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와 방산 FTA 추진…"K-방산 보단 배터리·반도체가 먼저 혜택"

(평택=뉴스1) 안은나 기자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2일 경기 오산 공군기지에 위치한 항공우주작전본부(KAOC) 작전조정실을 찾아 인사말을 마친 후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2022.5.22/뉴스1

한미가 방산분야의 '자유무역협정(FTA)'인 국방상호조달협정(RDP)을 추진하면서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무기에 쓰이는 부품 수출시장이 커질 전망이다. 미국이 방위산업에서 부품 공급망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관련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RDP를 체결하면 당장 무기체계 수출이 늘어나기보다 미국 방위산업 공급망에 한국 민수기업의 참여가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해 자국의 방위산업 공급망을 점검한 뒤 유도무기, 배터리, 단조 및 주조, 반도체 등이 공급망의 취약성으로 인해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월엔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제시했는데 동맹국과의 협력강화가 하나의 방안으로 제시됐다. RDP 체결국을 늘리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RDP는 미 국방부가 동맹국·우방국과 조달 제품 수출 시 상호 간 무역장벽을 완화하기 위해 체결하는 양해각서다. 미 국방부는 조달사업에서 전체 원가의 55% 이상을 미국산 부품비로 채우지 않으면 수출원가에 50% 가량 할증을 부과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오는 2028년엔 미국산 우선 구매제도 적용 비율을 75%까지 확대할 계획이어서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선 RDP 가입이 필수적이다.

美 "방산분야 배터리·반도체 취약"…韓 기업 기회특히 미국이 방위산업 공급망의 취약점으로 꼽은 배터리, 반도체의 경우 첨단 무기를 만들고 군을 현대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부품이다. 배터리는 드론, 무인차량 등에 쓰인다. 최근 장갑차·전차 등 궤도차량도 제어하기 쉽고 소음이 적은 하이브리드 전기추진장치를 탑재하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잠수함, 전투기도 배터리를 적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반도체 역시 전투체계, 군 통신체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없어선 안 되는 부품들이지만 미국 기업들이 수요가 불규칙하고 생산이 어려운 방위산업에서 철수하면서 공급망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우수한 민간 기업들의 진입을 촉진하기 위해 획득 정책 개선 및 민군겸용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우수한 기술력을 갖춘 동맹국과의 협력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미 국방부는 지난 2월 미국 방위산업 공급망조사 보고서를 통해 반도체의 경우 기존에 미국에서 진행 중인 한국과 대만의 투자를 활용해야 한다며 삼성을 언급했다. 특수 차량용 반도체, 방산제품에 자주 쓰이는 화합물 반도체 등에서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배터리도 배터리 규격을 표준화하고 민군겸용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언급함에 따라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미국 방산시장 진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리 기업도 미국과 공급망 리스크 관련 공동 대응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수산화리튬, 수산화코발트, 반도체 개별 소자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원자재 공급망을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연구원도 배터리, 반도체 등 한국의 비교우위가 높고 미국의 협력 의사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미국 방산시장에 진입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미정 산업연구원 기계·방위산업실 전문연구위원은 "RDP는 결국 국방조달 시장이 열리는 것이기 때문에 민간 기업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며 "미국은 미래전에 대응하기 위한 배터리·반도체 수요가 한국보다 훨씬 빠르게 늘고 있어 미국에 대규모 생산공장을 갖춘 우리 기업들의 진출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단기간 무기 수출 성과 기대 일러…"韓 방위산업 생태계 영향도 적을 것"다만, 업계에선 RDP가 체결되더라도 단기간 내 무기체계의 수출성과로 이어지긴 힘들 거라고 보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첨단 무기체계를 직접 개발·생산하고,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거나 수요가 제한돼 직접 생산하지 않는 일부 무기체계만을 해외에서 도입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일본, 호주, 영국 등을 포함한 28개국과 RDP를 체결했지만 이들 국가의 대미 무기 수출입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RDP 체결로 미국산 방산제품이 시장에 들어오면서 중소 방산기업 생태계가 무너질 것을 우려하지만 이 역시 걱정하기 이르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김 연구위원은 "RDP는 최소한의 무역장벽만 완화시키는 효과를 갖고 있고, 각 국이 방위산업에 중소기업 계약 할당제 등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다"며 "RDP 체결 전후로 체결국의 방산기업 생태계나 무기 수출입에 단기간 큰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무기 수출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중장기적으론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화디펜스,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등 방산기업이 진행 중인 미국 사업도 조금 더 유리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화디펜스는 사업비가 총 54조원 규모인 미국 차세대 장갑차 (OMFV) 프로젝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KAI도 미국 해군고등훈련기(UJTS)와 공군전술훈련기(ATT) 사업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