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총알이 날아와요"…3살 딸이 울며 말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우크라이나인들 옆에 함께 서 있고 싶었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고,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지한다고./사진=반전 집회에서 행진하다 우연히 찍힌 기자.

우크라이나 국기를 가슴팍에 들고 있는데 눈에 주책맞게 짠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황급히 닦고 싶었으나, 그들의 국기를 내리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국기를 더 높이 들어 부끄러워진 얼굴을 차라리 가려버렸다.

벌건 일요일 대낮에 울컥하며 감정이 올라온 건, 우크라이나인이 들려주던 편지 한 통 때문이었다.


"공습 사이렌이 울려요. 3살 딸이 자다가 깹니다. 울면서 이렇게 말해요. '엄마, 총알이, 총알이 날아와요'라고. 악몽 같은 일상이 이렇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1분, 1초를 버티기 힘든 상황이에요."

안나는 친구인 카테르나가 보낸 편지를 대신 읽고 있었다. 카테르나는 러시아의 폭격에 15시간을 걸어 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도시로 피난했다. 거기도 안전하지 않아 지하실로 숨었단다. 집에 가고 싶단 아이를 달래는 엄마의 심경은 오죽할까.

그의 소박한 바람은 고작 '딸이 왜 하늘이 파란색인지 묻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이 편지가 한국에서 낭독되는 날까지, 가족과 살아있길 기도한다고 했다.


바라만 보다가, 그들 옆에 서 보았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교외의 코쉬차 거리의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은 건물 앞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잔해를 살피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달 24일 새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 했다. 전쟁이 시작됐다. 비행기가 날아 도시를 폭격하는 영상이 공유됐다. 무차별 폭격에 평범히 살던 집은 불타고, 유치원마저 잿더미가 되고, 사람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지고 있었다.

겪어보지 못한 전쟁을, 그걸 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80세 노인이 손주를 지키겠다며 군에 자원했고, 전쟁 속에 결혼한 커플은 신혼에 둘 다 총을 들고 있었다. 지하철로 대피한 집사가 고양이를 쓰다듬었고, 거기에선 폭탄이 떨어지는 와중에 아기가 태어났다.

우크라이나와 접경 지역인 폴란드 메디카의 국경 검문소에서 딸과 재회한 한 우크라이나 남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뉴스1

멀리 있지만, 잘 모르지만, 다르지만 또 다를 바 없었던 그들의 평화로웠던 삶. 그게 전쟁으로 순식간에, 무차별적으로 파괴되는 걸 봤다. 우리 집 앞으로 폭탄이 떨어지고, 지하주차장에 몸을 숨기며 덜덜 떠는 상상을 했다.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같은 시간에 벌어지는 일이니.

목소릴 내고 싶었다. 전쟁에 반대한다고, 당신들을 지지한다고.

그래서, 그저 바라만 보다가 함께 서보기로 했다. 전쟁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인들 옆에. 주한 러시아 대사관에서 집회가 열린다고 했다. 가장 빠른 게, 3월 4일 저녁 7시에 여는 반전 촛불집회였다. 거기에, 가보기로 했다. 당장 우크라이나 국기를 주문했다.

[우크라이나 공부 - ①] 평화를 사랑하며, 핵도 스스로 포기한 나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집회에서 규탄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든 참가자의 모습이 우크라이나 국기에 비치고 있다./사진=뉴스1

"끝없이 넓은 평원과, 드높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온순한 양처럼 살아온 이들입니다. 수많은 외세 침략 속에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우크라이나 교민 김평원 씨)

세계적인 '곡창지대'라 강자가 늘 탐냈던 땅. 우크라이나는 그래서인지 역사 속에선 부침이 늘 심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서 코사크족으로, 다시 러시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지배자가 바뀌어왔다. 1917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진 뒤 '우크라이나'란 국명이 생겼으나, 불과 5년 만인 1922년에 소련연방에 편입됐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에야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 됐다. 구소련이 남긴 핵탄두가 1800여 개나 됐으나, 우크라이나는 이를 러시아로 넘겼다. 그게 1994년 12월 5일에 체결한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다. 세계 3대 핵 강대국의 위상을 포기하고 비핵화를 선언했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를 추구하며, 인권을 보장받길 바랐다.

