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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고춧값, 농민은 "우린 비싸게 안 팔았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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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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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서 '유기농 풋고추' 따며 들은 이야기, 농가서 판 가격은 1봉지(150g) 기준 1000원…농민들 "우린 비싸게 안 팔았어요,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 등 다 올랐는데 농산물 출하 가격만 20년째 그대로, 기후 변화까지 큰 고통"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강원도 홍천 내면의 유왕선씨(63) 농가서 유기농 풋고추를 따는 기자. 병충해에 온통 걸린 탓에, 딸 수 있는 고추가 많지 않아 들여다 볼 때마다 속상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강원도 홍천 내면의 유왕선씨(63) 농가서 유기농 풋고추를 따는 기자. 병충해에 온통 걸린 탓에, 딸 수 있는 고추가 많지 않아 들여다 볼 때마다 속상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비싼 고춧값, 농민은 "우린 비싸게 안 팔았어요"[남기자의 체헐리즘]
"이런 것도 따면 안 돼요?"

방금 직접 딴 푸릇푸릇한 풋고추 하나를 들고 63세 농부에게 물었다. 맵지 않고 아삭아삭 식감이 좋은 오이맛고추, 농부가 2월에 심어 떡잎도 틔우고 땡볕과 장마에 거름도 주고, 고생고생하며 7개월 만에 바야흐로 수확하는 유기농 고추. 그러니 웬만하면 비닐에 쑥 넣었으면 싶었다. 그래야만 농부의 호주머니도 채워지고, 어느 가족의 밥상에서 빛을 발할 테니까.

그러나 농부는 내가 딴 고추를 쓱 보더니, 단호하게 답했다.

"안 돼요. 자국이 요만큼이라도 있으면 버려야 해요. 이건 병든 거예요."
치명적인 탄저병에 걸린 풋고추. 비가 많이 내린 탓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치명적인 탄저병에 걸린 풋고추. 비가 많이 내린 탓이라 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 말에, 오른손에 잠시 쥐었었던 풋고추를 땅에 떨구었다. 고작 작은 점 크기의 움푹 들어간 동그란 자국인데, 그래도 못 판단다. 고추가 '탄저병'에 걸려서였다. 여기에 '칼라병(해충 때문에 걸리는 병)'까지 덮쳐 고추밭이 쑥대밭이 됐다. 고추가 걸리는 3대 질병 중 2개가 휩쓸고 간 거란다.

8월에 거의 매일 내렸다는 '폭우' 때문이었다. 여기, 강원도 홍천도 예외가 아녔다. 전염성이 강한 탄저병이, 빗물을 타고 고추나무를 쓸어버렸다. 햇빛에 약한 병인데, 야속하게 오래도록 비추지 않았다. 농부 마음도 그의 피부만큼이나 짙게 탔다.

"보통 농사꾼들은 하늘을 원망하지 않거든. 우박 떨어질 때도, '하늘이 필요한 게 많은가 보네' 그랬어요. 그런데 올해는 어떤 이웃 농민이 많이 지쳐서 그러더라고요. '저놈의 하늘이 농사를 안 지어봐서 그래' 라고요(웃음)."



160km 달려, 강원도 홍천 유기농 농가에 간 이유


13일 새벽 5시에 강원도 홍천군으로 출발했다. 이 시간에 일하고 있는 걸 생색내기 위해, 빨간불에서 블랙박스를 찍은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13일 새벽 5시에 강원도 홍천군으로 출발했다. 이 시간에 일하고 있는 걸 생색내기 위해, 빨간불에서 블랙박스를 찍은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13일 새벽 5시에 서울서 출발해 160km 거리를 달려 강원도 홍천군에 갔다. 해발 고도 600m가 넘는 고지대, 그래서 배추나 무, 고추, 당근, 주키니 호박 등 고랭지 작물 농사를 주로 짓는 곳.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부지런히 갔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7시 반쯤이었다.

