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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곰 철창'에 갇혀…10시간을 보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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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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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평짜리 비좁은 공간, 갑갑하고 지루하니 곰들처럼 빙빙 돌게 돼…강원도 화천 곰 13마리 구조해, 살찌우고 삶의 질 높여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x 카라', "사육곰 생추어리 만들 수 있게 도와주세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20년이란 세월을 3평 남짓한 좁다란 철창 안에서 살았을 사육곰 '유식이'. 그 이름도, 지난해 6월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이곳 강원도 화천 사육곰들을 구한 뒤 처음 생겼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쯤, 철창 안에 들어가 유식이와 인사하는 기자. '차마 말도 못하고 참았던 네 얘기를, 대신해서 잘 전하고 싶다', 오직 그 마음 뿐이었다./사진=최태규 수의사
20년이란 세월을 3평 남짓한 좁다란 철창 안에서 살았을 사육곰 '유식이'. 그 이름도, 지난해 6월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이곳 강원도 화천 사육곰들을 구한 뒤 처음 생겼다. 지난달 30일 오전 8시쯤, 철창 안에 들어가 유식이와 인사하는 기자. '차마 말도 못하고 참았던 네 얘기를, 대신해서 잘 전하고 싶다', 오직 그 마음 뿐이었다./사진=최태규 수의사
육중한 철창의 문이 내려와 닫혔다. 그와 함께 곰 사육장 안에 갇혔다. 최태규 수의사의 목소리가 철창 너머에서 들렸다. "안에선 못 여는 문이에요." 아무렴,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육곰'들도 도저히 열 수 없고, 대부분 죽어야만 나갈 수 있었던 그 문의 무게를.

'가로 2m X 세로 3.5m', 2평 남짓한 좁다란 공간. 그리고 안쪽엔 1평도 안 되는 어두컴컴한 내실. 다 더해도 3평 정도인 사육장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단조로웠다. 오래돼 거뭇거뭇한 콘크리트 벽과 푸르죽죽한 바닥은 후두둑 떨어지던 빗방울에 온통 축축했다. 곳곳에 떨궈진 마른 나뭇잎이 여기가 그간 꽤 비어 있었음을 알려주었다. 듬성듬성 얹어진 슬레이트 아래로 빗줄기를 피해 보았다.

그리고 양옆의 들과 첫인사를 나눴다. 왼쪽 사육장에 있던 '유식이(암컷)'가 먼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철창 사이에 입을 쑥 끼더니 낯선 이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동그랗고 까만 눈으론 날 가만히 바라보았고, 나도 눈에 유식이를 온전히 담으며 인사했다. 오른편 사육장에 있던 '알코(수컷)'도 철창 앞을 기웃거렸다. "알코, 안녕"하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서 구조된 '유식이'와 처음 인사를 나누는 기자. 철창 하나를 두고, 사육장과 사육장이 맞닿아 있는 구조다./사진=김태규 수의사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서 구조된 '유식이'와 처음 인사를 나누는 기자. 철창 하나를 두고, 사육장과 사육장이 맞닿아 있는 구조다./사진=김태규 수의사
긴 하루를 어찌 보내나 막막할 찰나, 떠나며 최 수의사가 남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기자님. 혹시 알코가 철창을 들려고 하면 쇠창살을 발로 살짝 차주세요."(최태규 수의사)

"네! 네? 알코가 철창을 들어요?(그럼 곰과 제가 만나는 건데요?)"(기자)

"네, 근데 어차피 철창을 든 채로 들어오진 못하니, 걱정 안 하셔도 괜찮아요."(최태규 수의사)



