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만 1.5조' 현대重…무산된 대우조선 인수 자금 어디로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불발된 한국조선해양이 인수를 위해 보유했던 자금을 신사업과 R&D(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가닥을 잡았다. 암모니아·수소 등 친환경 선박 수요가 늘어나면서 성장 산업에 본격적으로 드라이브를 건다는 방침이다.

1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가삼현 한국조선해양 대표는 전날 증권사 등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최고경영진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보유한 현금은 지난해 3분기 말 별도 기준 약 1조5000억원 규모다. 가 대표는 "유럽연합(EU)이 대우조선해양 결합심사 반대를 결정한 것이 불과 지난주라 구체적인 계획을 말하기는 이르다"면서도 "조선·해양 등 기존 방향과 동일한 선에서 신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3월 △수소운반선 △수소연료전지 추진선 △해상 플랜트 발전과 수전해 기술을 활용한 그린수소 개발 등의 내용을 담은 '수소 드림(Dream) 2030 로드맵'을 발표했다. 오는 2030년까지 수소의 생산에서부터 운송, 저장, 활용에 이르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인수가 무산되면서 남게 된 자금이 이 계획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조선해양은 기존 로드맵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을 짜고 조만간 시장과 소통할 방침이다.

신규 수주가 늘어나면서 조선 호황기 초입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한국조선해양은 잉여자금을 도크 증설에 투자하는 방안은 검토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기존 유휴설비인 군산조선소, 울산 현대중공업내 4·5도크 등을 활용하고 운영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계획이다.


가 대표는 현대중공업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조선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은 우선 친환경, 탈탄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R&D 투자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해외조달 기자재 수급, 라이선스 기술 수수료를 받는 역할 등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조선해양이 암모니아·수소선박 등 미래 친환경 선박에 대한 투자 속도를 높이는 이유는 앞으로 노후선박 교체 수요로 친환경 선박 발주량이 쏟아질 것이란 판단에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3년부터 에너지효율지수(EEXI)와 탄소집약도지수(CII)를 도입하는 등 선박에 대한 탄소 배출 기준을 강화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조선업 초호황기였던 2005~2008년에 건조한 선박에 대한 교체 수요가 2025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아울러 가 대표는 현대삼호중공업 상장을 예정대로 연내에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삼호중공업은 5년 뒤 상장을 조건으로 2017년 국내 사모펀드 IMM프라이빗에쿼티(IMM PE)로부터 4000억원 규모의 프리IPO투자를 유치했다.

한국조선해양은 IMM과 2년 유예를 합의해 24년까지 상장하지 않으면 원금과 2000억원 가량의 이자를 IMM측에 보상해야 한다.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수주가 긍정적인 상황에서 상장을 미룰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선업 불황시기에 도움을 준 투자자와의 약속과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것이 한국조선해양 측 입장이다.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수주목표 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조선해양의 2022년 상선부문 수주 목표는 165억달러(특수선 포함)인데 이미 지난 2주간 약 30억 달러를 수주했다. 이미 확보된 옵션계약들과 LOI(건조의향서) 체결 물량 등을 반영하면 목표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 가시권에 있단 설명이다.

한국조선해양은 올해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 조선 그룹사의 매출이 지난해보다 18%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확보한 수주잔고와 올해 예상 수주를 감안하면 2025년까지 매년 최소 두자릿수 이상 매출이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