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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 그림을 사서…" 우크라 학생의 평범하고 간절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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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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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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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터뷰 : ZZINTERVIEW]16-① 절박한 3달을 보낸 한 우크라이나 대학생 이야기

[편집자주] '찐'한 삶을 살고 있는 '찐'한 사람들을 인터뷰합니다. 유명한 사람이든, 무명의 사람이든 누구든 '찐'하게 만나겠습니다.
[멕시코시티=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손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을 칠한 여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린다'와 관계 없음.  2022.03.25.
[멕시코시티=AP/뉴시스] 24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의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손에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을 칠한 여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사진은 '린다'와 관계 없음. 2022.03.25.
"안녕하세요. 저는 우크라이나 사람이지만 현재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있는 우크라이나인과 인터뷰가 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지만, 제가 한국어가 서툴러요."

지난 3월3일. '찐터뷰'의 우크라이나 사람들 편을 준비하던 기자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이같은 메시지가 하나왔다. 그의 이름은 린다(21세, 여성, 가명). 국내의 우크라이나인 커뮤니티에 '찐터뷰'가 남긴 취재 협조 요청글을 보고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기자의 어설픈 영어와 린다의 어설픈 한국어가 오가면서 우크라이나 현지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우크라이나에서 NGO(비정부기구) 활동을 해와 현지 각 지역에 지인이 있는 린다는 10명이 넘는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 결과 '찐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의 놀라운 항전·독립 의지 △러시아군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강간 등의 만행이 자세하게 보도될 수 있었다.

린다의 절박하고도 적극적인 협조는 그 자체가 이 전쟁에 임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정신'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쟁 발발 3달(오는 24일)을 앞두고, 이번에는 린다의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린다는 러시아에 현재 점령당한 헤르손 출신으로, 국내의 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지난 10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이 지점부터 시작했다.


점령당한 고향, 피난을 간 가족


- 부모님과 가족들은 현재 모두 무사하신가.
▷"부모님과 가족은 개전 이후 헤르손을 떠났다. 지금은 유럽의 한 국가에 난민으로 가 있다. 우리 가족을 받아준 호스트가 다행히 굉장히 친절하다."

- 헤르손 인근에 남으셨던 할머니의 근황은.(린다의 할머니 역시 '찐터뷰'와 인터뷰를 나눴다)
▷"할머니께서는 지금 헤르손을 떠난 상태다. 키이우 인근 서부의 한 도시에서 무사하시다. 할머니께선 끝까지 피난을 가시고 싶지 않아하셨다. 하지만 러시아군들이 저지른 '부차 학살'의 사진을 보고 결국 피난을 결심하셨다. 부차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1200명 이상)이 죽었다."
(C)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C)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 헤르손에 있는 집은 어떤 상태인가.
▷"폭격으로 헤르손의 많은 건물이 파괴됐다. 다행히 내가 있던 마을은 폭격을 당하지 않았다. 고향집은 무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당신의 고향, 헤르손은 아직 러시아군에 점령당한 상태다.
▷"러시아군은 헤르손에서 철수하게 될 것이다. 여름방학이 오면 우크라이나에 갈 계획을 하고 있다. 그때까지 헤르손이 해방돼서 갈 수 있기를 바란다."

린다는 지난 3월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 "전쟁이 끝나면 가장 친한 친구와 러시아의 점령지였던 크림반도와 루한스크를 여행할 것"이라고 말했던 바 있다. 그 꿈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린다는 러시아군의 연이은 졸전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거론하며 "전쟁이 한 달 후에라도 러시아의 패배로 끝날 수 있다. 이 전쟁이 그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기대했다.


언론 제보, 집회에, SNS 활동까지…그 절박함


그러고보니 약 2개월만에 만난 린다의 모습이 수척해보였다. 실제로 체중이 많이 빠졌다고 한다. 탈모 등으로 고생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쟁 중인 조국,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타국으로 피난을 간 가족들…제대로 된 삶을 살기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학업 뿐만 아니라 인터뷰 섭외 등 각종 사회활동을 병행해온 것이다.