40년 넘은 사육곰 농장서…죽을뻔한 15마리를 구조하다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웅담이 될뻔한 강원도 화천 사육곰들을 구조한 뒤, 녀석들은 '돌봄'이란 걸 처음으로 제대로 받기 시작했다. 맛난 토마토도 먹고, 좋아하는 사과도 먹고, 땅콩도 먹고. 야위었던 곰들은 비로소 살이 찌기 시작했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웅담이 될뻔한 강원도 화천 사육곰들을 구조한 뒤, 녀석들은 '돌봄'이란 걸 처음으로 제대로 받기 시작했다. 맛난 토마토도 먹고, 좋아하는 사과도 먹고, 땅콩도 먹고. 야위었던 곰들은 비로소 살이 찌기 시작했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여긴 강원도 화천에 있는 '사육곰 농장'. 40년 넘게 곰을 기르고 팔아왔다. 그러다 지난해 5월, 최태규 수의사(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국내 유일 사육곰 보호단체) 에게, 농장주 아내의 연락이 왔다. 농장주가 아파서 더는 곰을 기를 수 없다고. 그러나 죽이긴 싫으니 잘 돌봐줄 곳을 찾아달란 거였다.

당시엔 15마리(현재는 13마리), 최소 10년 이상 많게는 20년 넘게 나이든 곰들이었다.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동물권행동 카라'가 힘을 합쳐 이들을 구하기로 했다. 1년 뒤엔 '사육곰 생추어리(야생동물 보호소)'를 만들어 곰들을 모두 옮기겠단 목표도 세웠다.
노령이 된 사육곰들이 많아, 약을 먹는 아이들이 많단다. 열심히 먹고, 건강해야지./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노령이 된 사육곰들이 많아, 약을 먹는 아이들이 많단다. 열심히 먹고, 건강해야지./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열다섯 개의 '웅담'이 될뻔한 곰들은 비로소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 시작했다. 최 수의사와 활동가들은, 매주 일요일마다 160km 넘게 떨어진 철창서 기다리는 곰들에게 달려갔다. 곰들은 처음엔 많이 야위어있었다. 농장주가 아픈 뒤론 2~3일에 한 번 정도 값싼 개 사료를 겨우 먹어서였다. 활동가들은 이들에게 과일과 채소와 땅콩을 듬뿍 주었다. 그러면서 열악한 농장도 손수 하나씩 고쳐나갔다.

곰들은 차츰 털도 좋아지고 살도 쪘다. 돈 한 푼 못 받아도, 오롯이 사육곰의 안녕을 위해 부단히 애쓴 이들 덕분이었다.



'U4', 네 번째 사육장에 들어갔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바깥에서 들어오는 모든 자극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정지된듯 지루했고, 이 안에선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사진=최태규 수의사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바깥에서 들어오는 모든 자극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정지된듯 지루했고, 이 안에선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사진=최태규 수의사
지난달 30일 오전 8시 30분. 'U4'라고 부르는, 위쪽의 네 번째 사육장에 들어갔다. 세상의 크기가 순식간에 3평으로 줄어들었다. 좌우는 콘크리트 벽으로, 앞과 위는 촘촘하고 까만 쇠창살로 둘러싸였다. 철창 사이론 끝 모를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공간이 온통 축축해지니, 오래 묵은 사육장 내음이 진하게 배어 나왔다.

최 수의사가 "비를 피하려면 내실(가장 안쪽의 공간)에 들어가 있으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잠깐 들어갔다 바로 바깥에 나왔다. 빛이 없는 공간이었다. 잠깐인데도 갑갑함이 사방에서 짓눌렀다. 비를 맞아도 내실 바깥이 낫단 걸 금세 알았다. 다시 나와 비가 안 닿는 구석에 앉아 벽에 몸을 기댔다.

그래도 바깥을 바라봐야만 그나마 견딜만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래도 바깥을 바라봐야만 그나마 견딜만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는 할 게 없었다. 무언가 기록하려고 수첩을 폈으나 쓸 게 없었다.

정지된 시간이었다. 보이는 건 '사육장 테두리'만큼 잘린 산과 흐릿한 하늘. 그마저도 쇠창살로 답답하게 가려진 광경. 들리는 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일정한 빗소리. 그러니 선선한 빗방울조차 시원스럽지 않았다. 이 꽉 막힌 공간 안에서는.

