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침해" vs" 분단국가 불가피"... 헌재 심판대 오른 국보법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제2조 1항과 제7조 1·3·5항의 위헌 여부 심리 공개변론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이미 일곱차례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는 헌재가 공개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동취재) 2022.9.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는 북한을 생각하지도 않고 통일은 참 좋은 것이라 생각해서 이상향으로 그렸을 뿐인데, 검찰은 북한을 찬양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신학철 화백)

신학철 화백은 1987년 민족미술협의회 통일전에 작품 '모내기' 선보이고 2년 뒤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됐다. 모내기는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상단에 농민들이 잔치를 벌이는 모습이, 하단에는 한 농부가 탱크와 코카콜라 등 쓰레기를 쟁기로 밀어내는 장면이 그려진 유화다.


신 화백은 1·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대법원이 파기환송하며 1999년 징역 10개월의 선고유예와 그림 몰수로 유죄가 확정됐다.

국가보안법이 8번째 헌법재판소 위헌 심판대에 올랐다. 헌재는 15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국가보안법 위헌소송의 공개 변론을 열었다. 신 화백은 이날 공개 변론 전 기자회견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밝혔다. 헌재 앞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존치를 주장하는 단체가 양측으로 나뉘어 맞불 시위를 벌였다.

심판 조항은 국가보안법 제7조 1·3·5항 등이다. 해당 조항은 반국가단체나 구성원의 지시를 받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할 경우, 이를 위한 목적의 단체에 가입한 경우, 이적행위를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하거나 취득할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 측은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이적행위의 개념이 막연해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국가보안법이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권, 일반적 행동자 유권 등을 침해한다"고 했다.

또 이적 행위나 표현물에 대한 기준이 포괄적이고 불명확하다고 지적했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추상적이고 불명확한 용어를 사용해 적용 범위가 넓고 자의적이다"라며 "어떤 표현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예측하기 어렵게 해 자기검열에 의한 위축 효과가 생기고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시킨다"고 했다.

법무부 "마약류, 음란물 소지의 위험성과 다르지 않다"반면 이해관계인인 법무부는 남북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법이라는 입장이다. 법무부 측 대리인은 "헌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 헌법과 합치되기 어려운 반국가단체"라며 "남북 간 긴장이 때로 완화되기도 하지만 북한은 올해 초에도 미사일을 발사하며 도발하는 등 현시점에서 국가보안법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법무부는 미디어 환경과 이적 표현으로 인한 피해를 국가보안법 존립 근거로 든다. 법무부는 "사상을 자유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은 정보 확증편향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 변화를 간과한 주장"이라며 "특히 이적 표현의 확산으로 인한 해악은 엄청난 국가적 손실과 분열을 겪어야 치유될 수 있으므로 사상의 자유시장에 맡길 수 없다"고 했다.

법무부 측은 이적표현물을 소지하는 것이 마약이나 음란물을 소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법무부 측 대리인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이적표현물을 소지하는 것은 사회적 해악이 마약류·음란물 소지보다 낫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을 일탈하는 확대해석이나 법 적용에 자의적인 판단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양측 참고인의 주장도 들었다. 청구인 측에서는 김종철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으로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했다.

헌재가 국가보안법에 대해 공개 변론을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가보안법은 이제껏 7번 헌재의 심판대에 올랐는데, 헌재는 줄곧 합헌을 선고했다. 위헌 결정이 나려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위헌으로 판단해야 한다.

최근 결정은 2015년에 있었다. 당시 헌재는 국가보안법이 "반국가단체나 그 동조 세력에 의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국가전복 시도 등을 사전에 차단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합헌 결정했다. 또 "안보 현실에 비춰 구체적 위험이 현존하지는 않더라도 이적행위를 규제하는 것을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헌재는 이날 들은 양측의 변론과 참고인의 의견을 바탕으로 위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선고기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신학철, 모내기,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