농촌은 지금 어떤 상황인 걸까. 실은 그게 궁금했다. 배추·상추·고추·무 등 채소는 가격이 이렇게 비싼데, 농민들은 외려 한숨을 쉰다고 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기후는 인간의 탓으로 갈수록 들쭉날쭉해져 농사가 버겁고, 일할 사람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쓰는데, 수익 대비 높은 인건비에 시름이 깊다고 했다. 그래서 '1차 생산자'인 농민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거기서 해질 때까지 일을 돕고 싶었다. 문녹주 SF 작가님 소개로(고맙습니다), 홍천군 내면에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유왕선씨(63)와 인연이 닿았다. 그에게 연락해 물었다. 언제 가장 바쁘시냐고, 기왕이면 도움이 되고 싶다고. 그랬더니 유씨가 이리 답했다.

"항상 가장 바쁩니다. ㅎ 편하실 때 오세요."



새벽부터 새벽까지 일일일, "풀은 못 당해요"



비닐하우스에서 피망을 따고 있는 유왕선씨 아내./사진=남형도 기자
비닐하우스에서 피망을 따고 있는 유왕선씨 아내./사진=남형도 기자
비닐하우스 앞에 도착했을 때 유씨와 그의 아내는 '피망'을 따서 담고 있었다. 유통회사에서 네 상자만 급히 해달라고 했단다. 부부는 새벽 6시부터 피망을 따서 담았다고 했다. 유씨의 핸드폰에선 세월이 좀 지난 발라드 노래들이, 노동요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들린 건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이었다.

그 리듬이 훨씬 빨라야 어울릴 만큼 현장은 분주했다. '할 일이 없으면 어쩌지'란 생각이 1분 만에 사라졌다. 피망이 가득 담긴 비닐을 옮기고, 묵직한 걸 종이 상자에 담고, 무게를 달고, 다시 차에 실었다. 그 무렵 취재하느라 녹음된 내 숨소리가 꽤 거칠었다. 취업 준비를 하며, 부모님에게 농사를 6개월째 배우고 있는 아들 유정찬씨(가명, 30)"아버지, 어머니가 바쁜 7~8월엔 새벽에 일어나 다음날 새벽까지 일했다"고 했다.
풋고추를 수확하고 있는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풋고추를 수확하고 있는 기자./사진=남형도 기자 셀카
그럴만했다. 유씨와 아내가 농사짓는 땅이 2200평. 거기에 고추, 양상추·로메인 등 쌈 채소, 브로콜리, 양파 등 10가지를 심고 수확한다. 특히 유기농 농사라 더 힘겹다. 유씨는 "풀이 가장 힘든데, 일반 농사는 제초제를 쳐버리면 되는데 유기농이라 일일이 다 뽑아야 한다"고 했다. 장마 땐 사람 키만큼 크고, 잘라내도 돌아서면 이만큼 자라 있다고. 그러니 "풀은 못 당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면 농작물 영양분을 다 뺏어간단다.

6월 수확 시기부터는 특히 전투적으로 일한다. 유씨 아내는 "눈 뜨자마자 시작해 자기 직전까지, 일하고 밥 먹고 그냥 쓰러져서 자고 잠깐 새도 없이 일이 돌아간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부부는 아침을 원래 안 먹는단 내게 "일하려면 꼭 먹어야 한다"며 백반을 사주었다.



'기후 변화'에 초토화…수확 못 한 적상추에 꽃이 폈다


&#039;기후 변화&#039; 피해는 이미, 농가에선 현실이 된지 오래. 탄저병에 걸린 풋고추 나무./사진=남형도 기자
'기후 변화' 피해는 이미, 농가에선 현실이 된지 오래. 탄저병에 걸린 풋고추 나무./사진=남형도 기자
밥을 먹고 고추밭에 돌아와 일을 시작했다. 잔뜩 흐린 하늘이, 금방이라도 뭔가 쏟아낼 것처럼 꾸물꾸물했다.

