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성폭행한 아빠…신고 말리는 엄마…그 아이들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5월 19일 충남 홍성에 거주하는 A씨(42)는 다른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셋째딸 B양(14)에게 야한 동영상을 보여준 뒤 강제로 성폭행했다. B양은 평소 술에 취할 때마다 폭력과 흉기를 휘두르는 아버지를 두려워해 저항하지 못했다. A씨는 둘째 아들도 강제추행했다. A 씨의 아내는 성폭행 장면을 2차례나 목격했으나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09년부터 약 12년간 300여 차례에 걸쳐 자신의 9세 의붓딸을 성폭행한 50대 남성의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 두 사건 모두 폭력과 협박을 사용해 친족을 성폭행했으며, 미성년자였던 피해자는 가족이 두려워 외부에 알리지 못했다. 유일한 '기댈 곳'인 모친은 남편의 성폭행 사실을 알고도 방관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친족관계에서 벌어지는 성폭행(강간)·강제추행 등의 범죄는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700여건이 넘게 발생한다. 해마다 하루 2건 꼴로 발생하는 셈이다. 형사 전문가들은 사회적 논란이 일어날 때마다 등장하는 '가정 폭력 근절 대책'이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이라고 경고한다. 피해자의 분리 등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성폭행 사실 알렸더니 "네가 몸 관리 안 해 그런 것"이라는 할머니…손녀 편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을 성폭행한 오빠와 한집에 거주하고 있으며, 부모도 이를 방치하고 있다는 국민청원. /사진 =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친족 간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가족이 범죄 사실을 인지하고도 방관하거나 합의(이해)를 종용해 피해자가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우려가 있다. 실제로 수사기관이 인지하지 못한 '암수 범죄'(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가 훨씬 많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성년자인 여동생을 성폭행하고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한 오빠의 사건이 대표적이다. 여동생은 부모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부모는 되레 피해자의 뺨을 때리거나 '오빠에게 살갑게 대하라'며 방조했다. 피해 여동생이 국민청원을 올려 29만여명의 동의를 얻은 이 사건은 현재 서울서부지법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검찰은 지난달 징역 8년과 전자발찌 부착 등을 구형했다.

가해자들은 경제적·정신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상황을 악용하기도 한다. 2019년 대법원은 손녀(당시 8세)의 몸을 치료해 주겠다며 성추행과 성폭행을 시도한 김모씨(74)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김씨의 아내이자 손녀의 할머니인 정모씨(65)는 이 사실을 알고도 "니가 몸 관리를 잘 안 해 이런 일이 생긴 것"이라고 범행의 책임을 손녀에게 돌렸다. 또 손녀의 아버지가 이혼한 상황을 악용해 "신고해봤자 부모는 널 안 키워준다"며 범행을 은폐하거나 묵인했다.


친족 간 성폭행 사실을 알고도 방임하는 것은 범죄다. "피해 사실을 은폐하고 가해자와 분리하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법원은 정씨에게 아동복지법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자신의 딸이 남편과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실을 2차례나 목격하고도 이를 방임한 친모는 징역 4월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형사 전문가들은 가족들의 방임 원인으로 가해자의 경제권을 꼽는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다른 가족 입장에서는 (가해자로부터) 생계에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처벌할 경우 경제적인 어려움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다른 가족이 제지할 수밖에 없다"라며 "친족 간 성범죄는 다른 성범죄와 다르게 장기화하는 특성을 갖고 있어 피해자의 고통이 더욱 크다"고 지적했다.
"'무서운 집'으로 돌아가는 피해자들, 그곳에선 '고소 취하' 압박 받는다"

/사진 = 뉴스1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라고 강조한다. 한 지붕 아래에서 거주하는 경우 가족의 방관이나 묵살로 피해 사실이 쉽게 알려지기도 어려울뿐더러 고소를 한 후에도 이를 취하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기 쉽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53.7%가 "피해를 입은 후 주위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이은의 변호사는 "피해자를 분리하더라도 (가해자가 아닌) 보호자로부터 '돌려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으면 부득이하게 집으로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다"라며 "돌려보낸다는 것은 사실상 2차 피해나 고소 취하 종용 등에 노출되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도 '가족을 신고한다'는 심적 부담감이 있을 수밖에 없어 모니터링 강화 등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