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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살고픈 눈빛이었어요"…여학생 살린 '의인(義人)'을 만났다[인류애 충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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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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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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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 한강 노들섬에서 산책하다 물에 빠진 여학생 외침 듣고 생명 구해낸 김시영 씨(47)…"그날 일은 다 잊어버리고, 무조건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편집자주] 세상과 사람이 싫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반대로 위로를 받기도 하고요. 구석구석 다니며 숨어 있던 온기를 길어내려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좋은 일들도 선한 이들도 많다고 말이지요. 힘들어 무너질 것 같은 날에 이리로 와서 쉬세요. 쪼그라 들었던 좋은 마음을 꺼내어 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인류애 충전소'에 잘 오셨습니다.
한강에 빠진 학생을 구해낸, 사람 살린 벨트를 들어보이는 김시영 씨(47). 웃음이 참 정겹다./사진=남형도 기자
한강에 빠진 학생을 구해낸, 사람 살린 벨트를 들어보이는 김시영 씨(47). 웃음이 참 정겹다./사진=남형도 기자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일러스트= 조보람 작가(@pencil_no.9)
동주민센터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다리는 이를 봤다. 훤칠한 키에 연갈색 안경을 쓴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 대번에 사람 살린 의인(義人)이 이분이구나 싶었다. 다가가 "선생님, 안녕하세요!"하니, 웃으며 인사한 뒤 내게 되묻는다. "앗, 그런데 어떻게 대번에 알아보셨어요?"

그래도 사람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나름의 감(感)이란 게 좀 있다고, 선생님에게서 어쩐지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고 답했다. 그와 카페까지 나란히 걸었다. 오월에 내리쬐는 오후 햇살이 따사로웠다. 살아 있어서 좋은, 아무 대가 없이 누릴 수 있는 것들 아닌가. 그러니 그가 살렸다는 이름 모를 생명이 더더욱 다행스레 느껴졌다.

나이가 고작 10대인 여학생이었단다. 주말 저녁 노들섬 인근 한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처음엔 물에 빠졌단 행인의 말에 이 남자는 '설마 누군가 구하겠지' 했다가, 사태가 위급한 걸 알고는 전력 질주해 아이에게 달려갔다. 결론부터 말하면 학생은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어느새 카페에 도착했는데, 성큼 들어서는 남자의 뒷모습이 아까보다 더 크고 든든해 보였다. 만날 수 있어 영광이라 여기며, 기꺼이 음료를 사겠다고 했다. 시원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놓고 대화가 시작되었다. 김시영 씨, 마흔일곱 살. 그게 사람다운 그의 이름이었다. 그날 있었던 일부터 물어보았다.



정말 살고픈 아이의 눈빛… 순간 너무 뛰어들고 싶었지요


물에 빠진 여학생을 구조하기 위해 한강 위에서 달려와 도착한 구조대. 부리나케 살리겠다며 달려온 모두 고마운 이들./사진=김시영씨 제공
물에 빠진 여학생을 구조하기 위해 한강 위에서 달려와 도착한 구조대. 부리나케 살리겠다며 달려온 모두 고마운 이들./사진=김시영씨 제공
형도 : 저녁에 한강서 산책하고 계셨었다고요.
시영 : 걷기 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맨 앞에서 걷는데 어떤 여성분이 제 옆을 지나며 "사람이 물에 빠졌어!" 하시더라고요. 처음엔 '누군가 구했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쪽으로 갔어요. 그런데 분명 사람이 빠졌다 했는데, 인근에 구급차도 없고 사람도 없어 이상한 거예요.

형도 : 상황이 심각하단 걸 느끼셨던 거군요.
시영 : 한강 다리 아래서 하얀 교복이 떴다가, 가라앉았다 하는 거예요. 이건 위급한 것 같단 생각에 소름이 돋더라고요. 그때부터 막 미친 듯이 뛰어갔지요. 갔더니 여학생이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곁에선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앉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시더라고요. 저보고 "어서 빨리 들어가서 구해줘"라고 하시고요.

