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테슬라에 맞불…美서 전기차 만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발표회에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서비스 로봇 '스팟'과 함께 CES 2022에 등장하고 있다.

현대차가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기지로 앨라배마 공장을 낙점했다.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 등을 생산할 예정이다. 약 3700억원 규모의 투자도 감행한다.

13일 현대차 미국법인 등에 따르면 호세 무뇨스 현대차 북미 총괄 사장은 이날(현지시간) 개막한 뉴욕 오토쇼에서 앨라배마 공장 전기차 생산 계획을 발표했다.


무뇨스 사장은 "앨라배마 공장에서 싼타페 하이브리드를 10월부터,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을 12월부터 생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3억 달러(약 3700억원)를 투자해 전기차 생산 설비를 갖추고 직원 200명을 고용할 방침이다.

美 "자국산 부품 75%까지 늘려라"…현대차, 2025년까지 미국에만 74억달러 투자

바이든

표면적인 이유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 정책 기조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에 대해선 감세, 아닐 경우 과세를 하는 자국산구매우선법을 확대 적용하겠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달 미국산 제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부품 비율을 현재 55%에서 2029년까지 75%로 강화하겠다고 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다. 완성차 업체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시장에서 도태되기 때문에 현지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아반떼(현지명 엘란트라) △쏘나타 △싼타페 △투싼 △싼타크루즈 등 내연기관차 SUV(다목적스포츠차량)를 위주로 생산했다. 내연차를 제외한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를 생산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현대차는 지난해 5월 전기차 현지 생산 및 설비 확충 등 2025년까지 미국에 74억달러(약 8조1400억원)를 투자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달 개최한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는 2030년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 11%를 달성하는 등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기차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을 공략하겠다고도 했다.

어니 김 현대차 앨라배마 생산법인 사장은 "현대차가 미국에서 전기차 생산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며 "이곳 앨라배마 공장에서 우리 직원들이 전기차를 생산하는 모습을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전기차 현지 생산, 선택 아닌 필수…"아이오닉5·GV60도 해외서 생산 늘려야"미국 정부 정책이 아니더라도 전기차 현지 생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전기차 수요가 세계적으로 급증하는데 반해, 생산 확대 속도는 배터리·원자재 공급 문제로 더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만들면 무조건 팔리는 게 현재 전기차 시장이라는 것. 때문에 전기차를 현지에서 바로 생산해 소비자에게 차량을 빠르게 인도하는게 매우 중요해졌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전기차 경쟁력이 상품성에서 생산능력으로 바뀌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도 핵심 미래 사업인만큼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투자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 판매량 세계 1위 테슬라는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기가팩토리 베를린' 가동을 시작했다. 주력 상품인 모델Y를 유럽 현지에서 생산해 빠르게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독일 정부의 세금 혜택도 받아 차량 생산 단가는 더욱 내려갈 전망이다.


그간 현대차는 인도네시아 공장을 제외하고는 전기차에 대해 별다른 해외 투자가 없었다. 체코 공장에서 코나EV를 생산하기는 하지만 차세대 전기차와는 거리가 멀다.

제네시스 GV70 전동화 모델은 이미 미국 시장에서 호평을 받는 내연기관차 디자인에 350kW급 초급속 충전, 220V 일반 전원을 차량 배터리로부터 뽑아 쓸 수 있는 V2L(Vehicle to Load) 등 전기차 핵심 기능이 탑재된 차량이다.

다만 E-GMP 플랫폼 기반 전기차인 아이오닉5, 제네시스 GV60의 생산이 여전히 국내 공장에만 국한돼있는 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에서 호평이 쏟아진 모델도 GV70 전동화 모델 같은 내연기관차 기반 전기차가 아니라, 아이오닉5·EV6 등 플랫폼 기반 전기차이기 때문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국 뿐만 아니라 '현지화'가 전기차 시대의 핵심 추세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차세대 전기차들도 해외 생산을 반드시 늘려야 한다. 테슬라가 괜히 독일에 공장을 신설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