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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방', 첫눈에 반한 반가사유상 …"시간은 잊고 그 미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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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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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1.2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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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 아카이브]3-④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찐터뷰 아카이브'는 인터뷰 전문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반가사유상.

부끄럽지만 살면서 이 단어를 마음 속에 깊이 담아 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에, 수능 준비를 할 때나 외웠던 기억이 난다. 삼국시대 불교 문화의 정수, 일본에 문화를 전파한 증거 등. 반가사유상의 미소는 그저 책 속에 박제된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놀러간 적도 많지만 유리장 속 반가사유상을 기억해본 적은 없다. 아마 그냥 슥 스쳐지나갔으리라.

하지만 그 반가사유상이 사진을, 유리 진열장을 박차고 나왔다. 그것도 6~7세기에 만들어진 국보 78호·83호(옛 지정번호 기준) 두 점 모두.

관객들은 이제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1월부터 마련한 '사유의 방'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반가사유상을 마주할 수 있다. 그 미소가 일으키는 감동의 파동을, 녹슨 질감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깊이를 가슴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됐다. 같은 듯 다른,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불상 두 점을 유리 진열장 없이 배치한 파격, 마치 우주를 연상시키는 전시장 연출이 만나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이 놀라운 전시를 기획한 인물은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 1989년부터 33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무한, 국내 불교미술의 최고 권위자다. 그는 첫 눈에 반가사유상에 반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반가사유상을 흠모하는 마음을 가져왔고,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되자마자 반가사유상을 위한 전시공간을 만드는 것을 추진했다. '사유의 방'의 성공을 볼 때 그의 안목은 틀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요즘말로 '성덕(성공한 덕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난 18일 '찐터뷰'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난 그와 명함 교환의 시간도 가졌다. 그의 명함에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반가사유상에 진심인 사람. 그는 첫 질문을 받자마자 15분 동안 반가사유상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질문 하나에 진심 넘치는 답변이 계속 이어졌다.

민 관장은 "반가사유상을 처음 봤을 때 '조각품이 어떻게 저렇게 웃고 있지'란 생각을 했다"며 "반가사유상은 뒷모습까지 반드시 봐야 한다. 그 자세가 그렇게 유려하면서 아름다울 수 없다"고 말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명함. 반가사유상에 진심인 남자./사진=최경민 기자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명함. 반가사유상에 진심인 남자./사진=최경민 기자
'사유의 방'에 대해서는 "철학적 사고를 해도 된고, 아무 생각없이 멍 때려도 된다"며 "그저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시간이 좀 멈춰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각자의 자유다. 정답이 없다. 그 미소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도 없다"며 "스스로 느끼고 대화하는 공간이다. 가르치고, 배우고…그런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21일 '찐터뷰'로 나왔던 민병찬 관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질문은 민 관장이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에게 △국보 78호와 83호를 함께 전시하는 공간 △반가사유상의 뒷모습도 볼 수 있는 공간 △유리 진열장이 없는 공간을 주문한 이유부터 시작했다. 민 관장의 답이 길었던 부분은,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의 질문을 넣었다.

- '사유의 방'은 어떤 생각을 갖고 추진한 것인가.
▷"박물관에서의 대표물이 중요하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하면 '모나리자'를 떠올리잖나. 그런데 사람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뭐가 있지'라고들 말한다. 내가 여기서 33년째 일하고 있다. 내가 불교조각을 공부해서가 아니라, 반가사유상 두 작품은 예술적으로 미술사적으로 한국을 대표할 충분한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표를 하려면 그 대표로서 존중해주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함께 놔서 박물관의 대표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유리 진열장이 없는 공간'과 함께 '뒷모습도 볼 수 있는 공간'을 주문한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조각이니까. 조각은 당연히 360도에서 봐야 한다. 조각은 평면이 아니라 입체지 않나. 뒤에서 봐야 온전히 볼 수 있다. 조각가가 표현하는 것은 정면 만이 아니다. 그리고 유리 진열장에 집어넣으면 유물이 잘 안 보인다. 사각의 선이 생기기 마련이다. 안에다가 조명을 넣기엔 공간이 협소하다. 밖에다 조명을 넣으면 유리에 빛이 반사된다. 유리 진열장을 없애야 유물 본연의 모습이 더 잘 보인다."