유씨와 나란히 앉아 내가 알지 못했던, 그가 오랜 시간 땀 흘린 이 고추밭 이야길 들었다.

"고추는 2월 20일에 파종했어요. 육묘를 하고, 떡잎이 나온 게 3월 28일이었지요. 그럼 모종하우스에서 60일을 또 키우고요. 그렇게 5월 20일이 되면 모종판을 밭에 심어 그때부터 키워요. 거름도 주고, 방제도 하고요. 7월 중순부터는 수확하는 거지요."

네댓 달을 무럭무럭 키운 고추가, '폭우'로 병충해를 입어 시름시름 앓을 때 심정은 어떨까. 초토화된 고추밭을 보며, 나도 모르게 그에게 "너무 속상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유씨는 "뭐 어떡하겠느냐"며 희미하게 웃었다. 다 자란 풋고추 나무를 유심히, 요리조리 보며 멀쩡한 걸 골라서 땄다. 쓸만한 게 너무 드물어, 팍팍 차야 할 큰 비닐이 너무 더디게 채워졌다.
잦은 폭우에 상추는 자주 녹고, 적상추는 수확도 포기한 터라 꽃대가 생겼다./사진=남형도 기자
잦은 폭우에 상추는 자주 녹고, 적상추는 수확도 포기한 터라 꽃대가 생겼다./사진=남형도 기자
평소 멀게 느껴졌던 '기후 변화' 피해가 코앞에 펼쳐졌다. 비단 그의 고추밭뿐만이 아녔다. 유씨는 인근에 있는 상추밭 하나를 보여줬다. 적상추가 기후 변화에 다 녹아서, 여기도 초토화됐다. 드문드문 남은 적상추에 꽃대가 올라왔다. 유씨는 "수확할 수 없으니 내버려둔 건데, 그래서 꽃대가 올라왔다""올해 농사는 이 상추밭이 상징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밤새도록 일해도 안 된다…'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강원도 홍천의 무밭에서 일하다 쉬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사진=남형도 기자
강원도 홍천의 무밭에서 일하다 쉬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사진=남형도 기자
꽃대가 올라온 상추를, 유씨가 조금 찢어 입에 가져갔다. 쓰다고 했다. 지금 상황과도 같았다. 농작물이 망가져 구멍이 뻥뻥 뚫린 땅은 어디에나 많이 보였다. 평온하게 느껴졌던 고요한 동네가 문득 적막하고 묵직해졌다. 떨쳐내기 힘든 생각은 그런 거였다. 애쓰고 열심히 했는데, 내 잘못도 아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후 변화'로 다 망가지면 뭘 어떡할까.

대체 어쩌나. 그러게, 농민들에겐 그리 어쩌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은 듯했다. '인력 문제'도 그래 보였다. 성하지 않은 고추밭 한 줄을 따는 것만 해도, 2~3시간이 훌쩍 갔다. 노트북을 벗어나 초록을 보면 좋을 거란 상상은 금세 무너졌다. '끄응', '후우' 하며 중간중간 욱신거리는 허릴 펴고 땀을 훔쳤다.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언제 다 끝나나'라며 아직 못 딴 왼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이리 고된 농사일에, 젊은 인력들은 '외국인 노동자' 빼고 거의 사라졌다. 농민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들 없인 농사를 이미 못 짓는 상황이라 했다. 지난해엔 코로나19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는 상황이 농촌에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났다. 남성 근로자 일당은 15만원, 여성 근로자는 13만원으로 올랐다. 그러고도 인력을 구하지 못해, 충북 제천이나 강원 춘천서 일할 사람들을 데리고 와야 했다. 차로 데리고 오는 비용(30만원)까지 농민들이 대야 했다.

