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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릴 수 없는 그 곳, 금강산[50雜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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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형 기자/미디어전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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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11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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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공'에 떠오른 18년 전 겨울, 북한 땅의 추억

[편집자주] [김준형의 50잡스]50대가 늘어놓는 雜스런 이야기, 이 나이에 여전히 나도 스티브 잡스가 될 수 있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의 소소한 다이어리입니다.
"동무, 껌 씹지 말라요"
관광버스에 올라타 검문에 나선 북한 병사가 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사람에게 쏘아 붙였다. 그 남한 아저씨, 아마도 긴장감을 달래려 껌도 씹고 다리도 꼬고 앉아 짐짓 여유를 부려 보았을 것이다. 북한 병사의 '눈총'을 맞자 껌 씹던 입은 얼어붙었고 반사적으로 차렷자세가 됐다. 2004년 2월6일, 북한 금강산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월북'하던 관광버스 안 풍경이었다.

여객선 관광에 이어 육로관광까지 허용되는 화해국면에 접어 든 시기였지만, 여전히 남북은 전쟁중이고 금강산은 '적지'라는게 실감날 수 밖에 없었다.
1998년 관광 개방 이후 금강산은 남한 관광객으로 북적였지만 아무래도 한 겨울은 비수기였다. 효도관광 비중이 높아서 연세 든 분들이 겨울에 관광에 나서긴 부담됐기 때문이다. 주최측인 마라톤 전문 여행사 여행춘추와 러너스클럽이 신청한 금강산 마라톤을 북한이 허가해준 건 나름의 비수기 마케팅 전략이었을 것이다.
장전항(북한 이름은 고성항)에서 금강산을 잇는 관광도로는 도로 양편에 철책으로 북한 민간 혹은 군사지역과의 접근이 철저히 차단돼 있다. 하지만 42.195km의 풀코스 주로를 만들면 민간인 거주지역과 군사시설들이 뒤섞여 있는 금강산 일원 북한 땅을 '남조선 인민들'이 샅샅이 훑고 지나갈 수 밖에 없다. 그것도 통제된 버스를 이용하지 않고, 수백명이 두 발로 '천천히'.
그 길을 모두 철조망을 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으로서는 상당히 고민이 됐을 텐데도 대회를 허가해 준 건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이어 가면서 실리도 챙기자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금강산 관광 개시 이후 10km와 하프 구간에서 달리기 대회가 열리긴 했다. 풀코스 대회는 2003년 도로가 정비되고 육로관광 길이 열리면서 처음으로 가능해 졌다. 개최 소식을 듣고 망설임없이 신청했다. 2박3일에 29만원. 당시로선 적지 않은 비용이었다. 나는 이미 1998년 금강산 개방 첫해에 봉래호를 타고 금강산을 가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북한 땅을 오롯이 두 발로 몇 시간동안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는 건 '관광'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회사 선배 두 분도 금방 이런 꼬임에 넘어왔다.

금강산 관광이 처음 열렸을 때는 동해항에서 출발, 공해상으로 나갔다가 북한 땅 장전항으로 도착하는 4시간 뱃길이 유일했다. 육로를 통하게 되면서 남측 고성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소)에서 출발해 휴전선을 통과, 북측 CIQ까지 도착하는데 버스로 1시간도 걸리지 않게 됐다.
처음 바닷길이 열렸을 땐 금강산 4계의 이름을 딴 4척의 중형 크루즈선 금강 봉래 풍악 설봉호가 관광객 운송수단 겸 숙박시설 역할을 했다. 처음 금강산에 갔을 때 봉래호 선창 밖으로 내다 보이던 새벽 안갯속 장전항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후 관광객이 늘면서 장전항에는 해금강호텔이 설치됐다. 해금강호텔은 바다위에 떠 있는 7층 규모의 세계최초 플로팅 호텔이다. 1988년 호주의 유명 관광지 대산호초(Great Barrier Reef)에서 5성급 호텔로 영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잘 나갔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베트남에 팔려가 호찌민시 근처에서 '사이공 호텔'이란 이름으로 재기를 꿈꿨으나 이마저도 여의치 않던 터에 '남북화해'라는 생명줄을 만나 금강산 장전항까지 흘러 들어왔다.