형도 : 어떡해요. 그때 학생은 어떤 상태였나요?
시영 : 저랑 눈이 마주쳤는데, "살려주세요"하고 절박하게 외치는 거예요. 순간 바로 뛰어들어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러다 둘 다 위험해져서 죽는 일도 많잖아요. 제가 수영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요. 조금 침착하게, 구할 방법을 생각했지요.



가방과 허리띠 연결해 던지고… 끌어올리다 아이 얼굴 다칠까 걱정도


벨트 매듭을 짓고, 가방과 연결해 학생에게 던졌다. 익수자를 구조할 때, 섣불리 뛰어들지 말고 한 번만 냉정하게 방법을 생각해보란다./사진=남형도 기자
벨트 매듭을 짓고, 가방과 연결해 학생에게 던졌다. 익수자를 구조할 때, 섣불리 뛰어들지 말고 한 번만 냉정하게 방법을 생각해보란다./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저라도 정말 머리가 새하얘졌을 것 같아요. 뛰어드는 것 말곤 생각도 안 날 것 같고요.
시영 : 천만다행으로, 그날따라 크로스백(옆으로 메는 가방)을 멘 거예요. 크로스백에 허리띠를 풀어서 고리를 만들어 묶고, 두 개를 연결해서 물에 던졌지요. 바닥에 엎드려 던졌는데, 다행히 학생이 한 번에 줄을 잡았어요. 그래서 쭉 당기며 소리쳤지요. "야, 정신 차려! 줄 꼭 잡아!"

형도 : 그 판단은 정말 '신의 한 수'네요. 원래 그런 구조 방법을 배우셨던 건가요?
시영 : 전혀요. 근데 위기 상황이 터지니까, 순간 연산 처리가 되는 것처럼 쫙 떠오르더라고요.

형도 : 그다음엔 어떻게 됐나요?
시영 : 줄을 당겨서 가까이 왔는데 학생이 힘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아이 손목을 잡았어요. 물이 묻어서 미끌미끌하더라고요. 엎드린 상태라 들 힘은 안 되더라고요. 제가 류마티스가 있어서 왼손은 힘을 콱 못 주거든요. 또 섣불리 당겨서 들었다가 시멘트 바닥 턱에 학생 얼굴이 다 긁힐까 봐 되게 신경 쓰이더라고요.

형도 : 그렇게 다급한 와중에도요, 아무래도 아이라서…
시영: 일단 제가 아이 손은 꼭 잡고 있으니까, 이건 놓지 않을 테니까요. 혹여나 흉터가 남으면, 평생 볼 때마다 그 사고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그게 싫더라고요.

시영 씨는 뒤따라온 이들에게 "도와달라"고 크게 소리쳤다. 누군가 119에 신고했고, 아이를 함께 끌어 올렸다. 작은 돗자리를 팔뚝에 대어 상처가 안 나도록 신경도 썼다. 땅에 올라온 뒤 학생은 손을 덜덜덜 떨었다. 아주머니들이 학생 몸의 물기를 닦고, 손을 잡고 마사지하며 기다렸다. 불과 10분도 안 되어 한강에서 배가 한 척 오고, 구급차가 오고, 경찰이 왔다. 시영 씨의 이름과 연락처, 생년 월일도 적어갔다. 구급차가 떠나고 다시 산책하는데 그제야 시영 씨의 심장이 '쿵쿵쿵'하며 뛰었다. 그래도 침착하게 대응했구나 싶었다.



칼 맞아 피흘리는 이도, 업고 뛰었었다


따뜻한 웃음이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사진=남형도 기자
따뜻한 웃음이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는./사진=남형도 기자
형도 : 사람을 구하신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셨지요.
시영 : 2002년에 중국 북경에 어학연수를 갔었어요. 그때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유행해서 기숙사에 남아 있었거든요. 5월이었는데, 그때 기숙사 경비하는 친구들과 친해져서 밥을 먹고 있는데, 어느 날 담장 밖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담을 올라가 밑을 보니 칼 든 남자가 있고, 여자 한 명은 피 흘리며 기절해 있고, 또 다른 여자는 소리치고 있었고요.