그러고도 못 구해, 피땀 흘린 수확물을 땅에 버려야 했다. 유씨는 지난해 실제 있었던, 이웃 농민 이야길 했다. 그는 "한창 브로콜리 수확할 때인데, 외국인 노동자 중 코로나19 감염자가 생겼다"고 했다. 격리되느라 몇 주는 아무것도 못 하게 됐다. 그 농민은 홀로 밤새가며 헤드 랜턴을 쓰고 수확했으나, 수확 때를 못 맞춰 멀쩡한 걸 다 버려야 했다.



1000원에 농민 떠난 '오이맛고추', 소비자는 3000~4000원에 산다


어렵게 수확해 모은 푸릇푸릇한 오이맛고추./사진=남형도 기자
어렵게 수확해 모은 푸릇푸릇한 오이맛고추./사진=남형도 기자
고추를 수확하고, 농가 이야길 듣다 보니 수확물이 하나하나 참 귀하게 보였다. 온전한 하나를 얻기가 이리 힘든 거였다. 그래서 무 농가에 들러 이야길 들었을 때, 농부가 무를 준다고 했을 때, 한사코 거절하며 받지 않으려 했다. 그랬더니 그는 "좋은 걸 가져가야 한다"며 큼지막한 무를 손에 억지로 쥐여줬다.

그 노고의 대가라도 제대로 받고 있을지 우려됐다. 유기농 농사는 대개 '계약재배'라, 큰 이익은 얻기 힘든 대신 가격 영향을 많이 안 받는 장점이 있단다. 농민이 출하할 때 받는 가격은, 유씨 농가의 경우 유기농 고추(오이맛고추, 청양고추 등) 기준 10kg에 5~7만원 정도란다. 그게 유통회사 두 곳을 거쳐 백화점 친환경 코너에, 온라인 쇼핑몰 등에 가는 게다.

유씨가 판매한 유기농 고추 가격은, 그중 가장 비싼 10kg에 7만원으로 잡아도 한 봉지(통상 150g) 기준으로 1050원. 소비자 가격은 판매한단 곳에서 살펴보니, 통상 오이맛고추(유기농) 한 봉지에 3000~4000원에 형성돼 있었다. 거의 3~4배 수준이었다. 원산지에서 시작해 유통회사를 거칠 때마다 값이 뛰었다. 한 번 거치는 A 조합에선 유기농 풋고추가 한 봉지에 1500원 정도였는데, 두 다리를 거치는 B 온라인 마켓에선 2800원으로 뛰어 있었다.
쌈채소를 살펴보고 있는 유왕선씨(63)./사진=남형도 기자
쌈채소를 살펴보고 있는 유왕선씨(63)./사진=남형도 기자
복잡한 '유통 구조' 문제라고 했다. 20년간 강원도서 농사를 지었단 맹재혁씨(51)"강원도 홍천군 내면 농산물이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갔다가 다시 여기로 내려온다""운송료 등 움직일 때마다 돈이 올라간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민들은 "우린 비싸게 판 적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맹씨는 오히려 농산물 출하 가격이 맨날 똑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20년 전에 오이 한 박스에 7~8만원을 받았는데, 지금도 똑같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여성 노동자에게 주는 일당은 3만 3000원에서 13만 원으로 4배 이상 올랐단다.

주키니 호박 농사를 짓는 농민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 사는 애들이 한 번씩 전화와요. '엄마, 마트 가면 무가 얼마야', '배추가 1만원이 넘어가', 이렇게요. 그래서 애들한테 이렇게 말해요. 야, 1만원이 넘든 5만원이 넘든 여기선 그래 안 나간다."



겨울에 품 팔러 해남으로…빚지고 농가 줄어들고



올해 6월 12일 오전 세종시 소정면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농부가 말라가는 논을 둘러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뉴스1
올해 6월 12일 오전 세종시 소정면에서 극심한 가뭄으로 농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농부가 말라가는 논을 둘러보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사진=뉴스1
그러니 수익 내기가 어렵다. 농사에 필요한 비용은 계속 뛰는데, 농산물 출하 가격은 그대로다. 여기에 '기후 변화'가 겹쳐 상황은 더 나빠졌다. 유씨는 "재작년엔 급작스런 우박으로, 지난해엔 냉해로, 올해는 폭우로 매해 피해를 겪었다" "기후가 변하고 있다. 여긴 20~25도가 여름 최고 기온이었는데, 최근엔 30도가 계속 넘어간다. 이젠 강원도에서도 여름 상추 농사도 못 하게 생겼다"고 했다.