그 각서에, 미국과 영국, 러시아 세 나라가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안전을 지켜주기로. 그랬던 러시아가, 지금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하는 것이다. 두 나라 사이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민은 어찌 할머니들까지 나서며 그리 용감히 싸울 수 있는 것일까. 그 거대한 세력에 휩싸이기를, 끝끝내, 그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부정하며 말이다.

촛불과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러시아 대사관 앞으로 갔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함께 촛불을 든 이들./사진=남형도 기자

촛불집회 날이 됐다. 불금에 퇴근하는 직장인들과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5호선 서대문역에 내려 주한 러시아 대사관을 향해 총총 걸었다. 초봄이라 아직은 쌀쌀해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대사관 옆 정동 교회 앞 광장은 이미 촛불이 일렁이고 있었다.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노란 불빛이, 성별과 나이와 인종을 망라해 부둥켜 안은듯한, 나란한 마음이 따뜻했다. 가운데로 들어가 주저앉아 주저 없이 가방을 열고, 우크라이나 국기와 준비해 온 촛불을 꺼냈다.

나도 촛불을 들었다, 우크라이나에 평화가 오길 바라며./사진=남형도 기자

앞에서 미리 불을 밝히던 이에게 말을 걸었다. "촛불 좀 붙일 수 있을까요?" 그는 흔쾌히 촛불을 기울여주었고, 곧 한 개의 촛불은 두 개가 되었다. 그걸 쥐고, 두 손으로 우크라이나 국기를 펼쳤다. 찬 바람에 국기가 뒤집힐 듯 펄럭이다, 앞 사람의 등에 닿아 고요히 다시 내려앉았다.

폭격으로 사망한 군인들, 민간인들, 대피소에서 공습경보를 견디는 이들을 위한 묵념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성호경을 긋고 전쟁이 멈추기를, 나 또한 나의 신에게 빌었다. 눈을 감는 동안,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오염된 느릅나무 숲과 사람의 치유를 기원한단 음악이 흘러나왔다.

[우크라이나 공부 - ②] 질기고 질긴, 두 나라의 '악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화하면서 곳곳에서 포성과 폭발이 잇따르고 있다./사진=뉴스1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관계를 본다면, 오늘날 전쟁이 새삼 벌어진 게 아니란 걸 금세 알 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주권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침략 시도를 했으며, 자국 이익을 위해 도로 수복해야 할 대상쯤으로 여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21일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서는 이 같은 인식이 잘 드러난다. 우크라이나를 주권 국가로 보지 않고 "꼭두각시 정권이 들어선 미국의 식민지"라고 했고, "처음부터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라고 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아픔이 많았다. 반대로 말하면,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온 국민이 이렇게까지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1933년 우크라이나 카르키프 거리에 나뒹구는 굶어 죽은 농부들 / 사진 = Widener Library, Harvard University

소련연방에 속해 있던 1932년엔 스탈린이 우크라이나 자영농의 사유지를 몰수하고, 곡물을 수탈하는 집단화 정책을 벌였다. 비옥한 땅의 곡물 생산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로 인해 250만 명에서 35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우크라이나에선 이를 '홀로도모르(기아를 통한 대량 살인)'라 불렀다. '집단학살'이란 것이다.

그런가 하면, 2014년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름 반도를 강제 점령했다. 친러 성향이었던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야누고비치 정권이 혁명으로 무너지고, 친서방 진영으로 기울자 크름 반도 내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며 무력 침공을 감행한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그때 한참 울어보려고"

집회서 들었던 우크라이나 국기와 촛불./사진=남형도 기자

'전쟁 없는 세상'에서 준비한 집회는 2시간 정도 지속 되었다. 끝나니 내게 남은 물음들이 많았다.

