이라는 판타지를 덧입혔다고 하나 나와 내 이웃을 계속해서 대입하게 한다. 현실감 없는 다른 크리처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런 까닭에 뼈맞는 기분으로 드라마를 시청하게 된다. 혼자 편하자고 잊고 살았던 작은 배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다는 말을 신봉하며 살았던 지난날을 돌아보게 한다. 돌이켜보면 세상사의 가장 큰 행운은 사소한 배려에서 왔다. '해피니스'가 베푼 이 친절한 자기 반성의 기회는, 지독한 이웃이 될 수도 있던 우리에게 희망의 행운을 쥐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