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끊겠다던 푸틴, 한발 뺐나…독일 "4월 유로화 결제 된다고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 오가르요보 관저에서 화상 각료회의에 참석해 "유럽 등 비우호국에 대한 가스공급 대금을 루블화로만 결제받겠다" 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뉴스1

독일 정부는 러시아가 다음달 천연가스 대금의 '유로화 결제'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날 울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통화를 했다. 푸틴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이뤄진 정상통화였다.


정상통화 후 슈테벤 헤베슈트라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숄츠 총리에게 유럽의 다음달 가스대금 결제가 유로화로 계속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블룸버그통신은 러시아의 긴장 완화(de-escalation) 시도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독일 정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푸틴 대통령이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23일 러시아산 천연가스 구매대금을 루블화로만 받을 것이라 하며 유로와 달러 등 외화 결제 시 가스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선포했던 입장을 뒤집은 게 되기 때문이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으로부터 고강도의 금융제재를 받은 사실을 상기시키며 "소위 비우호국에 공급하는 우리 천연가스 대금 결제를 러시아 루블로 전환하겠다. 유럽연합(EU), 미국에 우리 상품을 공급하고, 달러나 유로 등 다른 통화로 돈을 받는 건 더는 우리에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실제 러시아 측은 이달 31일까지 천연가스 대금 루블화 결제 관련 시스템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헤베슈트라이트 대변인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숄츠 총리와의 통화에서 "내달 1일 이후 가스대금을 루블화로 결제해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할 예정"이라고 힘을 줬다. 그러면서도 '유로화 결제'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숄츠 총리에게 이 결제 매커니즘에 대해 설명했다고 헤베슈트라이트 대변인이 전했다. 유럽이 기존대로 가스대금을 유로화로 결제하면, 국제제재를 적용받지 않는 가즈프롬 은행이 이 돈을 루블화로 바꿔 러시아 측에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가즈프롬 은행이 유로화를 루블화로 환전하는 역할을 맡는 셈이다.

숄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절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절차를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로 된 정보를 요청했다고 헤베슈트라이트 대변인은 밝혔다. 숄츠 총리는 러시아 가스 대금을 루블화로 지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하며 러시아산 에너지 대금을 유로 또는 달러로만 지급한다는 주요 7개국(G7) 합의안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크렘린궁에서는 이같은 '유로화 결제'와 관련한 입장은 없었다. 크렘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숄츠 총리에게 "서방의 경제제재 때문에 가스대금 결제방식을 변경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EU 회원국들이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화 자산을 동결해 결제방식을 변경했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도 전화통화를 하고 가스대금 루블화 결제 방안을 소개했다. 이에 대한 드라기 총리의 입장은 알려지지 않았다.

한편 G7 에너지 장관은 지난 28일 화상회의 후 러시아의 천연가스 대금에 대한 루블화 결제 요구를 거부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루블화 결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G7 에너지 장관들은 이는 기존 계약에 대한 명백하고 일방적인 위반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