한동안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일어났다가 또 앉았다. 앉았다가 다시 일어났다. 일어나서 하릴없이 다시 앉았다. 이번엔 누워보았으나 등이 차가웠다. 다시 일어나 앉았다. 반복하다 시계를 보니, 고작 20분이 흘러 있었다.



고갤 좌우로 돌리던 '유식이'와, 방을 빙빙 돌던 '알코'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정형행동을 하는 유식이./사진=남형도 기자
좌우로 고개를 흔들며, 정형행동을 하는 유식이./사진=남형도 기자
대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건가.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된 주제에 벌써 괴로워서, 철창 사이로 양쪽에 있는 사육곰들을 보았다. 길게는 20년 이상 철창 안에서 살았을텐데, 그 긴 시간을 어찌 보냈을까 싶어서.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저 '반복'이었다. 왼쪽 사육장에 있던 '유식이'는, 철창 앞에서 좌우로 고개를 흔들고 있었다. 왼쪽, 오른쪽, 다시 왼쪽, 다시 오른쪽. 마치 괘종시계 추처럼 왔다 갔다 반복하다가, 고개를 한 번씩 위로 들었다. 그리고 다시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다 철창에 머리가 닿을 정도로 붙여서 흔들기도 했다. "유식아, 괜찮아? 유식아." 이름을 불러도 그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사육장 안을 빙빙 돌다가, 구석에서 한 번씩 고개를 돌리는 알코. 이것도 정형행동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사육장 안을 빙빙 돌다가, 구석에서 한 번씩 고개를 돌리는 알코. 이것도 정형행동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오른쪽 우리에 있던 '알코'도 다를 바 없었다. '유식이'가 고개만 흔들었다면, '알코'는 3평 공간의 가장자리를 한없이 돌았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네 바퀴, 다섯 바퀴, 여섯 바퀴, 일곱 바퀴….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오른쪽 구석에 다다르면 한 번씩 고개를 들어 포효하듯이 돌렸다. 녹화된 영상을 반복해 재생하듯, 같은 장면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정형행동'이라 부른단 걸. 스트레스로 인해 무의미한 행동 반복한단 걸. '유식이'와 '알코'의 행동을 수첩에 기록했다. 잠시나마 할 일이 생겨 기뻤다. 그러나 그러고 나니, 할 일이 금세 또 없어졌다.



유식이와 나, 알코가 각자 시간을 보내는 방법


턱걸이를 하는 기자. 할 게 없어 갑갑하고 미치겠다는 의미다./사진=탈출하고 싶은 남형도 기자
턱걸이를 하는 기자. 할 게 없어 갑갑하고 미치겠다는 의미다./사진=탈출하고 싶은 남형도 기자
'유식이'나, 그리고 '알코'는 나란히 붙은 각각의 공간에서 무의미하고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각자 행동은 달랐으나 공통점이 있었다. 주로 반복하고, 중간중간 작게나마 변화를 주는 거였다.

'유식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다, 한 번씩 옆쪽 사육장(유식이는 두 칸을 쓴다)에 넘어갔다가 돌아왔다. 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쇠창살에 매달려 턱걸이를 한두 개씩 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했다. '알코'는 빙빙 돌다가, 콘크리트 욕조에 한 번씩 올라가 걸터앉았다가 내려왔다.
알코, 너도 많이 심심하지? /사진=남형도 기자
알코, 너도 많이 심심하지? /사진=남형도 기자
무기력했다. 하품하니 오래 굳어 있던 안면 근육이 쪼개지는 듯했다. 그나마 '유식이'나 '알코'쪽 철창에 붙어 앉아 있는 게 좋았다. 우두커니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면 알코도 한 번씩 내 쪽 철창 사이에 코를 밀어 끼어놓고, 가만히 날 바라봤다. 조심스레 그게 어떤 맘일지 짐작해보았다. 우린 오늘 첨 봤고, 서로 다른 동물이고, 언어도 다르며,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지만.

인기척이 났다. 우리 셋 모두가 철창 쪽을 바라봤다. 최태규 수의사와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가 왔다. 훈련 시간이라고 했다.

그게 무슨 훈련이든 간에, 아주 의미가 깊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의 무의미한 '반복'을 잠시 멈춰줬다는 점에서.



