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들롱의 선택은 '안락사'가 아니다 [dot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 장례식에 초대합니다."

2017년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는 의문의 광고가 실렸다. 자신의 '생전 장례식'을 치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광고를 게재한 사람은 일본 굴지의 건설기계 기업 고마쓰의 전 사장 안자키 사토루(당시 80세)였다. 그는 담낭암이 발견됐고 다른 장기로 암이 퍼져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연명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거부했다. '인생이 즐거웠다'고 생각하며 관에 들어가고 싶다는 게 그의 뜻이었다.


안자키 전 사장의 생전 장례식에는 1000여명의 지인이 참석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모든 테이블을 돌며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감사 편지도 남겼다. 생전 장례식을 치르고 6개월 뒤, 안자키 전 사장은 81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말처럼 '바동거리지 않는' 존엄한 죽음이었다.
안락사·존엄사·조력자살, 의미 차이는?잘 죽어야 잘 사는, 이른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삶의 시작인 탄생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안자키 전 사장처럼 삶의 종지부를 찍는 죽음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죽을 권리'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죽을 권리에 관한 용어로는 '안락사' '존엄사' '조력자살' 등이 흔히 쓰인다. 세 용어 모두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뜻하는 것이지만, 다소 차이가 있다.

의사가 고통 적은 방법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칭하는 안락사는 크게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로 나뉜다. 적극적 안락사는 의사가 진정제 투여 등 적극적인 방법을 통해 환자의 죽음을 앞당긴다. 소극적 안락사는 이미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의 연명치료를 본인 혹은 가족의 동의하에 중단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에서 가능한 존엄사는 일종의 소극적 안락사다. 의학적인 치료를 다했음에도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환자 동의 여부에 따라 '자발적 안락사'와 '비자발적 안락사'로 구분하기도 한다. 환자 본인이 혼수상태 등 건강상의 이유로 의사를 밝힐 수 없는 상황일 때 가족 등 다른 사람이 환자를 대신해 죽음을 결정하는 경우가 비자발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조력자살은 말 그대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한다. 의사가 처방한 약물을 환자 본인 '직접'이 주입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구분돼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 '세기의 미남'이라고 불리는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이 건강이 더 악화하면 안락사를 하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조력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안락사와 조력자살을 통칭해 조력죽음이라는 말도 쓰인다.

콜롬비아에서 처음으로 죽음이 임박하지 않은 환자에 대한 안락사가 지난 1월 시행됐다. 빅토르 에스코바르(사진 왼쪽)는 두 차례 뇌졸중으로 몸의 절반이 마비됐고, 합병증으로 인해 10년 넘게 인공호흡장치에 의존하며 살았다.

스위스는 '조력자살'만 가능…네덜란드 최초로 안락사까지 허용한국에서는 존엄사가 가능하지만 조력자살은 처벌 대상이다. 존엄사는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으로 화두에 올랐다. 자녀들은 식물인간이 된 김 할머니에 대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병원 측에서 거부하며 소송까지 이어졌다. 당시 대법원은 김 할머니의 존엄사를 허용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 결정법)이 제정돼 2018년 2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반면 조력자살은 '촉탁·승낙에 의한 살인죄'에 따라 징역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 의사가 환자의 촉탁을 받고 약물투여로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도움을 줘서 죽게 하는 것이 형법을 위반하는 행위인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고통스러운 암투병 중이던 친구의 부탁에 그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람이 지난달 2심에서 징역 1년 선고를 받은 일은 큰 관심을 모았다. 그나마 1심에 비해 감형된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잇따라 조력자살과 안락사를 합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2년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로 조력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모두 합법화한 이후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이 합류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콜롬비아 등도 두 방식을 통해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죽을 권리를 가장 잘 보장하는 나라로 알려진 스위스는 조력자살(본인이 행함)은 합법이지만 적극적 안락사(3자가 행함)는 불법이다. 독일, 호주 빅토리아주와 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뉴저지 등 미국 일부 주에서도 조력자살만 허용하고 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는 한국 외에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헝가리, 노르웨이, 영국, 인도 등에서 제한적 조건 아래 가능하도록 합법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