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에 반도체난 다시 악화…"결국 자동차 가격 오를 것"

[마리우폴=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거리에 러시아의 포격으로 파손된 자동차가 놓여 있다. 러시아군은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으로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다. 2022.02.25.

코로나19 여파로 시작된 반도체 공급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악화될 전망이다. 완성차업계가 이미 심각한 생산 차질을 겪는 가운데 결국 그 피해가 가격 인상 등의 형태로 소비자에게도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러-우크라 전쟁에 반도체 공급난 악화9일 CNBC 등에 따르면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러-우크라 전쟁이 코로나로 이미 피해를 본 글로벌 공급망에 피해를 줄 수 있다"며 "그 중에서도 반도체 공급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글로벌 팔라듐 공급량의 44%를, 우크라이나는 글로벌 네온 가스 공급량의 70%를 담당한다. 팔라듐과 네온 가스 모두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다. 특히 네온은 글로벌 수요의 70%를 반도체업계에서 소비 중이다. 실제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병합한 2014~2015년 네온 가격이 10배 오르면서 반도체업계가 타격을 받았다. 업계는 이후 원자재 재고를 비축해왔는데, 전쟁이 길어지면 가격이 더욱 오르면서 결국 공급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디스의 설명이다.

국내 소재업계 내에서는 이미 "네온 물량을 보유한 미국·중국 업체들이 기존 가격의 2배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팔라듐의 경우 전쟁 전인 지난 2월 말 트로이온스당 2300~2400 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 7일 기준 사상 최고치인 3000달러 선을 넘겼다.

무디스는 "새 공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으면 반도체 공급난이 악화될 것"이라며 "완성차업계 등 반도체 의존률이 높은 산업에 심각한 리스크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라며 강조했다. 일본 도시바의 사토 히로유키 디바이스 부문 대표는 블룸버그에 "반도체 공급난이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며 "내년 3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부 업체는 전쟁에 따른 영향을 축소하는데, 명백하게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라며 "(원자재가 인상으로 반도체) 가격이 계속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반기 해소 기다리던 완성차업계에 타격…"수백만대 생산 차질 발생할 수도"

현대차 러시아 생산법인 의장라인에서 쏠라리스를 생산하는 장면

이에 따라 하반기부터 공급난 완화를 기대했던 완성차업계에는 빨간 불이 켜졌다. 앞서 현대자동차는 지난 1월 "상반기까지는 공급 차질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전쟁 변수로 인해 회복 시점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현대차도 이미 러시아 현지에서 생산 차질을 겪고 있다. 현대차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으로 인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지난 1~5일간 일시 중단한 바 있다. 이날부터 재개할 계획이었지만, 부품 수급이 어렵다는 이유로 가동을 다시 중단했다.

현대차·기아의 러시아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22.6%로, 전체 2위다. 러시아권역은 양 브랜드의 지난해 글로벌 연간 판매량 중 각각 5%, 8%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전쟁 여파로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전체 차량 생산이 전년도의 절반 수준인 80만대로 축소된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현대차도 손실을 회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피해는 러시아 뿐만이 아니라 한국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산업 조사기관 LMC 오토모티브의 제프 슈스터 사장은 CNBC에 "(전쟁 여파로) 올해 수백만대의 차량 생산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글로벌 인플레이션·가격 압력이 거세지면서 소비자들이 또다른 타격을 받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러-우크라 사태로 반도체난 회복이 더 늦어질 수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원자재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완성차업계가 (가격 상승압력을) 흡수해왔지만 더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으로 소비자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신차·중고차 평균가가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더 오르면 수요 둔화로 이어져 자동차업계에 타격이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