-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에 특별한 게 있는 건지.
▷"내가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반가사유상을 봤다. '조각품이 어떻게 저렇게 웃고 있지'란 생각을 했다. 너무나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엄청나게 놀랐다. 감동을 받았다. 그때 당시 수업시간에 반가사유상을 봤는데 선생님이 '조각상은 앞면만 아니라 뒷면도 봐야 한다'고 하시더라. 그리고 뒷모습을 봤는데 앞모습과는 다른 감동이 확 밀려왔다. 그렇게 뒷모습이, 그 자세가 유려하면서 아름다울 수 없었다. 그래서 반가사유상은 뒷면까지 반드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반가사유상을 공부하면서 계속 가졌던 생각이다.

- 그때부터 반가사유상의 뒷모습도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을 꿈꾼 것인가.
▷"반가사유상을 정면에서 약간씩, 1도씩 돌면서 보면 얼굴 표정이 다 바뀐다. 전체 곡선도 다 바뀐다. 180도 맨 뒤에서 봤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의 반가사유상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돌면서 원상태로, 처음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돌면서 바뀌는 표정, 바뀌는 자세, 바뀌는 선을 보면서 계속 감동을 받을 수 있다. 나는 그걸 느꼈다. 관객들도 당연히 그걸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두 점을 같이 놓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게 됐나.
▷"그동안 반가사유상 두 점을 함께 전시를 못해왔다(1986년, 2004년, 2015년에 한 번씩 같이 전시). 평소에는 1년에 한 번씩 교대로 전시했다. 그때는 그냥 관심있는 사람만 와서 봤다. 그렇게 크게 히트를 못친 것이다. 2015년 고대불교조각대전을 했다. 그때 큰 방에 두 점을 같이 전시했다. 어떤 분들은 두 점을 같이 전시하면 각자의 아우라가 크기 때문에 감동이 더 떨어질 것이라 했다. 그런데 두 점을 전시했더니 너무 아름답더라. 두 점이 서로 상승하면서 비교됐다.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똑같이 반가의 자세로 사유를 하는 상이 있었던 것이다. 웃고 있는데 그 미소를 비교해보면 또 전혀 다르다. 그렇지만 오는 느낌은 비슷하다. 그것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엄청나다고 본다. 두 점을 같이 놨을 때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사진=국립중앙박물관(원오원아키텍츠)
- '유물과 건축의 만남'의 필요성은 어떻게 느끼게 된 것인가.
▷"2004년 두 점을 전시했을 당시 엄청나게 고생했다. 조명을 하기 엄청 어렵더라. 조명을 세게하면 반짝반짝 상이 빛나서 잘 안 보이고, 그림자가 생겨버린다. 그림자 때문에 반가사유상 사이에 서로 간섭이 일어난다. 고생은 했는데 두 점을 같이 전시했다는 거 외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 조명의 중요성을 느꼈나.
▷"2015년 전시 당시에 전문가들을 불러왔다. 2005년도에는 '사유의 방'의 한 10배 되는 방에 반가사유상 딱 두개만 놨다. 아무 것도 없었다. 이 공간이 좀 훵했다. 그런데 2015년에는 벽에 곡선을 주고, 조명도 디지털로 했다. 마치 해가 떠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것처럼 효과를 줬다. 느낌이 완전 달라지더라. 조명이 바뀌면서 반가사유상의 얼굴 표정이 바뀌는 것이었다. 그것을 사람들이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조명과 공간감을 만드는 게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 조명과 공간감...
▷"그 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반가사유상 두 작품이 엄청나게 뛰어나기 때문에 공간 자체가 장식적이거나 너무 화려하면 오히려 작품을 해치게 된다. 그 공간 자체도 예술적이면서도, 반가사유상 두 점을 잘 보여주기를 바랐다. 반가사유상은 불교 예술이고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을 재현해주길 원했다. 사유와 명상에 초점을 맞춰줄 수 있는 공간을 표현해줄 분, 그건 건축가 밖에 없다고 봤다.

- 그래서 최욱 건축가를 섭외한 것인가.
▷"건축철학이 중요했다. 물성의 특징, 사물이 갖고 있는 특성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 보여줄지를 고민하고 있는 분을 찾아나섰다. 그분이 최욱 건축가였다. 그분의 책과 글을 접해봤던 적도 있다. 또 최욱 건축가가 2004년 미국 LA에 반가사유상 한 점을 출품했을 때 디자인을 했었더라. 그래서 의뢰를 했다. 그분이 굉장히 바쁜 분이다. 혹시 못하신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흔쾌히 하신다고 하더라."