- 전쟁 발발 이후 어떻게 살아왔나.
▷"기억이 잘 안 난다. 다양한 일들을 했다. 일이 많아서 공부에 집중하긴 힘들었다"

- 우크라이나인들을 섭외해주는 일들은 힘들지 않았나.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지금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지 않나.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전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로이터=뉴스1) 이성철 기자 = 28일(현지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을 위한 숙박 시설로 탈바꿈한 다목적 실내 경기장인 Hala Orbita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로이터=뉴스1) 이성철 기자 = 28일(현지시간) 폴란드 브로츠와프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을 위한 숙박 시설로 탈바꿈한 다목적 실내 경기장인 Hala Orbita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 잠을 잘 못잤을 거 같다.
▷"잠은 잘 자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되려면 오히려 잘 자야 한다.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린다는 언론 접촉을 '찐터뷰'에만 하진 않았다. 약 8개 정도의 국내 언론사에 우크라이나 현지 상황에 대한 제보를 해왔다고 한다. 반(反)러시아 집회에도 거의 매주 출석하다시피 해온 건 물론이다. SNS를 통해 우크라이나의 소식과 사진·영상을 퍼나르는 자원봉사 활동도 했다. 우크라이나 피난민 가족을 받아줄 수 있는 집을 폴란드 등 타국에서 찾아주는 일 역시 조금씩 했다.


내 꿈은 내가 꾸민 키이우의 아파트


그렇다고 린다가 마냥 우울해 보였던 것은 아니다. 린다는 기본적으로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우크라이나 청년이었다. '전쟁'이라는 비극이 없었다면, 밝은 모습으로 한국에서의 생활과 학업을 즐기고 있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그의 '꿈'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 학업을 마치면 한국에 남을 것인가.
▷"아니다.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다. 국제 앰네스티와 같은 글로벌 NGO나 비즈니스 파트에서 일을 하고 싶다."

- 꿈을 물어봐도 괜찮을까.
▷"키이우에 아파트를 하나 사는 것이다."

- 응? 생각하지 못한 대답인데.
▷"하하. 내가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하는데, 보는 걸 좋아한다. 한국의 전통적인 그림들을 사서 우크라이나에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내가 방문했고, 좋아하는 나라들의 전통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그림을 수집하고 싶다. 그래서 그 그림들을 내가 마련한 키이우의 아파트에 전시하고 싶다.

- 미술관 같은 건가.
▷"각 국의 책들도 사서 작은 도서관처럼 진열해두고 싶다. 내가 차(茶)도 좋아하는데, 차 콜렉션도 꼭 마련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꽃이 피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한국의 차를 지금 갖고 있다.

- 작은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건가.
▷"아니다. 그 정도는 아니다.(웃음)"
(키이우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 군의 포격을 받아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키이우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러시아 군의 포격을 받아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다. (C) 로이터=뉴스1
'꿈'을 물었을 때 '무슨 직업을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루겠다'는 식의 대답이 나올 줄 알았던 게 부끄러워졌다. 린다가 꿈꾼 것은 자신이 꾸민 고국의 아파트에서 평범하고 일상적인 삶을 사는 것에 가까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엉뚱하고도 순수한 답변에 린다가 꾸민 키이우의 '작은 박물관'에 언젠가 꼭 가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이 전쟁이 끝나야 한다. 평화로운 우크라이나가 돼야 한다. 도시의 재건이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즈음, 린다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과 해맑은 미소를 봤다. 그리고 가능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린다는 다음처럼 말을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리의 도시를 굉장히 빨리 재건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까지 러시아가 전쟁에서 끔찍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 집단학살, 여성을 향한 강간 등이 일어났잖나.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반드시 나라를 재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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