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다리 훔쳐 보려고 PC방 갔는데…'건조물침입죄' 아닌 이유

여성의 신체를 훔쳐볼 목적이었더라도 통상적인 방법으로 PC방에 들어갔다면 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연음란 및 건조물침입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대전의 한 생활용품 판매점에서 여성 손님에게 다가가 자신의 옷을 벗고 음란행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같은 날 PC방에 들어가 테이블 밑으로 얼굴을 숙여 맞은 편에 있는 여성들의 다리를 약 40분간 훔쳐본 혐의도 있다.

검찰은 A씨가 생활용품 판매점에서 음란행위를 한 혐의에 대해 공연음란죄를, PC방에서의 범행에 건조물침입죄를 적용했다.


사건의 쟁점은 A씨가 여성을 훔쳐볼 목적으로 PC방에 들어간 행위가 건조물침입에 해당하는지 여부였다.

1심과 2심은 A씨에게 공연음란죄 및 건조물침입죄가 모두 성립한다고 보고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A씨가 2017년 공연음란죄 등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점도 양형에 반영됐다. 아울러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장애인복지시설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의 건조물침입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일명 '초원복집' 사건 판례가 뒤집혔던 것과 같은 법리다.

초원복집 사건은 김기춘 당시 법무부장관 등이 부산 초원복집에 모여 김영삼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관련 대화를 나눈 내용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도청장치를 설치한 당 관계자들은 주거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유죄를 선고받았다. 사건 당시 대법원은 "일반인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이라 해도 영업주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 의사에 반해 들어간 것이라면 주거침입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대법원은 25년간 이 판례를 바탕으로 주거침입 사건을 판단해왔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3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음식점에 영업주 승낙을 받아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간 경우 설령 영업주가 실제 출입 목적을 알았다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더라도 주거침입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며 종전 판례를 뒤집었다.

대법원은 A씨 사건에서도 "A씨가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된 PC방에 통상적인 출입방법으로 들어갔고 건물 관리자의 사실상 평온상태가 침해됐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다"고 봤다.

이어 "A씨가 여성의 몸을 훔쳐볼 목적으로 PC방에 들어가려는 사정을 건물관리자가 알았다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더라도 그런 사정만으로 건조물침입죄가 성립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