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과 소주는 어떻게 힙해졌나…'가장 국제적인' MZ세대의 역설

블랙핑크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 제니와 로제가 입은 의상을 김단하 단하주단 대표가 디자인했다/사진= YG엔터테인먼트

붕어빵, 반가사유상, 한복, 소주와 막걸리…


올해 1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찐터뷰'가 다뤄온 '힙 콘텐츠'들이다. 이른바 MZ세대들 사이에서 '힙'하게 여겨지고 있는 키워드를 잡고, 그와 관련한 인물들을 인터뷰해왔다.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한국적인 것', 즉 '전통'과 관련한 콘텐츠를 많이 다루게 됐다. 전통을 '따분한 것'이 아니라 '힙한 것'으로 재생산하고, 적극 소비하는 경향이 관측됐다.

2030세대는 화석화되고 있던 한복과 '부어라 마셔라' 문화에 찌들어온 소주·막걸리를 현 시대에 맞게 매력적으로 만들고 소비하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는 BTS(방탄소년단)의 RM이 구입한 뒤 MZ세대에게 '없어서 못 사는' 굿즈가 됐다. 붕어빵을 너무나도 좋아하던 20대 청년은 아예 붕어빵 위치 확인 앱까지 만들어 이를 플랫폼화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을 주도하고 있던 MZ세대들은 공통적인 언급을 했다. 한반도 역사상 가장 국제적 면모를 갖춘 20대, 30대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전통'의 재발굴에 나섰다는 것. 외국어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한 실시간 소통에 능하고, 어려서부터 해외 경험이 많은 청년들이 역설적으로 '우리 것'에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다.

황이슬 리슬 대표/사진=리슬 제공

다음은 생활한복 업체 '리슬'의 황이슬 대표(35세, 여)와의 지난 2월 인터뷰 내용이다. 그는 2014년 생활한복 브랜드 '리슬'을 만들고 한복의 일상화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청년이었다.


"생활한복 브랜드를 만들고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은 내용이 '이런 게 있었으면 했는데 드디어 나왔네요'라는 것이었다. 20대와 30대들이 볼 때 해외 친구들은 자기네들의 의복을 즐기고, 소비하고, 그런 문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문화가 없어서 아쉬웠다고 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입을 수 있는 한복이 나와서 반가웠다고 했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해외 친구들과 실시간 소통이 되는 시대다. 그런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예전에야 '외제'가 최고였지만, 지금 우리 세대들은 '우리도 우리 것을 해볼까?', '해보니 멋있네?', '힙하네?'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해외에서 직접했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전통'에 주목하기도 한다. 가수 박재범의 '원소주'를 만들고 있는 원스피리츠의 김희준 프로젝트매니저(PM, 39세, 남)는 지난 4월 인터뷰에서 '초록병(희석식) 소주'와 차별화되는 '증류식 소주'를 만들게 된 계기를 다음처럼 설명했다. 그는 '술플루언서(술+인플루언서)'를 자처하며 사회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다가 최근 '원소주' 프로젝트에 올인한 청년이었다.

김희준 원스피리츠 PM(프로젝트매니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2019년 스코틀랜드 양조장 투어를 다녀온 후 '나만의 우리술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증류주의 마법같은 모습들을 봤다. 너무 매력적이더라. 정말 많은 자기네 위스키들을 압도적으로 자랑했다. 그런데 우리술은 그들이 잘 모르더라. 녹색병(희석식 소주)만 좀 알더라."

"그래서 우리 증류주를 만들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좋은 전통주를 빚는 기술, 증류주를 만드는 기술들이 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등과 비교했을 때 그런 게 그동안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가야 할 길이 먼 것인데, 그만큼 또 포텐셜이 높은 것이기도 하다. 평소 증류주를 즐겨 마시지만, 희석식 소주도 즐겨 먹는다. 그것도 우리나라의 술이고 문화다. 희석식 소주만의 타격감은 어떤 술도 이길 수가 없다."

생활한복 업체 '단하주단'의 김단하 대표(32세, 여)는 이와 같은 듯 다른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는 제주도 카지노 직원으로 일하다가, 한복대여 사업을 하고, 내친 김에 생활한복 업체까지 차린 당찬 청년이었다. 그는 자신이 '한복'에 주목한 계기를 지난 2월 인터뷰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김단하 단하주단 대표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내가 여행을 좋아해 많이 다녔는데, 한복을 직접 만들어서 한 두번 해외에 나가봤다. 인생샷을 남기려고 그런 것이다. 직접 재봉틀을 구매해서 만든 한복을 여행갈 때 들고 나가 입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그 옷을 어디서 샀냐고 하고, 브랜드도 알려달라고 하더라. 심지어 자기도 사고 싶다고 하더라. 자기가 직접 유통하고 싶다는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복에 시장성이 있다고 느꼈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통주 구독 서비스'를 창업한 이재욱 '술담화' 대표(29세, 남)도 지난 4월 "해외에서 공부하며 해외의 술을 많이 접했다. 외국에는 '마리아주'라는 문화가 있다. 술이랑 음식의 궁합을 따져 페어링하는 문화"라며 "희석식 소주를 안 좋은 술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언젠가 전통주 박람회에서 마셔본 우리술들이 너무 맛있어서 '구독 서비스'를 구상하고 창업한 인물이다.

이재욱 술담화 대표/사진=술담화 제공

90년대생들에 대해 명쾌한 분석을 한 책 'K를 생각한다'의 저자인 임명묵 작가(28세, 남)는 지난달 25일 '찐터뷰'와 만나 이런 경향과 관련해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특히 문화적 위상의 상승과 굉장히 큰 연관을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우리나라가 굳이 꿀릴 게 없는데, 우리 전통 문화로 뭔가를 해보자는 인식이 배경이 된 거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한국이 전통 기반이 부족한 사회라는 게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전통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게 (전쟁 등으로) 다 쓸려나갔지 않나"라며 "보다 자유롭게 전통 콘텐츠를 만들어도 되는 것이다. 애초에 형식에 얽매일 게 많지 않다. 그게 엄청난 창작의 가능성을 만들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대목에서 "한복이 섹시할 수도, 펑키할 수도 있다"고 했던 황이슬 대표와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김희준 PM은 "소주는 소주 다워야 하지만, 또 소주는 소주 답지 않아야 한다. 전통이 강하면서도 힙해야 한다"고 했었다. 실제 MZ세대들은 이처음 힙하게 재창조된 전통 콘텐츠에 큰 관심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에 태어나 △온·오프라인을 통해 다량의 해외 경험을 축적한 MZ세대들이 △미국·유럽 등과 비교했을 때 꿀리지 않는 전통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자유롭게 재구성된 전통 콘텐츠에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임 작가는 "과거의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것에서 오는 에너지와 자유가 있다"며 "그것 때문에 소비 영역에서 전통의 부활 같은 게 가능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또 "K 콘텐츠가 세계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문화적 충돌을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한중갈등이 큰 상황"이라며 "중국이 우리 문화를 다 흡수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위기의식이 '전통의 소비'에 대한 관심을 상기시켰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임명묵 작가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