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노조 불법 점거 103일째, 이번엔 게릴라 파업 예고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현대제철 노조원들(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민주노총지회 제공)(C) 뉴스1

주요 사업장 사장실 불법점거를 이어오고 있는 현대제철 노조가 이번엔 게릴라 파업을 예고했다. 회사가 교섭에 임하지 않는다는 게 파업의 이유다. 하지만 사측은 노조의 억지로 본다. 교섭 일정을 회사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이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을 하면서 협상을 하자고 한다는 설명이다 .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금속노조 산하 현대제철 5개 지회(당진·인천·포항·순천·당진하이스코)는 일시·대상을 공개하지 않는 기습적인 게릴라 파업을 준비 중이다. 앞서 이들 5개 지회는 선전문을 통해 "신중하고 기습적으로 파업을 진행할 것"이라며 "당장 제철소를 멈추게 하고 싶지만 타격을 줄 수 있는 투쟁을 위해 인내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사측이 교섭에 불성실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5개 지회는 지난달 28일과 이달 4·11일 진행됐어야 할 8~10차 교섭에 회사가 무단으로 불참해 대화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11일 10차 교섭은 노조가 게릴라 파업을 예고한 직후 교섭이어서 분수령으로 꼽혔던 게 사실이다. 현대제철은 이날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회사 입장은 정반대다. 만남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로 통보만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노조가 세고 있는 차수 역시 자의적인 기준일뿐이라고 선을 긋는다. 노조의 만남 요구를 외면한 게 아니라, 노조가 수용 불가능한 사안을 요구하고 있어 응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노조는 사측이 5개 지회 모두와 한 테이블에서 협상해주길 바라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임금체계가 다르다는 점이다. 인천·포항·순천사업장과 당진 냉연사업장(하이스코지회) 직원들의 임금체계는 같지만, 당진제철소 근무자 임금체계는 이와 별도로 구분된다. 당진제철소 외 사업장들이 사업개편 과정에서 흡수된 영향이 컸던 게 이유로 꼽힌다.


회사 관계자는 "당진제철소를 뺀 나머지 4개 지회와의 공동협상은 가능하지만, 임금체계 자체가 다른 5개 지회 모두와의 공동협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노조의 이 같은 행보가 응하기 힘든 조건을 내세우고 숫자만을 세며 파업의 명분을 쌓는 전형적인 노동운동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파업의 일시·대상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언제 어떤 사업장의 운영이 차질을 빚게 될지 회사가 모르게 해 피로감을 높여 추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업계는 원자재 가격 급락에 따른 제품가격 인하로 철강업계 전반의 수익성이 하락할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일방통행식 불통 행보를 보여 사측의 경영활동을 위축실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업장 불법점거를 이어오면서 게릴라 파업에 나서면서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라며 회사를 향한 압박의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노조는 현대자동차·기아·현대모비스 등이 직원들에 400만원을 지급하자 현대제철에도 동일한 규모의 특별격려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현대제철은 전년도 임금협상 당시 기본급 7만5000원 인상과 기본급 200%에 770만원을 더한 성과급을 약속한 상태서 별도의 특별격려금 지급에 난색을 표했다.

노조는 지난 5월 2일 당진제철소 사장실을 점거했다. 이튿날에는 인천·포항·순천사업장 조합원들이 각 사업장 사장실 점거에 동참했다. 당진제철소 103일째, 나머지 사업장 102일째 점거가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생산전문가 출신의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의 현장경영도 100일 넘게 중단된 상황이다. 현대제철은 노조를 특수주거침입과 업무방해, 특수손괴죄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경찰 역시 '수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한 채 별다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노조의 불법점거와 신고를 받은 경찰의 소극적 대응이 장시간 지속되며 노사 관계가 나빠진 상황에서 노조가 무리한 요구와 자의적으로 협상 불참 명분까지 만들면서 양측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된 셈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제철 올해 임단협이 예년에 비해 어렵게 전개될 요량이며, 심할 경우 해를 넘길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면서 "수익성 후퇴가 예견된 상황에서 노조의 게릴라 파업으로 회사가 추가 손실을 입게 되면, 실적방어가 어려워 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