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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거래내역 10만건 뒤져 1454억원 찾아준 경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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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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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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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범죄수익 추적수사팀 경사

[편집자주]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34만건(2019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이동근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범죄수익 추적수사팀 경사. /사진제공=이동근 경사
이동근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범죄수익 추적수사팀 경사. /사진제공=이동근 경사
법인 13개, 계좌 44개, 입금자 2800여명, 입금액 3000여억원, 거래내역 12만4387건.

2020년 12월, 이동근 부산경찰청 범죄수익 추적수사팀 경사(37)와 팀원들은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압수한 금융거래 내역을 넘겨받았다. 일용직 노동자, 예비 신혼부부 등 2800명이 넘는 피해자로부터 투자금 명목으로 3000억여원을 가로챈 유사수신업체 일당의 거래내역이었다.

유사수신업체는 부동산 부실 채권을 구입한 후 재판매하는 방식으로 연 30~4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투자금을 받았다. 이들 일당이 만든 법인만 13개였다. 이 경사와 추적팀이 거래내역을 훑으며 자금흐름을 샅샅이 밝혀내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피의자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풀려나 숨겨 놓은 범죄수익으로 호화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다. 경찰이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이 경사와 추적팀의 밤샘 작업 끝에 피해금액 중 절반에 가까운 1454억원을 몰수 보전할 수 있었다. 몰수 보전한 범죄수익은 법원의 최종 판단에 따라 피해자가 돌려받게 된다. '폰지사기'의 특성상 선순위 피해자의 피해금액이 후순위 피해자에게 '수익금' 명목으로 지급되는 탓에 사기꾼이 잡혀도 피해액의 20~30% 정도만을 돌려받는 경우가 대다수인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과였다.


회계장교 출신의 세무회계 특채 경찰관…거미줄 같은 범죄 수익의 흐름


이 경사는 해병대 회계장교 출신이다. 세무회계 특채로 경찰에 입직해 해운대경찰서 수사과 경제팀을 거쳐 부산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소속 범죄수익 추적수사팀에서 근무 중이다. 범죄수익은 관련법에 따라 국가 귀속이 원칙이지만 사기나 횡령·배임 등 범죄의 피해자 자산은 예외적으로 피해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이 경사와 추적팀의 성과는 범죄 피의자의 혐의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경제적 손실을 복구해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인 셈이다.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이 분석한 자금흐름도. /사진=이동근 경사 제공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이 분석한 자금흐름도. /사진=이동근 경사 제공
지난해 7월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사기 등 혐의로 유사수신업체 대표 등 13명을 검거해 발표한 사건에서도 이 경사와 추적팀의 분석 보고서가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추적팀은 10만건이 넘는 거래 내역을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에 입력했다. i2는 자금 흐름을 분석해 거미줄 같은 관계도로 그려준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계좌나 피의자가 등장하면 추가로 영장을 받아 계좌를 추적하는 작업을 반복했다. 추적팀은 이 작업을 반복하면서 복잡한 관계도를 단순화해 가며 자금 흐름의 줄기를 잡아냈다.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이 분석한 자금흐름도. /사진=이동근 경사 제공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이 분석한 자금흐름도. /사진=이동근 경사 제공
원칙적으로 범죄 피해금이 피의자의 계좌에 있다 하더라도 통상적인 영업행위에 따른 매출이나 개인 자금 등 합법재산이 섞여 있는 '혼화재산'은 몰수할 수 없다. 다만 범죄 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물건의 전부 또는 일부가 소비됐거나 분실 등 기타 이유로 몰수할 수 없을 때는 그 물건에 상당한 가액을 추징할 수 있다. 피의자 계좌에 여러 자금이 섞인 혼화재산은 추징 보전을 통해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추징하려는 재산이 범죄수익이라는 것을 명확히 입증해야 한다.


페이퍼컴퍼니 입증위해 5개년도 재무제표 전수조사…"범죄수익 몰수하면 범죄의지 사라질 것"


이 경사는 피해자들의 소중한 재산을 최대한 보전하기 위해 13개 법인의 5개년도 재무제표를 모두 분석했다. 피해금 추징을 위해서 유사수신업체가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 매출을 만드는 것이 아닌 페이퍼컴퍼니라는 것을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범죄수익 추적조사팀 내에서도 회계를 담당한 이 경사가 전담해야 했다. 분석결과 13개 법인은 매출액도 거의 없었고 적자를 누적해왔다. 투자금을 받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약정한 이율로 투자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었다. 이 경사의 보고서는 사기죄를 입증할 중요한 증거자료가 됐다.

범죄수익 추적팀의 조사결과 3000여억원의 피해금은 경기 포천 일대 땅과 서울 강남의 건물 등 부동산 1350억원을 구입하는 데 쓰였다. 이들 일당의 계좌에 예치된 104억원 상당의 피해금도 피의자의 합법재산과 분리해 추징 보전했다. 경찰은 1350억원 상당의 부동산과 104억원의 예금 등 1454억원의 범죄수익을 추징·몰수했다. 지난해 경찰이 몰수·보전한 범죄수익 중 2번째로 큰 규모였다.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을 이용해 분석 중인 이동근 경사. /사진제공=이동근 경사
경찰의 수사자료 분석시스템(i2)을 이용해 분석 중인 이동근 경사. /사진제공=이동근 경사
이 경사의 꿈은 경찰에서 금융감독원이나 국세청에 버금가는 세무회계 전문지식을 쌓아 반부패·경제범죄 수사의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는 "일부 피의자들이 '나는 형 살다 나오면 된다, 범죄 수익 은닉해 놨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며 "은닉한 범죄 수익을 완전히 몰수·추징해 버리면 범죄자들의 범행 의지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업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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