아침에 스쳐 지나갔던, 그 '방사장'의 가치


홀로 살던 곰들끼리 합사 훈련을 하는 건, 좁다란 철창 안에서 견디고 있는 사육곰들을 조만간 '미니 방사장'에 내보내기 위한 것. 그러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사이 좋게 잘 지내달라고,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 마음이 다 그럴 게다./사진=최태규 수의사
홀로 살던 곰들끼리 합사 훈련을 하는 건, 좁다란 철창 안에서 견디고 있는 사육곰들을 조만간 '미니 방사장'에 내보내기 위한 것. 그러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사이 좋게 잘 지내달라고,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 마음이 다 그럴 게다./사진=최태규 수의사
나도 나지만, 곰들이 바깥의 무언가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괜히 좋았다. 살아 있는 존재의 다른 모습을 보는 건, 그리 좋은 거였다. 돌거나 흔드는 게 아닌, 그 무엇이라도.

아무튼, 사육곰들 훈련 시간이었다.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육장에 각자 살던 곰들이 함께 사는 법을 배우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곰들이 사육장 바깥에 나가도 호루라기 소리 등 신호를 주면, 다시 들어오게 하는 거였다.

'유식이'의 사육장 문이 위로 올라갔다. '유식이'는 바로 나가지 않고 서성이다 잠시 뒤에야 나갔다. '알코'는 사육장 문이 열리자마자 부리나케 나갔다. 둘은 냄새를 맡으며 몇 발자국씩 걸었다. 난 철창에 달라붙어 별것도 아닌 그 광경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사육곰들이 보드라운 흙을 처음 밟게 될 '미니 방사장', 정식 이름은 '곰 숲'. 여기엔 나무도 있고, 수영장도 있으며, 아주 넓진 않아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전기가 통하는 펜스를 둘러 바깥에 나가지 못하도록 안전도 신경썼다. 나무를 타고 넘어가지 못하게 울타리쪽 가지도 다 잘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사육곰들이 보드라운 흙을 처음 밟게 될 '미니 방사장', 정식 이름은 '곰 숲'. 여기엔 나무도 있고, 수영장도 있으며, 아주 넓진 않아도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다. 전기가 통하는 펜스를 둘러 바깥에 나가지 못하도록 안전도 신경썼다. 나무를 타고 넘어가지 못하게 울타리쪽 가지도 다 잘랐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훈련이 뭘 위한 건지 알기에 맘이 더 저릿했다. 하루빨리 '생추어리'를 만들어 사육곰들을 자유로이 해주고 싶었던 활동가들은, 장소나 자금 문제 등으로 시간이 지연되자 '미니 방사장'부터 만들어주었다. 작게나마 보드라운 을 밟을 수 있고, 울창한 나무를 오를 수 있으며, 널따란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는. 이달 말부터 나가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두 가지 훈련을 잘 마쳐야 하는 거였다.

새삼 떠올렸다. 아침엔 그저 스쳐 지나쳤었던 그 작은 방사장을. 3평짜리 공간에 갇혀보니 똑바로 알게 됐다. 거기 나가 자유로이 다니는 게, 곰들에게 얼마나 큰 가치일지. 다시 사육장에 돌아오는 곰들을 향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곳에선 같은 빗소리도 더 세차게 울릴 거라고, 콘크리트가 아니니 몽글몽글한 발바닥이 다치지 않을 거라고, 동그랗게 반복해서 돌지 않고 앞으로 좀 더 나아갈 수 있을 거라고.