형도 : 아이고, 이 일도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네요. 어떻게 하셨나요.
시영 : 담장을 뛰어넘어 내려갔지요. 겁은 안 나더라고요. 경비원들도 따라 내려오니, 칼 든 남자는 도망갔고요. 피에 물든 여자를 업고 막 뛰어가서 택시를 잡았지요. 병원까지 함께 싣고 갔고요.

형도 : 사실 대단하신 게요. 괜히 꼈다가 다칠까 봐, 모른 척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럴 때마다 끼어들고 사람을 구하고,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는 건가요?
시영 : 제가 외국에 살면서 여러 나라를 다녔는데요. 우린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우리나라, 우리 가족. 다른 나라에선 그런 말을 잘 안 쓰거든요. 각자도생이란 말을 안 좋아해요. 사회는 유기체이고, 우린 서로 다 연결돼 있잖아요.
"정말 살고픈 눈빛이었어요"…여학생 살린 '의인(義人)'을 만났다[인류애 충전소]
그러면서 시영 씨는 앞에 놓인 시원한 커피를 가리켰다. 우리가 이걸 마시려고 아프리카서 원두를 따온 건 아니잖냐고. 그 많은 이들이 연대하고 비용을 맞추고, 그래서이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거라고. 나 홀로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켰기에 이 한 잔을 마시는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커피 맛이 유독 청량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여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무조건, 잘 살아달라고"


김시영 씨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해낸 여학생.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했다./사진=김시영씨 제공
김시영 씨와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구해낸 여학생.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했다./사진=김시영씨 제공
시영 씨가 마음 쓰이는 게 있어 보였다. 살려낸 여학생이, 혹시나 그날 유독 마음이 힘들어 한강에 왔다가 빠진 거라면…그런 생각 말이다. 노들섬은 유원지이고 데이트 코스인데 홀로 가방도 없이 교복을 입고 와 물에 빠졌으니 말이다.

형도 : 그러게요. 혹시 그 학생에게 힘든 일이나 고민이 있었던 거라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시영 : 지나고 나니 다 별 것 아니더라고요. 그땐 정말 힘들었지만요. 살다 보니 그보다 더 좋은 일도 많고요. 물론 더 힘든 일도 많아요. 근데 그 일 역시 별 게 아니더라고요, 지나고 보면. 어렵고 힘들면 옆에다 이야기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 도와줄 준비가 돼 있으니까. 우리나라에 맘 착한 사람, 좋은 사람 정말 많아요.
고생하는 이들 덕분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살았을 게다. 이 또한 당연한 게 아니다./사진=김시영씨 제공
고생하는 이들 덕분에, 오늘도 많은 이들이 살았을 게다. 이 또한 당연한 게 아니다./사진=김시영씨 제공
혹여나 그 학생이 의심이 많은 나 같은 성격이어도, 그래서 잘 믿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세상에 좋은 사람 한 명은 확실히 있단 걸 알지 않았을까. 물에 빠진 자신의 손목을 잡아준 한 아저씨 덕분에 말이다.

형도 : 아, 혹시 그 학생에게 연락이 오진 않았나요?
시영 : 차라리 그 학생이 제게 연락하지 말고 다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아무것도 모를 나이잖아요. 뭔가 고민이 있을 것 같아 지금도 좀 가슴이 찡하거든요. 무조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제가 가장 원하는, 학생을 구한 저에 대한 상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덧붙인 말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왈칵 데워졌다.

"그러라고, 살리면서 생채기 하나도 안 나게 하려고 노력한 거니까요."



시영 씨가 꼭 써달라던 마지막 '당부'


/사진=국가안전재난포털
/사진=국가안전재난포털
입수자를 보면 사람들이 뛰어들고 싶거든요. 주위서도 그런 걸 기대하고, 영화에서도 그러는데 한 번만 참았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방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잘난체 하는 걸까, 못 구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만 안 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습니다. 그걸 꼭 기사에 담아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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