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치 "러시아 국가부도 임박"…신용등급 또 6단계 강등

/사진=로이터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에 이어 피치도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 단계로 강등했다.

8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피치는 이날 러시아가 디폴트에 임박했다며 국가신용등급을 기존의 'B'에서 'C'로 6단계 강등했다. 피치는 성명에서 "서방의 제재와 무역 제한으로 러시아의 채무상환 의지가 약화했다"며 "(러시아의) 디폴트가 임박했다"고 평가했다.


피치의 신용등급 'C'는 무디스의 'Ca'와 같은 등급으로 사실상 국가부도를 의미하는 'D'등급 직전 단계이다. 무디스의 'Ca'등급은 전체 21개 등급 중 20번째로, 디폴트를 뜻하는 'C'등급의 직전 단계다.

피치의 이번 강등은 지난 3일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투자등급인 BBB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인 B로 6단계로 낮춘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이뤄졌다. 당시 피치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에 놓였던 한국 이후 처음으로 국가신용등급을 한꺼번에 6단계나 강등했다.

피치는 이날 발표된 미국, 유럽 등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도 국가신용등급 강등 배경으로 꼽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안을 발표했다. 영국은 올해 말까지 단계적으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올해 말까지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가스의 3분의 2를 줄이고, 2030년 이전까지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줄이는 계획을 발표했다.

피치는 "서방 진영의 제재가 에너지 무역 제한 등으로 더욱 강화되면, 러시아는 국가부채를 선택적으로 이행하지 않는 등의 정책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부채상환이 제때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로이터=뉴스1

시장은 러시아가 오는 16일 첫 디폴트 위기를 맞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다른 디폴트 사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도 30일간의 자동 유예기간을 둘 수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16일 유로채권 2건에 대한 표면이자 1억700만달러(약 1321억9850만원)를 상환해야 한다. JP모건은 앞서 러시아가 16일 만기인 7억달러 상당의 달러 채권 채무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러시아가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6430억달러다. 이 중 4000달러는 미국, 영국 등 주요 금융기관에 있는데,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동결된 상태로, 러시아의 부채 상환이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설령 러시아가 이번 부채 위기를 넘긴다 하더라도 서방의 제재가 당분간 계속될 것을 우려해 러시아가 당장 가용할 외화 확보 등을 이유로 일부러 부채를 상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편 피치의 이번 강등 결정으로 국제 3개 신용평가사의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은 모두 디폴트 직전 단계로 추락했다.

S&P는 지난달 28일에 이어 지난 3일 두 차례에 걸쳐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CCC-로 총 8단계 끌어 내렸다. 이는 총 23단계인 S&P 신용등급 중 19번째로 국가부도를 뜻하는 D등급보다 불과 두 단계 위다. 무디스도 지난 3일과 6일 두 차례의 강등을 통해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Ca'등급까지 무려 10단계나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