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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대통령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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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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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구민교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흔히 말보다 행동으로 보이라고 한다. 웅변은 은, 침묵은 금이라고도 한다.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어떤 위로의 행동보다 나을 때가 있듯이 비수를 꽂는 말은 평생 원한의 씨앗이 된다. 권력자 앞에서 아부나 침묵은 한 사람만 망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냥 친절한 말을 할 때보다 그것을 총과 함께할 때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악명 높았던 미국의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정확히는 영화 '언터처블'에서 그를 연기한 로버트 드 니로-의 말이다.

경제시장에서 중요한 신호는 재화와 서비스 흐름에 따라 결정되는 가격이다. 정치시장에서는 말의 흐름에 따라 권력이라는 신호가 작동한다. 재화나 서비스가 공급-소비되지 않는 경제시장을 상상할 수 없듯이 정치인이 무슨 말이든 만들어내지도, 지지자나 반대파가 이를 소비하지도 않는 정치시장은 상상할 수 없다. 툭하면 반대파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도 명분이 중요한 우리나라 정치시장에서 말을 상품화하는 독특한 방식이다. 문제는 '말'의 공급과잉에 따른 폐해가 커진다는 것이다. 특히 막말을 쏟아낸 정치인이 지불하는 사적 비용 대비 그것을 사회적으로 정화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크다. 이런 부정적 외부효과는 팬덤정치가 극성인 요즘 더욱 확대된다.

물론 정치인이 막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에게 영감을 주는 대통령의 말은 특히 중요하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웅변이 자유를 지키는 두툼한 방탄복이 됐기 때문이다. 8개월여에 걸친 히틀러의 대공습으로 런던 등 영국 곳곳이 쑥대밭이 된 와중에도 영국민들이 사기를 잃지 않은 것은 처칠 총리의 웅변 때문이었다. 그는 "제가 여러분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 그리고 땀뿐"이라는 취임사를 시작으로 수많은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의 링컨 대통령,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당신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지 물어라"의 케네디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전직 대통령의 어록 중 울림이 있었던 것을 꼽자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이승만) "우리도 할 수 있다"(박정희)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전두환)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노태우)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김영삼) "행동하는 양심"(김대중) "운명이다"(노무현) 등이다. 이후 세 대통령도 시대정신에 맞는 말을 찾기 위해 애를 썼지만 미안하게도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각종 규제의 폐단 사례로 들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전봇대"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의 "손톱 밑 가시" 발언은 여러 공무원이 오직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게 해 오히려 복지부동을 부추겼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취임사는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시작으로 임기 내내 논란이 됐다.

정의, 상식, 그리고 자유를 약속하며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 중 '반도체 특명'이 최근 화제다. 인재 양성 등의 취지에는 적극 공감하지만 자칫 현 정부의 '전봇대' '가시' '인국공'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스럽다. 윤 대통령이 아무리 '제왕적 대통령'을 경계하고 집무실 이전, 의전타파 등을 통해 그 의지를 보여주려고 해도 그는 명실상부한 최고 인사권자다. 누구보다 관료들이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거시적 자원배분 왜곡문제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미시적 인사상 불이익이 더 두려워서다. "연평도식 도발 시 원점타격으로 대응"과 같은 알 카포네류의 강온전략 안보정책과 관련해서는 환영이지만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는 '친절한 말'에만 그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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