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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아, 당장 멈춰라"…소련 해체·독일 통일 이끈 고르비의 일침[그 w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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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지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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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29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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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냉전 종식한 옛 소련 마지막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편집자주]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됐던 화제의 인물, 그 후를 조명합니다.
지난 2004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지난 2004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1980년대는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 국가들과 옛 소련을 앞세운 공산 국가들의 대립이 극심했다. 정치와 이념 논리가 배제돼야 할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때문에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1984년 LA올림픽은 반쪽 행사가 됐다. 서방 국가들과 동구권 국가들이 번갈아 보이콧을 선언했다.

세계사의 전환이 시작된 건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이다. 서울올림픽은 양쪽 진영 160개국이 동시에 참가, 냉전 종식을 알리는 축제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듬해인 1989년 6월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고, 같은 해 11월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1년에는 소련 연방이 해체됐다.

이 숨가쁜 일련의 사건들 중심에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마지막 대통령이 있다. ( '고르비'라는 애칭으로도 익숙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40여년간 이어진 냉전·공포 시대의 막을 내리고 인류에게 평화를 선물한 장본인. 소련이 해체된 지 31년 만인 2022년, 그를 회상하는 세계인들이 유난히 많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때문이다.


모스크바 법대 졸업한 인재…소련 공산당서 초고속 승진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99년 백혈병으로 숨진 부인 라이사의 장례식장에서 딸과 함께 슬픔에 빠져 있다. /ⓒ AFP=뉴스1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99년 백혈병으로 숨진 부인 라이사의 장례식장에서 딸과 함께 슬픔에 빠져 있다. /ⓒ AFP=뉴스1
고르바초프는 1931년 러시아 남부 캅카스 산맥 인근 스타브로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농부였고, 고르바초프 역시 어린 시절부터 농장 일을 도왔다. 가정 형편은 어려웠지만, 가족간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에서 자랐다. 학업성적이 뛰어나 러시아 최고 명문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부에 진학해 1955년 학위를 받았다.

고르바초프는 대학 재학시절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고, 졸업 후 고향으로 돌아와 관리의 길을 걸었다. 지방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중앙당으로 진출, 초고속 승진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술을 멀리하고, 불평 없이 일하는 그의 근면함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소련 공산당 최연소 정치국원을 거쳐 1985년 서기장, 1988년 소련연방최고회의 간부회의장에 올랐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1990년 대통령제를 신설한 소련 연방이 1991년 해체됐기 때문이다.

부인 라이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 부인이 백혈병으로 숨진 뒤 고르바초프는 "라이사가 떠난 후 삶의 의미를 잃었다"며 "여러 달 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처박혀 지냈다"고 심경을 밝혔다.


고르비가 없었다면, 독일 통일 가능했을까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헬무크 콜 독일 총리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199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정상회의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헬무크 콜 독일 총리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없었다면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통일하는 역사적 사건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1989년 10월 27일 고르바초프는 20년 이상 지속해 온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폐기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브레즈네프 독트린은 사회주의 국가 중 어느 국가의 정치적 체제가 위협받을 경우 전체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회주의국가가 무력개입을 해도 정당하다는 합의다.

헬무트 콜 당시 서독 총리의 독일 통일 지지 요청에 고르바초프는 순순히 응했다. 당시 동독에는 소련군 50만명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반대했다면 독일 통일은 불가능했다. 통일이 이뤄졌더라도 평화적인 방식이 아닌 피의 대가를 치렀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소련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군대를 철수할 비용조차 없었는데 고르바초프는 무조건 독일 통일에 찬성한 뒤 나중에 군 철수 비용을 독일에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세계 냉전을 종식하고 독일 통일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왼쪽)과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하는 모습/사진=뉴스1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왼쪽)과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하는 모습/사진=뉴스1
고르바초프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대거 참가하는데 고르바초프가 큰 힘을 발휘했다. 1990년 9월에는 양국이 전격 수교했다. 북한이 신경전을 벌이며 반대했지만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한국 북방외교는 성과를 냈다. 이를 계기로 소련은 북한에 대한 원조를 끊고,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다.



"고르비가 나라 망쳤다"…러시아 우익들의 평가


미하일 고르바초프 자서전 표지
미하일 고르바초프 자서전 표지
소련 해체 직후 고르바초프는 정권에서 밀려났다. 소련 보수파가 주도하는 쿠데타 세력에 구금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뒤를 이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 초대 대통령은 고르바초프에 대한 예우를 하지 않았다. 한 때는 대통령을 지낸 고르바초프의 연금이 한 달 기준 1달러에도 못 미치는 형편 없는 대접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고르바초프는 199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0.5%라는 처참한 득표율을 기록했다. 전 세계에 평화를 선물했지만 러시아 내부의 평가는 좋지 않았던 것이다. 우익 성향 국민들은 "소련을 망하게 한 장본인"으로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련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며 "역사를 바꿀 수 있다면 손대고 싶은 사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4년 퓰리처상을 받은 윌리엄 타우브만은 고르바초프의 삶을 저술한 책에서 "소련을 스스로 무너뜨림으로써 인류를 구했지만, 자신은 정치적으로 몰락한 고르비는 착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1999년 9월 독일 베를린 벨뷰 궁전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다정한 포즈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1999년 9월 독일 베를린 벨뷰 궁전에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다정한 포즈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당장 전쟁 중단해" 91세 고르비의 외침


지난 2007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지난 2007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AFP=뉴스1
올해 91세가 된 고르바초프는 세계 평화와 관련 꾸준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핵안보·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한 세계 지도자 연합' 회의에 "핵무기가 평화를 보장한다는 주장은 망상"이라며 "핵무기 경쟁에 막대한 금액을 쏟는다면 인류에 더 나은 안보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재단 성명을 통해 당장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 재단은 "인간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며 "첨예한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호 존중과 이익에 입각한 협상과 대화가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러시아는 즉각 적대 행위를 멈추고 평화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 AFP=뉴스1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 AFP=뉴스1
40여년간 인류를 옥죄던 냉전을 종식 시킨 소련의 마지막 대통령. 국제사회가 손꼽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자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위대한 업적을 담기에 노벨평화상은 한 없이 가볍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이달 27일까지 우크라이나 민간인 4031명(어린이 261명 포함)이 사망했다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집계를 보며 이 같은 역사적 상상을 해본다.

'소련을 해체한 고르바초프가 러시아 정권 장악에 성공했다면 오늘날 미치광이 푸틴을 마주하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푸틴은 소련시절 비밀경찰인 KGB에서 은퇴해 시골마을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거동이 불편해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아 이동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AP=뉴시스
거동이 불편해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아 이동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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