1바퀴에 14초…곰들처럼 나도 돌고 있었다


철창을 들어 나와 만나고 싶은 '알코'.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다./사진=철창을 틈틈이 위에서 누르는, 쫄아버린 남형도 기자
철창을 들어 나와 만나고 싶은 '알코'.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다./사진=철창을 틈틈이 위에서 누르는, 쫄아버린 남형도 기자
점심엔 최 수의사가 김밥과 샌드위치를 내 사육장 안에 넣어주었다. 뜯어서 먹고 있으니, '알코'가 음식 냄새에 내 쪽으로 다가와 코를 킁킁거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오른발과 왼발을 철창 사이에 하나씩 '쑤욱' 넣고, 양발과 코로 들어 올리는 게 아닌가. 힘이 어찌나 좋은지, 덜컹거리며 철창이 들어 올려졌다. 화들짝 놀라 달려가 철창을 아래로(힘으로) 눌렀다. 알코는 고개를 들어 의아한 듯 날 보더니, 다시 그 행동을 반복했다. 단언컨대, 그날 하루 중 가장 지루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허겁지겁 먹고 치워버리니, '알코'는 흥미가 사라졌는지 다시 사육장 안을 빙빙 돌기 시작했다. 왼편을 보니 '유식이'는 어느새 또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나도 '알코'처럼 사육장 안을 빙빙 돌게 됐다. 저절로 그리되었다. 세어보니 한 바퀴에 열세 걸음, 14초 정도 걸렸다. 1분에 4바퀴, 그러니 240바퀴를 돌면 1시간을 보내는 거였다. 돌면 다시 제자리로 올 걸 알면서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돌아와선 앞쪽 쇠창살이 몇 개인지 하나씩 세었다. 모두 36개였다. 그러면서 시간을 또 보냈다.

그제야 알았다. 그걸 '정형행동'이라 부르면 안 된단 걸. 그 안에 있으면, 그럴 수밖에 없는 '정상행동'이란 걸.



오후 해도 짙어지고…고요히 견딜 시간만 남아


아삭아삭,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알코'. 껍질은 아주 정확하게 빼고 먹는다. 그래, 그건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란다./사진=남형도 기자
아삭아삭, 옥수수를 맛있게 먹는 '알코'. 껍질은 아주 정확하게 빼고 먹는다. 그래, 그건 음식물 쓰레기도 아니란다./사진=남형도 기자
다만 최 수의사와 활동가가 오갈 땐 곰들의 눈도 반짝이고, 귀도 동그랗게 서고, 움직임도 활발했다. 개 사료도 제대로 못 먹다가, 지난해 구조 이후엔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맛있는 밥을 먹고 있다. 곰들에게 익숙한 개 사료에, 당근 토마토, 고구마, 땅콩에, 양배추까지 앞발로 꽉 잡고 아삭아삭 야무지게 먹는 걸 보고 있으니 행복했다.

오후 4시, 활동가가 일하는 시간이 끝난 뒤엔 곰들도 다시 잠잠해졌다. 무기력한 모습이 속상해서, 내 사육장에 떨어져 있던 사료와 땅콩을 '유식이'와 '알코' 쪽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가까울 땐 혀를 쭉 뻗어 먹기에, 조금 어렵게 먹이를 획득할 수 있게 해봤다. 조금 더 떨어트려 놓았더니, 혓바닥을 뻗다가 이내 안 된단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유식이'도, '알코'도 포기하지 않고 앞발을 뻗어 자기 쪽으로 당겨서 먹었다(똑똑해!). 먹을 땐 "와, 잘했어!" 하며 칭찬해주었다. 그걸로 30~40분쯤 함께 놀아주었다.
먹는 시간, 훈련 시간, 활동가들이 왔다갔다 하는 시간 외엔, 대부분 무척 지루해했다. 그나마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 내쪽을 바라보며 엎드린 '알코'./사진=남형도 기자
먹는 시간, 훈련 시간, 활동가들이 왔다갔다 하는 시간 외엔, 대부분 무척 지루해했다. 그나마 새로운 사람이 왔다고 내쪽을 바라보며 엎드린 '알코'./사진=남형도 기자
그마저 다 사라진 뒤엔, 순식간에 다시 지루해졌다.