- 이후 '사유의 방' 프로젝트는 어떻게 진행됐나.
▷"팀을 짜서 계속 스터디를 했다. 콘셉트와 개념을 잡는데 2~3개월 걸렸다. 사유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고, 왜 사유를 하는 것이며, 사유하는 데 왜 반가사유상은 웃고 있는지."

- 그건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 같다. 반가사유상은 왜 웃고 있는 건가. 무엇을 생각하는 것인가.
▷"여러가지 설이 있다. 정해진 것은 없다. 나는 우리나라 반가사유상은 미륵이라고 본다. 미륵이 중생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얻은 깨달음. 그 해탈 순간의 모습이다. 고민하다가 깨닫는 그 순간의 희열이 미소로 나타난 것이다. 해탈의 순간은 최고의 기쁨이다. 그걸 희열이라 하잖나. 그게 얼굴의 미소로 나타난 것 아닐까."

- 삼국시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연출한 이유는 뭘까. 그게 왜 1500년 뒤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있을까.
▷"물질문명은 엄청나게 변해왔다. 배고픔을 벗어나고 편해졌다.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다. 고뇌하고, 힘들어하고, 번뇌하는 게 인간의 기본적 모습이다. 1500년 전 그때는 당장 내일 아침 끼니가 없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걱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여러가지 번뇌와 고민은 요즘 사람들의 것과 같을 것이라 본다. 회사에 출근하면 받는 업무 스트레스, 대인관계 고민, 정보화 시대의 스트레스. 1500년 전 사람들이 가졌던 고뇌와 종류만 다른 것이다.
'사유의 방'. 사진 오른쪽이 국보 83호, 왼쪽이 78호. /사진=최경민 기자
'사유의 방'. 사진 오른쪽이 국보 83호, 왼쪽이 78호. /사진=최경민 기자

- 맞는 말 같다. 관객들과 얘기를 해보니 "생각을 안 하는 것을 생각했다"고 하더라.
▷"'사유의 방'에서 데카르트 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와 같은 철학적 사고를 해도 된다. 반면 아무 생각없이 멍 때려도 된다. 그저 1500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시간이 좀 멈춰있는 그런 공간이길 바란다. 시간이 멈춰서, 오로지 반가사유상의 웃는 모습만 보고 동화됐으면 한다."

- 그게 이번 전시의 기본 콘셉트인 것인가.
▷"박물관에서는 주로 과거를 본다. 지금까지 박물관이 그래왔다면, 이번 반가사유상 전시로 '현재'를 봤으면 한다. 나아가서 '미래'도 봤으면 좋겠다. 앞으로 박물관 전시도 단지 '과거'를 보여주면 안 된다. '현재'를 보여주고 나아가 '미래'까지 보여주는 그런 전시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 큰 공간에 두 점의 반가사유상만 있는 게 우주에 나홀로 있다는 메시지 같아 쓸쓸함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더라.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반가사유상의 미소를 보고 받아들이는 마음은 각자의 자유다. 그것을 엄청나게 환한 미소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기서 정말 쓸쓸함과 허전함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쓸쓸함과 허전함이 결국은 종교에서 추구하는 본질일 수도 있다."

- 복합적인 감정이 내재된 공간같다. 그래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
▷"정답이 없다. 그 미소를 한 마디로 규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절대로 누구를 가르칠 필요도 없다. 그래서 거기에는 설명판이 하나도 없다. 몇세기 무슨 작품인지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오로지 느끼면 된다. 혹시 개인적으로 반가사유상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면 QR코드로 들어가 찾아보면 된다. 그 공간은 스스로 느끼고 대화하고 하는 곳이다. 가르치고, 배우고…그런 공간으로 만들지 않았다."

- 오히려 치열하게 계산된 공간같다.
▷최욱 건축가도 그런 말을 한 거 같다. 건축에서 가르치려고 하면 되지 않는다고. 요즘은 더 그런 시대다. 나도 그 말에 굉장히 공감을 한다.

