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만여곳에 여의도 6배…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생존 건 변신

탄소중립 시대 주유소를 변신시키기 위한 정유사들의 행보가 빨라진다. 단순한 부지 활용을 넘어서 기업의 중장기전략을 보여줄 수 있는 '쇼룸'이자 친환경 신기술을 적용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전국 교통요지 1만여개소에 여의도 6배 면적. 주유소가 어떻게 변신하느냐가 탄소중립 기술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다.


총성울린 미래주유소 경쟁, 첨단기술 입힌다

17일 진행된 협약식에서 (왼쪽부터) 김무환 SK㈜ 그린투자센터장, 라이언 케네디 아톰파워 CEO, 강동수 SK에너지 S&P추진단장 기념촬영하고 있다./사진=SK

SK그룹은 SK(주)와 SK이노베이션 계열 SK에너지를 통해 미국 아톰파워 경영권을 2000억원에 인수했다고 18일 밝혔다. SK그룹의 M&A(인수합병) 역사를 생각하면 큰 규모는 아니지만 아톰파워의 면면을 보면 의미심장하다. 전기를 사용하는 빅데이터를 수집해 활용하는 에너지솔루션 기업이다. 전기차 충전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종합에너지기업이 된 SK지만 SK에너지(옛 유공)는 그룹의 모체 대접을 받는다. 정유업계 1위다. 주유소 변신작업에 가장 적극적인것도 SK다. 주유소에 태양광발전과 전기차 충전시스템을 결합시킨 '슈퍼에너지스테이션' 개념도 가장 먼저 내놨다. 시장은 물론 정부도 관심있게 지켜보는 부분이다. 아톰파워 인수는 SK식 에너지 전환의 한 단면이다. 단순히 형태만 바꾸는게 아니라 첨단기술을 입힌다.

GS그룹도 바쁘다. '주유소=모빌리티 산업 거점'으로 정의했다. 전기차와 수소차 충전, 카셰어링(차량공유) 등은 기본이다. 여기에 UAM(도심항공모빌리티)이나 편의점, 홈쇼핑까지 그룹 내 다른 사업과 칸막이 없는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수소충전기를 갖추고 2020년 문을 연 융복합에너지스테이션이 시작점이다. 카셰어링 업체 그린카 지분 10%를 확보하고, 카카오모빌리티에 300억원을 투자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주유소에서 아예 전기차를 판다. 초소형전기차 제조사 쎄보모빌리티와 제휴해 주유소에서 차를 타보고 살 수 있게 했다. 중고거래나 물품보관 서비스 등도 전폭적으로 시도한다. 영역의 한계를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에쓰오일의 미래형 복합에너지스테이션 구축이나 빵집주유소(김해 장유동) 등도 같은 맥락이다.


여의도 6배면적..아직 정답이 없는 미래활용법
기름만 넣던 주유소의 변신에 왜 사활을 걸까. 정부 집계에 따르면 4대 정유사가 운영하는 전국 주유소 수는 9992개(2020년 기준)다. 현 시점엔 더 적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름값이 요동치는 것과는 별개로 전기차와 수소전기차, 하이브리드차 숫자는 꾸준히 늘어난다. 경쟁이 심화되고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휴업하고 폐업하는 주유소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1만여개를 헤아린다. 가장 많은 2922개(6월 말 기준)를 운영 중인 SK에너지 사례를 보면 주유소 평균 면적은 1474㎡(약 450평)이다. 1500㎡를 넘으면 교통영향평가를 받아야 하니 대부분 이 면적기준을 맞출 것으로 추정된다. 전국 주유소 면적을 모두 합치면 여의도의 6배 수준인 500만평에 육박한다. 대부분 교통요지다. 정유사 입장에선 놔둘 수 없는 자산이다.

더 중요한건 주유소가 어떻게 운영되느냐가 해당 기업의 이미지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탄소중립으로 전환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기름을 넣는 기본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친환경적 이미지를 입혀야 한다. 게다가 주유소 대부분은 정유사 직영이 아닌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독립사업체다. '말이 되는' 주유소 활용방안을 제시하는 쪽으로 사업자들이 쏠릴 가능성도 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주유소가 대리점주의 의지에 따라 간판을 바꿔 다는 경우도 있다"며 "주유소의 진화는 정유사 입장에서 미래사업 비전을 보여준다는 명분과 현실적 고민이 결합된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