점심에 커피를 마신 탓인지, 중간엔 소변이 마려웠다. 철창을 나갈 수 없는 터라 고민이 됐다. 왼편을 보니, '유식이'가 사육장 안에 배변한 게 보였다(하루에 한 번 물로 씻고 치워준다). 별수 없이 나도 철창 사이로 배수관에 조준해, 내 소변을 흘려보냈다. 그걸 반복하자니 자존감이 38% 정도 낮아지는 듯했다. 최 수의사는 "동물도 자기 있는 자리엔 배변을 안 보려고 한다"고 했다. 인간 동물이나 비인간 동물이나 마찬가지로 싫은 거였다.

비는 여전히 줄기차게 내렸고, 느지막한 오후 해는 그마저도 점점 희미해졌다. 이젠 정말 고요히 홀로 견딜 시간만 남은듯했다. '유식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도 지쳤는지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한참이나 보이질 않았다.



'홀로 자유로워져 미안해'…곰들과의 마지막 인사


10시간을 옆에서 함께 보낸 알코와의 마지막 인사. 어떻게든 여기서 빨리 나가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돕겠다고, 속으로 홀로 다짐했다./사진=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남형도 기자
10시간을 옆에서 함께 보낸 알코와의 마지막 인사. 어떻게든 여기서 빨리 나가서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돕겠다고, 속으로 홀로 다짐했다./사진=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남형도 기자
그러는 새 저녁 6시가 되었다. 곰 사육장서 장장 10시간을 보냈다. 얼마 남지 않은 무렵부터는 난 움직이지 않았다. 곰들은 여전히 빙빙 돌며 움직였다. 그제야 알았다. 나갈 시간을 아는 난 움직임을 멈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곰들은 계속 움직여 버틸 수밖에 없단 걸.

자그마치 10년, 20년을 기약 없이 견딘 곰들 앞에서, '조금만 더 참으면 나간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했을 때, 그 속마음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아도 미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체험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한두 걸음을 움직여 하루를 함께한 오른쪽 칸 사육곰, '알코' 앞으로 갔다. 품은 말을 꺼내 마지막 인사를 했다.

'홀로 자유로워져 미안해. 그렇게 오래 안에 있었는데, 쉽게 밖으로 나갈 수 있단 걸 보게 해서 미안해. 네겐 그게 아직 아니어서 또 미안해. 매일 같은 일상이었는데, 괜히 불쑥 찾아와 낯선 하루를 만든 것도 미안해.'

비로소 원하는 방향으로 걸으며 다짐했다. 그 미안함을 원료 삼아 반드시 잘 알리겠다고. 사육곰 '유식이'와 '알코'와 이곳에 사는 13마리의 이야기를. 국내서 구조를 기다리는 340여 마리가 매일 겪는 긴 하루를. 그래서 철창 안이 아닌 드넓은 '생추어리'서 살 수 있게 힘을 더하겠다고 약속했다. 헤어지는 인사가 길어지는데, '알코'는 검고 동그란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디 '생추어리'로…곰들의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은,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의 곰들을 살리고 돌보고 있다. 곰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보호라는 걸, 돌봄이라는 걸 받고 있다. 모두 이들 덕분이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 활동가들은, 강원도 화천 사육곰 농장의 곰들을 살리고 돌보고 있다. 곰들은 이제야 제대로 된 보호라는 걸, 돌봄이라는 걸 받고 있다. 모두 이들 덕분이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강원도 화천에서 사육곰 13마리를 구조한 지 1년 3개월. 머나먼 거리를 집 앞처럼 오가며 애쓴 '곰보금자리 프로젝트''동물권행동 카라'의 노력이 뜻깊다. 최 수의사는 매주 일요일에만 무려 60여 번을 서울과 화천을 오가며 곰들을 돌봤다. 임금도 없이 자원봉사를 하며 애쓴 활동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면서 환경을 좋게 해주고, 풍부한 먹거리를 주고, 해먹도 만들어주고, 아픈 곰들은 치료해주고 약을 먹였다. 덕분에 사육곰들은 많이 건강해지고, 삶의 질이 나아졌다. 이달 말부터 '미니 방사장'에 나가게 되면 처음으로 흙을 밟을 수 있게 된다. 활동가들은 없는 비용을 아끼겠다며, 철창을 직접 용접하고 시멘트를 바르고 톱질까지 했다. 최 수의사는 "그저 재밌어서 한 일"이라며 겸손히 말했으나, 그와 함께 서울-화천을 오간 이동 시간만 그날 왕복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보통 힘든 게 아녔다.