- 나이가 들면서 반가사유상을 보는 시각도 좀 바뀌는가.
▷"1992년에 삼국시대 불교조각전을 했다. 내가 그때 담당이었다. 20대였다. 당시 국보 78호의 미소를 좋아했다. 그 작품이 선이 좀 날카롭다. 얼굴에 눈썹, 코 등 선이 많다. 광대뼈도 약간 튀어나와있고. 그 미소가 약간 날카로우면서도 선명하고, 세련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했다."

- 30대 이후에는 변했나.
▷"30대가 되니까 아무 생각없이 해맑고 천진난만한 국보 83호의 미소가 훨씬 가슴에 와닿았다. 천진난만해서 그냥 보고만 있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랬다가 요즘에는 다시 국보 78호 쪽에 눈이간다. 그게 얼굴이 좀 넙적하다. 턱도 둥글넙적한 편이다. 그게 원만함, 여유있는 너그러운 미소로 보이더라. 물론 둘 다 완벽한 조각이다."
화려한 얼굴 묘사가 돋보이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화려한 얼굴 묘사가 돋보이는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 소극장 크기의 공간은 어떻게 결정됐나.
▷"조각은 조각품 그 자체만이 아니라 공간 속에 놔야지만 그 가치를 훨씬 발휘한다. 본래 갖고 있던 미를 잘 보여주는 방법이다. 반가사유상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간 찾기가 만만찮았다. '사유의 방' 공간은 원래 영상실, 다용도실이었다. 다용도실에 두 점을 놓으려니까 디자인팀에서 '좁다'고 하더라. 그 옆이 기증관이다. 어차피 기증관 전체를 개편하려고 했다. 기증관 일부랑 해서 공간을 439㎡ 정도로 하면 되겠다고 했다."

- 최욱 건축가와 협의는 어떻게 했나.
▷"그정도가 딱 좋다고 하더라. 소극장 홀이 그정도 크기라고 했다. 배우의 손동작이 보일락 말락한 게 439㎡ 정도라는 것이다. 더 커지면 안 보인다고 하더라. 뒤에서 봤을 때 반가사유상의 표정까지 볼 수 있는 가장 먼거리라고 과학적으로 설명을 해주더라. 나는 공간이 너무 넓은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만들어지고 나서 봤더니 이 정도가 필요했다고 생각했다.

- 전시장 들어가는 길이 굉장히 어둡다.
▷"앞서 말했듯 조명, 그림자 처리가 굉장히 어렵다. 너무 밝게 해버리면 상이 죽어버린다. 약간 어둡게 들어가야 한다. 어두움에 들어가는 동안에 눈을 순응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어둠에 순응하고 전시공간에 딱 들어섰을 때, 크게 어둡게 보이지 않게끔 했다."

- 세팅되고 나서 '사유의 방' 실물을 딱 봤을 때 만족했나.
▷"딱 들어가봤는데 저 멀리 반가사유상 두 점이 있더라. 가슴이 뭉클하다 해야 하나. 반가사유상이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더라. 기울어진 바닥과 벽, 모든 포커스가 반가사유상에 잡히더라. 벽의 색도 상을 띄워주기에 아주 적절했다. 공간 자체가 멋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다가갔더니 반가사유상이 점점 커졌다. 상 자체가 갖고 있는 아우라, 미소의 표정이 잘 보여서 좋았다."

- 특히 만족했던 부분은 무엇일까.
▷"가장 좋았던 게 조명이다. 이전에 진짜 고생했던 게 조명이지 않나. 그림자 때문에 그렇게 감상에 방해가 됐었는데, 그림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림자가 없고 상만 두 개 있으니까 반가사유상이 정말 신처럼 보이더라. 시간의 흐름에 대해 너무 초조해하지 말라는 공간 같았다. 시간은 잊어버리고, 이 공간과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 이런 것을 두고 우주의 진리가 담겼다고 할 수 있을까.
▷"반가사유상이 갖고 있는 저 미소는 1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다 똑같다. 그 미소 자체가 갖고 있는 인간에게 주는 행복감은 변함없이 계속 갈 것이다. 불교의 무한 반복되는 영속성을 반가사유상이 자세나 얼굴 표정을 통해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가사유상의 자세와 표정은 완벽하게 마음의 평온을 준다. 그게 우주의 진리라고 생각한다."