어찌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기후 변화로 상추는 녹고, 그로 인한 병충해 피해도 막심하다. 정해진 시기에 일해줄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인건비가 올라도 별수 없이 감당할 수밖에 없다. 그대로 두면 농작물을 다 버려야 하고, 농촌의 고령화도 더 심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많다. 내면의 유기농 농가는 한때는 40여 곳으로 많았으나, 지금은 10곳 미만으로 줄었단다. 포기하지 않으면 버텨야 한다. 여름 한 철 농사짓고, 수익이 안 나는 나머지 달은 빚을 내서 버티는 경우가 많다. 유씨는 "원래 강원도 농사는 겨울엔 쉬어줘야 몸도 회복되는데, 먹고 사는 게 힘드니 농민들이 그때도 해남이나 제주로 가서 품을 팔러 간다"고 했다.
농가의 농민이 말했다. &quot;아이고, 좀 먹고 살게 해주라.&quot; 그의 말과 오래된 신발에, 농가 현실이 다 담겨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농가의 농민이 말했다. "아이고, 좀 먹고 살게 해주라." 그의 말과 오래된 신발에, 농가 현실이 다 담겨 있었다./사진=남형도 기자
주키니 호박 농사를 하는 농민은 자신의 신발을 가리키며 이리 말했다. 신발도 이거 몇 년 되었다고, 아직도 못 버리고 산다고, 돈이 없다고, 농사가 잘돼야 옷도 사 입으러 갈 거라고. 그러니 달리 바라는 건 없다고 했다. 농촌을 살려달라는 말밖엔 할 게 없다고.

끝으로 농민들이 정부나 지자체에 바라는 이야길 담는다.

"농촌서 외국인 노동자 인건비가, 농작물 생산 비용의 40~50%나 차지한다. 월급이 250만~300만원을 넘는다. 안 쓸 순 없고 부담이 너무 크다. 정부서 일부라도 보전해주는 방식을 찾아줬으면 좋겠다."

"기후 변화 때문에 힘들어지고 있단 게 분명하다. 정부가 배춧값 비싸다고 수입한단 얘기만 하는데, 물가가 왜 그런지 근본적인 대책엔 관심이 없다. 립서비스라도 '기후 변화를 위해 어떤 걸 노력하겠다' 등 농민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주는 게 필요하다. 그게 정치 아닌가."

"외국인 노동자를 쓰려면 인건비도 인건비지만, 화장실, 샤워장 등 갖춰야 할 게 많다. 지자체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곳엔 별도 숙소 등 시설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수확한 무우를 들고 있는 유왕선씨(63)의 소박한 웃음. 그가 바라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땀흘린대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사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수확한 무우를 들고 있는 유왕선씨(63)의 소박한 웃음. 그가 바라는 건 많지 않았다. 그저 땀흘린대로 정당한 대가를 받고 사는 것./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농사 짓는 기쁨은 어떤 거냐고 유왕선씨(63)에게 물었다. 소소한 대답이 돌아왔다.

"작은 행복들이 있어요. 동네 사람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아, 여긴 농사 잘 됐네' 그러면서 갈 때요."

"그럴 땐 뿌듯하시겠어요."

"그럼요, 그 맛에 하는 거죠(웃음)."

부단히도 부지런히 쌓아간 하루들. 그의 손톱에 낀 흙 때와 까맣게 탄 피부, 트럭에 온통 묻어 있던 흙먼지.

그걸 모를리 없는 자연만큼은, 그저 정직하게 잘 자라준 것뿐일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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