"군인 역할이 다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여러 사람의 다양한 활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푸틴은 평화를 이길 수 없을 겁니다."(전쟁 없는 세상, 아침 활동가)

"강한 군사력이 정말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 질문을 많이 던져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군비 경쟁이 심해지고, 갈등이 있을 때 점점 더 전쟁이란 선택지를 선택하기 쉬울 테니까요."(전쟁 없는 세상, 뭉치 활동가)

"우리가 사랑하는 공간은 24시간 내내 끊임없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대량학살입니다. 몇몇 도시는 점령당했지만, 주민 누구도 포위당한 채 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우린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러시아 군인들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모든 이들이 힘을 모아, 미래에 독립된 주권 국가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우크라이나인, 콘스탄틴)

그리고 촛불집회가 이어지는 동안, 단체 채팅방에서 공유된 한 메시지가 마음을 울렸다. 우크라이나 르비우 근처에 사는 친구인 샤샤에게 온 메시지라고 했다. 내용이 이랬다.

"전쟁이 끝나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한참 울어보려고. 평소엔 울고 나면 부끄러워져서 10년은 안 울었었어. 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행복해서 울음이 나오는 건 참지 않을 거야. 그때까진 가족들, 애인, 친구들 모두 울음을 참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어."

[우크라이나 공부 - ③] 러시아가 내세우는 전쟁의 명분, 그리고 '속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부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대놓고 내세우는 전쟁 명분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전쟁. 2014년 4월부터 정부군과 친러 성향 반군이 내전을 벌이자, 러시아가 은밀히 지원해 왔다. 그렇게 돈바스에선 8년간 내전이 계속돼왔다. 친러 성향 반군은 돈바스 지역 두 곳인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에서의 독립을 주장했는데, 지난달 푸틴이 이를 승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두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한다며 전쟁을 일으켰다.

그다음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반대다. 2019년 2월, 나토 가입을 명시한 개헌이 통과됐고, 친서방 노선인 젤렌스키가 대통령이 됐다. 나토 가입에 대해 푸틴은 "나토 미사일이 러시아를 타격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우크라이나 지지 시위에 참석한 여성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사진=뉴시스

그러나 이는 러시아의 전쟁 명분이며, 실제론 팽창주의이자 제국주의이며, 침탈이 필요했던 것이란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의 팽창주의는, 인접 지역 국가를 통합해 자국의 이익을 위한 공간을 창출하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 된단 판단에서 추구된다. 19~20세기 초 식민지 건설로 이익을 추구하던 제국주의 모습과 유사하다."(김성균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국장)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해방하려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를 위협하는 침략자에 불과하며, 파시스트 국가다. 푸틴은 제2의 히틀러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 세계를 협박하는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의 크고 작은 도시들이, 인류를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폴리나, 집회에서 외친 우크라이나인)

"제 가족과 친구들이 믿는 건,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탈이 그냥 필요했다는 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필요하다. 오랫동안 손에 넣으려 했고, 내전 8년 동안 군인과 민간인을 죽여왔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도 벨라루스처럼 될 줄 알았겠지만, 전혀 아니다."(마리아 허쇼바 유튜브 영상 인터뷰, 폴란드 난민보호소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 가족 옆에서 행진하며…"전쟁 멈춰"를 외쳤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는 집회에서. 작은 움직임이라도,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어보여도, 연대하면 다르다고.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사진=집회 참가자분

이틀 뒤인 3월 6일 오전 11시, 주한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도 참여했다. 여기엔 우크라이나인들이 더 많이 모였다.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학생들, 전쟁에 반대하는 한국인들도 함께했다. 외대 학생 두 명이, 마스크에 우크라이나 국기를 예쁘게 그려줬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전쟁의 참혹성을 이야기했고, 그걸 겪지 못한 난 다 알지 못하지만 다만 짐작했다. 일제 침략에 독립운동했던 이들을 떠올렸고, 6.25 전쟁에서 총을 들고 싸워야 했던 국군을 떠올렸다.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일, 그러나 우리에게도 언제든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집회에서 만난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정말 그렇다고 했다.