- 두 반가사유상을 감상할 때 중점적으로 보면 좋은 부분을 불교미술 전문가의 입장에서 설명해주신다면.
▷"국보 83호는 신라의 상이 확실하다. 국보 78호는 백제의 것이라 생각한다. 백제의 온화한 미소, 너그럽고 여유로운 미소다. 두 상이 만든 게 50년 차이가 난다. 국보 78호는 6세기 중반에서 후반이다. 국보 83호는 7세기 초반이다. 국보 78호는 조각가가 표현하려는 핵심이 얼굴에 가 있다. 날렵한 선 처리가 얼굴 전체에 가 있다."
단아한 자태와 옷주름이 압권인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
단아한 자태와 옷주름이 압권인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사진=국립중앙박물관

- 국보 83호는 어떤 것을 봐야 할까.
▷"국보 83호의 얼굴은 갸름하다. 앉아있는 자세의 옷주름에 엄청나게 볼륨이 많이 가 있다. 얼굴을 보다가 쭉 내려와서 옷주름 볼륨감을 봐보라. 저게 금동인데, 구리인데,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든다. 일본에 있는 고류지 목조반가상 보다도 훨씬 더 현실적이다. 일본에 있는 것은 목조인데도 약간 평면적이다. 국보 83호는 마치 진짜 옷자락 주름이 잡혀있듯 입체감이 살아있다.

- 또 다른 비교점이 있다면.
▷"6세기 중반 인체조각의 포인트가 뭐냐면 약간 가냘픔, 섬세함, 이런 것이다. 그래서 국보 78호를 보면 허리 같은 곳이 약간 가냘프다. 7세기 전반으로 오면 인체 비례가 4~5등신이 된다. 아동형으로 머리가 크고 상체가 작다. 얼굴도 성인의 얼굴이 아니고 10세 전후의 얼굴이다. 그때는 조각할 때 그게 가장 이상적인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국보 78호가 20대 청년의 얼굴이라면, 국보 83호는 10세 아동의 얼굴인 것이다. 국보 83호는 웃을 때도 입술을 약간 내밀고 있다. 어린 아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다."

- 머리에 쓴 '보관'에도 차이가 크다.
▷"국보 78호의 화려한 보관 장식은 사실 페르시아 양식이다.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일본까지 전해지는 양식이다. 국보 83호의 반원을 세 개 이어붙여 만든 것 같은 보관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특히 신라 반가사유상에만 보이는 양식이다. 일본 고류지 목조반가상도 그래서 신라에서 가져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기록에도 그렇게 남겨져 있다. 나무도 우리나라와 같은 소나무 계열이다."

- 이런 공간이 더 많아지길 바라는 목소리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자랑할 수 있는 게 여러가지가 있다. 그런 거에 대한 특별한 공간을 만들며 상설 전시를 개편해나가고 있다. 그럴 때마다 가장 중요한 유물을 어떻게 보여주고 연출할 것인가를 고민할 것이다."

- 국립부여박물관에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등은 '사유의 방'과 같은 콘셉트가 잘 어울릴 것 같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국보관을 새로 짓기로 했다(2025년까지). 거기에 백제금동대향로가 들어갈 것이다. 그 공간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이걸('사유의 방') 많이 참조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부각해야 하는 게 경주의 성덕대왕신종이다.

- 에밀레종 말인가.
▷"그렇다. 신종관을 제대로 건립해서 제대로 전시하면 그 감동이 10배, 100배 이상은 될 것이다. 내가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있을 때 신종관 건립 계획서를 썼었다. 아마 지금부터 시작해서 한 5년 뒤에는 신종관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박물관을 들어가야만 성덕대왕신종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그렇지 않게 유리벽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지금 복원해놓은 월정교 밑에서 종 전체를 볼 수 있게끔하는 것도 가능하다."

- 타종도 다시 할 수 있는 것인가.
▷"타종 검사를 계속 하고 있다. 타종을 했을 때 심각한 우려가 있는지, 없는지를 계속 보는 중이다. 만약 영향이 없다면 날씨 좋을 때, 5월이나 10월쯤 날을 잡아 타종 행사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으려 경주까지 올 것이다. 성덕대왕신종 소리는 귀로 들리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들린다. 우리 뛰어난 유물들이 가진 본연의 모습을 좀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해나갈 것이다."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18일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인터뷰 /사진=홍봉진기자 hongg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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