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디지털 '기초 공사', 베트남 100년 은행 간다"

"동남아 지역에서 베트남우리은행이 디지털 혁신 관련 '맏형' 역할을 해야 한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만난 이종인 베트남우리은행 법인장의 말이다. 규모 면에서만 보면 베트남우리은행은 베트남 내에서도, 우리은행 내에서도 아직은 입지가 좁다. 하지만 디지털 혁신을 논할 때 존재감이 부각된다. 베트남 정부의 디지털 전환 기조에 맞춰 다른 은행들보다 안전하게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어서다.

속도가 생명이라는 디지털 전환 경쟁에서 베트남우리은행은 오히려 서두르지 않는다. 베트남의 디지털 전환이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베트남 정부는 지난해에서야 비대면으로 은행 계좌 개설을 허용했다. 베트남우리은행은 이에 걸음을 맞춘다. 한국에서 성공한 비대면 금융 상품이나 서비스를 바로 베트남 시장에 선보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인프라 구축에 집중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디지털 관련 기반을 잘 다져야 향후 베트남 내 제도 등 디지털 환경이 변할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이 법인장은 "한국 우리은행이 123년이 됐는데, 베트남우리은행도 100년, 200년 가야 한다"며 "2017년 법인 설립 직후에는 네트워크 확장 등 하드웨어를 다져야 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디지털 관련 기초 공사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소프트웨어를 구축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우리은행은 자신만의 템포로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 속도는 베트남 내에서 매우 빠른 편이다. 베트남우리은행은 2017년 베트남 최초로 펌뱅킹 서비스를 시작했다. 펌뱅킹은 기업 온라인 뱅킹으로, 기업이 전용 회선을 통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다. 펌뱅킹은 이후 베트남 내 입소문을 탔고, 최근 현지은행들이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베트남우리은행의 지난해 펌뱅킹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가장 먼저 펌뱅킹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후 완성도를 더욱 높여 기업들의 호응이 좋다. 이 법인장은 "최근 호찌민의 한 기업이 펌뱅킹 입찰을 붙였는데, 시스템이나 수수료 경쟁력이 훨씬 나아 계약을 따올 수 있었다"며 "올해 관련 인프라를 증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중앙은행이 주도한 새 금융결제망 추진 사업에도 외국계 은행 중 유일하게 참여했다. 최근 '차세대 금융결제 공동망(ACH)'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ACH는 금융기관 사이에 실시간 자금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공동망이다. 베트남 금융환경에서 난이도가 있는 구축 사업인 만큼 실패 가능성도 있었다. 이 법인장은 "신설 은행으로서 인프라를 선점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존 플레이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절박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우리은행은 탄탄한 인프라를 기반으로 점차 비대면 상품과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우선 베트남 외국계 은행 최초로 전자관세납부 서비스를 '연중무휴'로 제공하고 있다. 비대면 은행 계좌 개설 서비스인 e-KYC 서비스에는 역시 최초로 계좌점유 인증 서비스를 더했다. 이 서비스는 한국에서는 '1원 이체'로 알려진 본인 확인 절차다. 앞으로 베트남우리은행은 현지 주요 빅테크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우리WON뱅킹 베트남' 앱에서 교통, 쇼핑, 배달 등 일상 생활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이종인 베트남우리은행 법인장/사진=베트남우리은행 제공

성공적인 디지털 전환을 위해선 현지 디지털 인력을 끌어와야 한다. 이에 베트남우리은행은 디지털 문법에 익숙한 베트남 현지 대학생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베트남우리은행은 하노이의 빈 대학교 경영대학과 제휴해 인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 수료자는 졸업 후 베트남우리은행 입사 지원시 가산점을 부여받는다. 이 법인장은 "제 꿈은 베트남우리은행을 베트남의 젊은 인재들이 가장 근무하고 싶어하는 직장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법인장은 "베트남우리은행이 성공적인 경영 모델, 글로벌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다른 은행들이 참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겠다"며 "지금 길을 잘 만들어 놓아야 꼭대기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디지털 성장 기반을 다지고 도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