"우리가 뉴스를 보면 시리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런 것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죠. 그래도 완전히 와닿진 않거든요. 그런데 전쟁을 직접 겪으니, 그게 그래요. 내 나라, 내 민족이 죽어가는 게 정말…내 일부가 죽어가는 것처럼 느껴져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 잠도 못 자요. 아침에 일어나면 이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여긴 평화롭잖아요. 당연하듯 받아들이지만, 이건 정말 너무 쉽게 깨질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너무 소중하니까, 그걸 정말 잘 지켜야 해요."

그의 부모님은 일주일간 폭탄을 피해 지하실에서 몸을 떨다가, 폴란드로 피난 갔다. 부모님이 평생 열심히 살았는데 노년에 피난민이 된 게 너무 맘 아팠단다. 빨리 전쟁이 끝나,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님./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면서 쉐겔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실상이 더 참혹하다고 했다.

"남부의 러시아군이 점령한 도시는, 우크라이나 여자를 보면 강간한다고 해요. 그래서 여자들은 절대 밖에 나가지 말라고 공고문을 보내기도 하고요. 두 달도 안 된 아기를, 그냥 총을 쏴서 죽여버려요. 그게 인간인 걸까요? 그런 걸 보면 저는…무너져버려요."

그러니 한껏 목소릴 높이고 싶었다. 집회 도중에,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 행진했다. 크게 더 크게 외쳤다. 내 옆엔 우크라이나 아이를 안은 가족도, 반려견을 품에 안은 보호자도, 두 손을 꼭 쥔 커플도 있었다. 그 모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목이 터질 듯 외쳤다. 차도에 있던 한 차량 운전자는 경적을 울려 함께 응원해주기도 했다.

"Stop the war(전쟁을 멈춰라)", "Stop Putin(푸틴, 멈춰라)", "We want to live in peace(우린 평화롭게 살길 바란다)", "Stand with Ukraine(우크라이나와 연대하자)". 우크라이나인들은 "대한민국 감사합니다"를, 우린 "우크라이나 국민 파이팅"을 외쳤다.

[우크라이나 공부 - ④] 피 흘리며 지킨 '민주주의', 우크라이나가 진정 원하는 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이어진 가운데 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리비우에서 현지 주민들이 대전차 장애물을 만들고 있다. /사진=뉴스1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금세 점령당하지 않았다. 예상과 달랐다. 믿었던 서방의 적극적 군사 개입 없이, 영공을 보호해줄 이 없이, 공습 사이렌에 무력하게 폭탄을 맞아가며 외롭게 싸우면서도. 그들은 대통령과 전 국민이 경이로울 정도로 똘똘 뭉쳐, 하나가 되어 잘 항전하고 있다.

무엇이 우크라이나인들을 이리 용기 있게 싸우게 하는가, 그들이 진정 바라는 건 무엇인가. 단순히 두 나라의 오랜 악연에서 비롯된 전쟁으로 보지 말고, 우크라이나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었던 게, 외쳐왔던 게 뭔지 알아줬으면 싶다고.
넷플릭스의 '윈터 온 파이어'란 다큐멘터리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잘 나와 있다.

2013년 가을이었다.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였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EU 가입 협정서에 서명하기로 했으나, 아자로프 총리는 서명하지 않겠다며 번복했다.

11월 2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광장에 300~400명이 모였다. 이튿날 아침엔 비가 내리는 데도 광장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집회 열기는 엄청나게 뜨거워졌다. 이들은 "정부가 젊은이들 염원을 짓밟아서, 아이들과 조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나왔다"며 평화 집회를 열었다. 흡사 축제 같았고, 그 마음은 순수했고, 애국심도 강했다.

"EU 협정서 주인이 국민"이란 이들의 외침에, 경찰은 강철 곤봉으로 구타했다. 총탄이 오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16세 소년인 드미트로 홀루브니치는 그 와중에 "엄마, 이것만은 알아주세요. 사랑해요"라고 외쳤다. 죽은 시신 앞에서 우크라이나 국가를 불렀다.

