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ESG를 ESC하고 싶다?-2

이진우 국장

지난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ESC(Escape, 명령을 취소하거나 실행 중인 애플리케이션을 종료할 때 사용하는 키)하고 싶다"던 한 대기업의 ESG 관련 임원을 최근 다시 만났다. ESG의 범위와 개념이 모호하고 평가방식이 너무 많다고 불편해한 그다. ESG 평가를 기업가치 개선이 아닌 IR(기업설명회) 활동의 일환으로 보는 경영진이 정답도 모른 채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강요만 해서 힘들었다는데 지금은 달라졌을까.

"일단 돈도 잘 벌고 착하기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좀 옅어진 것 같다"고 했다. 한때 유행으로 지나갈 수도 있다는 기대(?)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과도한 열풍은 식어가는 것 같다고 한다. ESG에 부합하지 못하면 무조건 몰락의 길을 걸을 것인지에 대해선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론 "ESG란 용어가 나온 지 20년도 안 됐지만 그 쓰임새가 벌써 끝나가는 건지도 모른다"는 한 외신 보도에 대해서는 "아직 판단은 이르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어쨌거나 ESG경영을 둘러싼 시장환경과 평가는 확실히 달라졌다. 금리가 급격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ESG와 관련한 자산이나 금융거래에 붙은 프리미엄에 대한 거품론도 커진다. ESG 평가기준에 대한 신뢰도는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 논란을 가중시킨다.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일인데 ESG에 신경을 쓰면 쓸수록 돈이 더 드는 현실은 편법과 꼼수의 유혹을 느끼는 모순을 가져온다.

기업들의 ESG정책은 대부분 친환경 경영, 사회공헌, 지배구조 개선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언뜻 보면 과거에 해온 CSR(사회적책임)경영과 다를 것도 없다. 그런데 한때 'ESG 광풍'이 불면서 신뢰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과도한 프리미엄 내지는 페널티를 주면서 기업들의 '비재무적 긴장도'를 높이더니 이제 다시 투명성과 신뢰도를 살펴야 한다며 선풍기를 틀어댄다. ESG 채권시장이 이미 시들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스탠더드&푸어스(S&P)가 ESG지수에서 테슬라를 뺀 채 엑손모빌을 포함하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ESG는 사기(scam)"라며 반발했다. 그런가 하면 전쟁에 휘말린 우크라이나를 돕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생산하는 방위산업체는 ESG에 역행하는 것인지 논란이 일자 일부 외국은행은 방위산업에 대한 펀드편입 기준을 낮추기도 했다. 한마디로 어느 부문에 포인트를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지는 딜레마에 빠졌다.

그렇다고 일각에서 제기되는 ESG 무용론, 종말론은 너무 성급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고 분석하는 기준과 시스템은 계속 진화해야 한다. CSR에서 ESG를 거쳐 더 진화하거나 완전히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이름의 '○○○경영'이 또다시 등장할지언정 거대한 시대적 흐름은 막기 어렵다.


아무리 돈을 잘 벌어도 좋은 기업이 아니면 생존하기 어렵고 아무리 좋은 기업도 돈을 못 벌면 살아남지 못한다. 다만 돈도 잘 벌고 착하기도 한 기업이 되는 게 그리 힘든 건지 무조건 착한 기업이 돼라고 강요하는 게 무작정 싫은 건지 여전히 헷갈리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