두 단체는 궁극적으론 100마리 규모로 '민간 사육곰 생추어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최 수의사는 "생추어리를 짓고 운영하려 하지만, 땅을 살 돈도 턱없이 부족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땅 사는 데에만 최소 20억 원, 짓는 데에만 15억 원 이상 필요하단다. 그러나 현 상황으론, 곰보금자리 프로젝트와 카라가 절반씩 부담한다 해도, 모금액이 턱없이 부족하다.
편안이는 흙바닥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곰의 평균 수명이 25년. 철창 안에서 오래 견딘 곰들에겐 이미 시간이 많지 않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편안이는 흙바닥을 밟아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곰의 평균 수명이 25년. 철창 안에서 오래 견딘 곰들에겐 이미 시간이 많지 않다./사진=곰보금자리 프로젝트
안타까운 건 곰들에게 시간이 많지 않단 거다. 평균 수명이 25년, 대부분은 이미 나이가 꽤 있다. 그러니 활동가들의 진심으로도 차마 막을 수 없는, 맘 아픈 일들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7월엔 아랫줄 두 번째에 살아 'L2'로 불렸던, 크고 아름다운 반달곰이 영원히 잠들었다. 우리 안에 놓인 과일을 소중히 끌어안고 맛나게 먹던 곰은, 드넓은 생추어리를 밟을 날을 기다리기엔 이미 많이 지쳐있었다. 빈 땅에 묻어준 뒤 '편안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얼마 뒤 위 사육장 다섯 번째 칸에 있던, 나이든 사육곰 '보금이'도 곰들이 사는 별로 떠났다. 활동가들이 구조했을 때부터 이미 뒷다리를 못 쓰고 힘들어했다. 엉덩이를 끌고 다녀 털이 다 빠져 있었다. 약을 먹이며 정성으로 돌봤고, 잠시 기적처럼 뒷다릴 세워 걸었으나, 보금이의 엉덩이 상처는 점점 심해졌다. 이대론 고통의 시간을 연장할 뿐이었기에 안락사를 했다.

"곰들에게 남은 날은 점점 짧아지는 중입니다. 이들이 생을 다하기 전에 흙을 밟아주게 하고 싶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사육곰 해방'이란 이정표 하나에만 의지해서요. 부디 저희를 응원해주세요." (곰보금자리 프로젝트, 사육곰 해방 프로젝트 1주년 보고 中)
활동가들이 다 사라지자, 바깥을 향해 구슬프게 울음 소릴 내는 '알코'. 이는 최태규 수의사도 "처음 들어본 소리"라고 했다. 가까이서 오래 지켜보니 알게된 장면들. 이 역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울음을 기억해달라고. 이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사진=남형도 기자
활동가들이 다 사라지자, 바깥을 향해 구슬프게 울음 소릴 내는 '알코'. 이는 최태규 수의사도 "처음 들어본 소리"라고 했다. 가까이서 오래 지켜보니 알게된 장면들. 이 역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이 울음을 기억해달라고. 이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늦은 오후, '알코'가 길고 구슬픈 울음 소릴 내었다. 그날 처음 들어보는 울음이었다.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은 뒤, 최태규 수의사에게 나중에 물어보았다. '알코'가 내었던 울음소리의 의미를.

"이렇게 우는 장면은 처음 보았네요.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이러는 것 같아요."(최태규 수의사)
"알코가 왜 이리 우는 걸까요?"(기자)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추측하기로는, 지루하고 외로워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고 보니 '알코'는 빗방울에 온몸이 젖으면서도 철창 가까운 곳에 앉아 바깥을 바라봤다. 태어나니 철창 안이었고, 그게 겪어본 세상 전부였으면서. 바깥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짐작이 갔다. 별수 없이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날마다 보는 게 같은 하늘, 같은 나무, 같은 쇠창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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