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는 사라지지 않으리라.
형제들이여, 운명은 다시 한번 우리에게 미소지으리라.

우리의 적은 사라지리라,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그리고 우리는 지배하리라, 형제들이여 우리의 조국 땅에서.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희생하자, 우리의 자유를 위하여.

민주주의와 독립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인들은 오래도록 싸워왔다. 그들이 바라는 게, 그리도 큰 염원인 것일지./사진=뉴스1

그리고 2014년 2월 22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도주했다. 헌법 위배로 그는 사임 됐다.

그들이 그 오랜 시간 러시아와 싸우며 지키고자 해왔던 건 '독립된 국가'로서 지키는 상식적이고도 정상적인 '민주주의'이고, '자유'이고, '인권'이라고. 그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백 년간 우크라이나는 주권 국가가 되길 원했고, 1991년에 그 숙원을 이뤄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 첫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그 이전까진, 우리 영토는 늘 누군가에게 점령당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전 세계가 목격하고 있듯, 우크라이나는 독립 국가이며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손으로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콘스탄틴 씨,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 작은 마을에서 한국에 온 폴리나 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역사적으로 자유를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러시아인들과의 전쟁에서 1만 4000명 이상의 국민이 목숨을 잃으면서도요. 전 세계의 평화, 민주주의를 지키고 우리 미래인 아이들과 함께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니 해야만 하는 '연대'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행렬./사진=뉴스1

그런 우크라이나인들이, 한국인들에게 간곡히 말하고 있다.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우릴 대신해서 싸워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싸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전쟁에 대한 러시아 선전에 반대하고, 러시아와 관련된 스포츠 및 행사를 보이콧하고,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를 향해 지원의 손길을 보내주세요. 지인, 친구, 정부 관계자에게 우크라이나가 겪는 고통을 얘기해주세요."(드므트로 씨, 우크라이나인)

"솔직히 뭐든 다 필요해요. 무기, 방탄조끼, 야시경, 열 감지 장비 등이 가장 필요하고, 부상자가 많아 치료할 때 쓰는 붕대도 떨어져 가고 있고요. 한국 국민이 많이 해주시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까지 유통 되는 게 문제예요. 그래서 한국 정부서 대량으로 보내주면 감사하고요. 한국도 1년 넘게 코로나로 힘든데,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그런 건 너무나 고마워요."(올레나 쉐겔 교수, 우크라이나인)

"푸틴에게 보여줘야 합니다. 우크라이나 혼자만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크라이나군에 기부하지 않는다면 적십자나 난민단체에 기부해주세요."(마리아 허쇼마, 폴란드 난민보호소에서 일하는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를 위한 후원의 손길들./사진=네이버 화면 캡쳐

꼭 연대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우크라이나 교민 김평원 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결사 항전하며 외롭게 싸우다 러시아에게 무너진다면, 전 세계는 강한 자에 의해서 나라의 경계선이 그어지는 약육강식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겁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전쟁이, '무력으로 집어삼켜도 되는구나' 싶은 선례로 남았을 때, 그다음엔 또 어떤 나라가 나타나 어디를 대상으로 전쟁을 벌일지,

그 아무도 모를 일이다.

함께 나란히 서 있으니, 춥지 않았다고.

에필로그(epilogue).

우크라이나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금요일. 밤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릴 떴다.

옆 사람과의 촘촘했던 연결이 듬성듬성해지자, 새삼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다. 서로 나란히 막아줘서, 초봄의 추위도 따스할 수 있었다는 것을.

그 촛불집회에서 마지막으로 발언한 이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늘 묻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이건 대체 뭘 위한 전쟁이죠'라고요. 우크라이나인들은 죽어가고, 침략군도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고 하는데, 아무리 물어봐도 모르겠더라고요.

하나 분명한 건,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서 그 고통을 침묵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라고요.

어쩌면 우리 모두 여기 있는 건, '내가 인간이다'란 걸 말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여기 있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같은 인간의 고통에 공감해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