나름 독특하고 운치가 있던 해금강 호텔 앞 출발선에 선 주자들은 10km 200여명과 풀코스주자 92명.
2월 북한의 아침 바람은 매서웠다.
귀까지 덮는 모자를 눌러쓰고 위아래 방한 기능을 갖춘 긴팔 러닝복에 바람막이 까지 겹쳐 입었는데도 살 속을 파고 드는 금강산 바람을 막기는 힘들었다. 그 땐 핫팩도 없었던 것 같다. 고성항에서 출발, 온정리~삼일포(반환)~온정각~신계사~구룡연주차장~금강산여관~만물상휴양소를 거쳐 결승점인 금강산온천장에 이르기까지 북한 땅을 달린다는 설레임에 뜨거워진 가슴이 핫 팩이 됐다.
가방 메고 학교 가다가 신기한 구경거리를 만나 뜀박질하는 남한 사람들을 쳐다 보는 아이들.
막사 앞 양지에 옹기종기 모여 모포를 털거나 햇볕을 쬐며 담배를 피고 있는 병사들.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차단기에 막혀 서 있으면서도 짜증보다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지켜보던 온정리 주민들...
주로에서 마주치는 북녘 동포들을 눈에 담느라 추위를 느낄 새도, 다리근육이 피곤해질 겨를도 없었다.

주로는 양 옆에 철망이 쳐진 10km 관광도로 구간을 제외하곤 비포장 도로였지만 육로관광객을 맞기 위해 잘 다져놓아서 달리기에 불편하지 않았다.
철망이 세워지지 않은 주로 전 구간에는 수십미터 간격으로 인민군들이 빨간 깃발을 들고 서 있었다.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남한 인민들의 돌발 행동을 감시하고, 북한 주민들과의 접촉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큰 교차로에는 차단기가 설치돼 주자들이 모두 지나간 뒤에야 북한 주민들이 통행할 수 있었다. 이 모든게 92명의 남조선 풀코스 주자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2월 강추위에 서 있던 앳된 인민군들, 일상을 멈춰야 했던 온정리 주민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도 봤지만 반응은 없었다.
굳이 손을 흔들지 않아도 미소를 짓지 않아도, 엄동설한에 뛰어 다니는 남조선 사람들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해도 그 순간만은 적이 아닌 동포를 바라보는 따뜻함으로 그들 마음도 덥혀졌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 달리는 도중 가끔씩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에서 치솟아 올랐다.
풀코스 1차 반환점 삼일포 단풍관 인근의 코스나 마지막 금강산 일대 코스는 나무가 우거진 천혜 절경이었다. 하지만 경치보다는 사람이, 자연보다는 마을과 군부대가 가슴속에 오래오래 각인된 러닝이었다.
출발점과 주로 골인지점엔 응원해주는 함성도 밴드도 없었지만 4시간 30분 넘게 달리는 내내 골인점이 다가오는게 아쉬울 정도로 신이 났다. 금강산 온천장으로 골인해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금강산을 바라보며 앉아 있으면서도 내가 북한 땅을 두 발로 이렇게 오랜 시간 달렸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적국 군인들이 전 코스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가운데 달리는 마라톤 대회. 얼핏 보면 기괴하고, 생각해 보면 슬프고, 그렇기에 기억에 너무나 또렷이 남아 있다.
다음엔 부모님과 가족들도 같이 와서 가족들은 금강산 관광 시켜주고 달리자고 생각했었다.
매년 열리는 대회이니 언제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세월이 조금만 지나면 인민군 감시 없이 자유롭게 마을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도 하고, 길가 사람들에게 물도 얻어먹을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아예 설악산에서부터 내달려 군사분계선을 넘어 금강산으로 골인하는 달리기 대회가 생길 것도 같았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지만, 여지껏 다시 달리지 못했다.
지금도 희망은 지우지 않고 있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면서 금강산은 다시 달릴 수 없는 곳이 됐다. 해금강호텔 금강산온천장 온정각 이산가족상봉장도 모두 폐허가 돼 가고 있다. 난데 없이 '멸공'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2022년 겨울에 뜬금없이 그날의 달리기가 생각났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강산마라톤 사진. 북측이 개별 주로에서의 사진촬영을 금지해 대회 주최측에서 찍어준 공식 사진 뿐이다. 배경이 최대한 안 나오게 찍은 듯 하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강산마라톤 사진. 북측이 개별 주로에서의 사진촬영을 금지해 대회 주최측에서 찍어준 공식 사진 뿐이다. 배경이 최대한 안 나오게 찍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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