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수거책 활동하다 경찰에 자수한 30대 남성 '무죄'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하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경찰에 자수한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3단독 박희정 판사는 지난 22일 사기와 사기방조 혐의로 기소된 회사원 A씨(30)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2020년 12월22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에 있는 식당에서 저축은행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속은 피해자 B씨로부터 13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튿날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현금 3000만원을 편취하려다 경찰에 자수해 미수에 그친 혐의도 받았다.

A씨는 2020년 12월14일 한 행정사무실의 구인 광고를 보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 A씨는 자신을 행정사무실 팀장으로 소개한 신원미상의 인물에게 지시를 받아 서류와 현금을 전달하는 일을 하고 일당 25만원을 받기로 약속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A씨는 며칠 뒤인 22일 오후 2시40분쯤 피해자 B씨에게 1300만원을 건네받고 은행에서 10개의 계좌에 무통장입금을 했다. 아무런 의심 없이 돈을 송금한 A씨는 몇 시간 뒤 계좌가 여러 개인 것을 수상하게 여기고 경찰에 112 신고를 했다.


당시 경찰은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지만 '보이스피싱이 아닐 수도 있다'며 돌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날 경찰서에 출두해 상담을 받으라고 권유하고 정식으로 사건화하지 않은 채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A씨는 경찰이 돌아가자 다시 업무 지시를 받았다. 이튿날인 23일에는 서울 성동구 아파트에 놓인 현금 3000만원을 수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현금을 수거한 직후 다시 수상함을 느끼고 용인동부경찰서를 찾아 자수하며 3000만원을 그대로 제출했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통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채용돼 업무를 수행했고 피해자 B씨로부터 수거한 현금을 여러 사람 명의를 이용해 송금한 사실을 인정된다"면서도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피고인과 성명불상자의 대화를 보면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을 공모했다거나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보이스피싱 피해금임을 알고 있었음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했다.

이어 "피고인이 과거 사기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으나 보이스피싱 범행에 가담해 처벌받은 전력은 없다"며 "보이스피싱 범행을 공모해 재산상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누범 기간 중에 처벌받을 것을 감수하며 범행하고 정식으로 사건화되기도 전에 수거한 현금 전부를 수사기관에 제출하며 신고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