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수도권만 한 나라가 '가스 대국'으로 뜬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오른쪽)과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카타르 군주(에미르)가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페르시아만의 작은 왕국이 유럽 천연가스 시장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에너지 대란 위기에 직면한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대체국으로 중동의 소국 '카타르'를 선호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옆 카타르는 국토면적이 114만9000㏊(약 1만1490㎢, 세계 163위)로, 한국 수도권(1만1868.4㎢)보다 작지만 천연가스 생산량은 세계적이다.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카타르와 유럽 관리들을 인용해 "독일,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가 카타르와 액화천연가스(LNG) 장기 공급 계약을 맺고자 협상 중"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유럽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 요구 등 문제를 겪으며 40%에 달하는 러시아산 의존도를 낮추고자 새 공급처를 찾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현재 카타르 이외 앙골라, 알제리, 리비아, 미국 등의 가스생산업체와도 구매확대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는 카타르라고 WSJ은 분석했다. 카타르 역시 유럽 시장 확대를 오랫동안 원해와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지난 20년간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천연가스 장기 계약을 체결하며 러시아에 이어 가스 수출 규모 2위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오랫동안 염원했던 유럽 수출 확대 계획은 이루지 못했다. 유럽이 기존 파이프라인을 통한 수송이 가능하고, 단기적으로 유연한 계약으로 더 저렴하게 얻을 수 있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카타르 국영 에너지기업 '카타르 페트롤리엄'의 장기 계약 방식을 문제 삼고 반독점 조사를 시작하면서 카타르의 유럽 수출 비중은 오히려 줄었다. WSJ에 따르면 카타르는 현재 단기적으로 전체 생산량의 10~15%만 유럽에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이 러시아 이외의 새로운 천연가스 공급원을 찾아 나서면서 카타르에도 기회가 찾아왔다.

카타르 천연가스 생산시설. /사진=로이터

"우리가 유럽 돕겠다"…카타르, 2026년까지 천연가스 생산량 40%↑카타르는 2026년까지 287억달러(약 34조7700억원)를 투자해 천연가스 생산능력을 40%, 연간 3300만톤(t)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지난해 유럽이 러시아에서 수입한 천연가스 규모(1370만t)을 감당할 만한 규모다. 또 그간 카타르의 유럽 수출길을 막고 있던 EU의 카타르페트롤리옴 반독점 조사도 지난달에 중단돼 유럽과의 장기계약 협상의 길도 열렸다.

천연가스 55%의 러시아 의존하는 독일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지난 20일 카타르를 방문해 에너지 파트너십 체결을 발표하고, 카타르와 다른 가스생산국으로부터 LNG 수송을 받을 수 있는 최초의 터미널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하베 부총리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추가 협력 가능성을 시사했다.

카타르는 유럽의 이런 '러브콜'을 발판삼아 오랫동안 원했던 유럽 수출 확대의 꿈을 이루고,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이 무너진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뒤집는 주인공이 되는 것을 적극 반기고 있다. 카타르 정부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우리는 향후 몇 년 안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가스) 수출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며 수년간 유럽과의 장기계약을 늘려 유럽이 다시 에너지 빈곤을 겪지 않도록 도울 것이라고 WSJ에 말했다.

다만 WSJ은 카타르가 당장 유럽 에너지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되기는 힘들 것으로 봤다. 단기적으로 유럽으로의 수출량을 확대하려면 한국, 일본 등 기존 아시아 고객의 동의를 구해야하고, 또 장기계약 협상이 수개월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WSJ에 따르면 아직 천연가스 구매 관련 카타르와 최종 계약을 맺은 유럽 국가는 없다.

한편 '유럽 에너지 대란' 경고까지 나왔던 러시아와 유럽 간 갈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0일 울라프 슐츠 독일 총리와 통화애서 4월에도 천연가스 대금의 유로화 결제가 가능하다고 밝히면서 일단 위기를 넘겼다. 앞서 러시아는 유럽 등 비우호 국가로부터는 천연가스 대금을 자국 루블화로만 받고, 그렇지 않으면 가스 공급을 중단하겠다고까지 했다.

유럽과 미국은 최근 미국산 LNG 거래량을 향후 몇 년간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했고, 유럽은 미국의 최대 LNG 수출국으로 등극했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천연가스 생산량에서 미국은 세계 시장 23.7%를 차지한 최대 국가이다. 2위는 러시아로 16.6%이고, 카타르는 4.4%를 차지한 5위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