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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파기'와 '알박기'[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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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6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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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개봉한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 '업(UP)'은 재개발이 한창인 지역에서 사랑하는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지키려는 '칼' 할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평생 모험을 꿈꿨던 그가 수천개의 풍선을 집에 매달고 양로원행을 피해 하늘로 날아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다. 러닝타임 내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며 감동과 재미를 준 이 작품은 흥행 성공은 물론 완성도 측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그해 최고의 영화로 등극했다.

이후 '업'은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알박기 할머니' 사연이 세간에 알려지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이 실화의 주인공은 80대 노파 '이디스 메이스필드'다. 그녀는 미국 시애틀의 작은 마을 발라드에 살고 있던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이 지역에 쇼핑센터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이른바 '알박기'로 지은지 100년이 넘은 집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당시 건축 책임자였던 '베리 마틴'은 그녀의 집 매입 비용으로 거액(한화 11억원)을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간 신문지상에 오르내렸던 흔한 재건축 알박기 사례와 다를 바 없지만 영화만큼 감동적인 얘기는 그 뒤에 따라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20년을 함께 산 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메이스필드의 소원을 전해들은 마틴은 그녀의 집을 그대로 남겨둔 채 쇼핑센터를 건립하게 된다. 마틴의 배려는 할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그녀도 극진한 간호로 곁을 지킨 마틴에게 유산으로 집을 남겼고, 마틴은 '한 지붕 아래서(Under One Roof)'란 책을 펴내 메이스필드와의 추억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현실의 알박기는 이처럼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알박기의 유례가 된 부동산 개발 현장보다 더 자주 이 단어가 인용되는 정치권에선 더욱 그렇다. 대부분이 국가 권력 교체기에 인사 관련 '몽니'로 치부되며 신구 세력간 갈등의 불씨가 되기 일쑤다.

'알박기'를 땅굴파기란 뜻의 '버로'(burrow)로 부르는 미국도 어김없었다. 버로는 통상 전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해고가 쉬운 정무직이 아닌 임기가 보장된 임명직에 측근이나 소속 정당 인사를 임명해 심는 것을 의미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막판에 공화당측 인사인 마이클 엘리스 수석보좌관을 국가안보국(NSA) 수석 법률 고문역에 앉힌게 대표적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초기 이런 알박기 인사로 곤욕을 치뤘다. 이번에 윤석열 정부가 출범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우조선해양 대표 선임과 감사원 감사위원 교체를 두고 불거진 알박기 논란이 공기업·공공기관 인사로 번지면서 여야간 충돌 상황이 격화되기도 했다.

다음달 1일 선거를 통해 시장과 시의원을 뽑는 서울시도 알박기 인사로 시끄럽다. 더불어민주당이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는 서울시의회가 6월말 임기 종료를 앞두고 국회의원 보좌관과 같은 역할을 하며 최대 5년의 임기를 보장받을 수 있는 정책지원관 채용을 강행하면서다. 여기에 서울시 과장급(4급)으로 입법 조사·연구 등을 총괄하는 시의회 수석전문위원 등에도 민주당 인사를 잇따라 선발하면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 측에선 "무리한 채용"이라며 새 의회가 구성되는 7월 이후로 절차를 미뤄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의회 안팎에서도 "누가봐도 공정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 "알박기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꼼수" 등의 비판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측에선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대선 패배 이후 사과와 반성을 반복하며 "한번만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는 민주당의 진정성에 의구심이 생기는 이유다. 이러고도 무조건 표를 달라고 하는게 맞는지, 실망한 지지자들의 이탈이 두렵지 않은지 정말 묻고 싶다.
'땅굴파기'와 '알박기'[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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