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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원, 악의 없는 악의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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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수진 기자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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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9.26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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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엄지원, 사진제공=tvN
'작은 아씨들' 엄지원, 사진제공=tvN
tvN 토일드라마 '작은 아씨들'(극본 정서경, 연출 김희원)의 정서경 작가는 이 극에 "돈은 당신의 영혼에 어떤 의미인가"라는 기획 의도를 담았다고 했다. 가난하지만 우애 있게 자란 세 자매가 부유하고 유력한 가문에 맞서는 이야기이니 만큼 돈 때문에 피를 보는 장면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지만 돈이라는 말에 뒤따른 영혼이라는 단어에 눈이 간다. '작은 아씨들'은 세자매가 비리로 얼룩진 권력가와 얽히게 되면서 겪는 도덕적 갈등과 감정 변화들을 명상하듯이 진지하게 고찰한다. 이와 더불어 귓가에 숨결을 불어넣는 듯한 관능적인 삽입곡과 함께 등장인물들이 쥐고 있는 섹시한 반전을 내밀하게 묘사한다.


돈을 둘러싼 밀도 높은 심리전과 함께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드라마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세자매로 등장하는 김고은, 남지현, 박지후는 가난의 굴레에 놓인 10, 20, 30대가 생존하는 방식을 각자 다른 뉘앙스로 흥미롭게 연기하고 있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을 보다보면 이 세 주인공보다 잔상이 더 짙게 머무르는 한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원상아 역의 엄지원이다. 그저 남편에게 끌려다니는 수동적인 여성인 줄 알았더니, 소름 돋는 반전을 몰고 온 '작은 아씨들'의 절대악임이 밝혀졌다. 이제 상아의 해맑은 웃음은 햇살 같기보단 피바람의 비릿한 내음을 풍긴다.


이 지점에서 작가가 말한 "돈은 당신의 영혼에 어떤 의미인가"라는 말을 다시 되짚어 본다. 가난하게 자란 세자매의 영혼은 사실 그렇게 많은 물음을 품게 하지는 않는다. 많이 봐왔고, 겪었고 또 겪어가고 있는 보통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아라는 인물은 돈이 그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만든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장군의 딸, 완벽한 미모. 대궐 같은 집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아마 부족할 것 없이 자랐을 상아의 삶은 가장 큰 부분이 결핍돼 있다. 바로 영혼이다. 상아에게는 많다 못해 넘쳐났을 돈이 그의 영혼에 순수악을 빚어냈다. 돈이면 뭐든 할 수 있었기에 무엇이건 애타게 갈구했던 법이 없었을 테고, 그것의 반복은 일종의 무료함을 낳았을 것이다.


'작은 아씨들' 엄지원, 사진제공=tvN
'작은 아씨들' 엄지원, 사진제공=tvN


극 초반 엄지원이 연기하는 상아는 온실 속 화초처럼 가녀리고 유약해 보였다. 불안한 정서를 지닌 딸마저 "엄마를 자신이 지켜야"할 존재라 믿었고, 시청자들도 그렇게 믿게 했다. 연기라기엔 너무나 생생한 표현 덕에 시청자는 상아의 시선에서 함께 마음 졸이고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8회 말미 상아는 음흉한 속내를 철저하게 숨긴 채로 모든 상황에 순식간에 녹아 들어가는 유능한 가면을 쓴 연기자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으며 순수하리만치 재미라는 욕구에 충실한 그는 상상도 못한 곳에서 조커처럼 판을 순식간에 뒤집고 흔들었다. 외롭고 화려한 여자에서 순식간에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으로 말이다.


'작은 아씨들'은 기본적으로는 선한 주인공이 악한 권력층을 뒤쫓는다는 고전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세주인공에 이어 빌런까지 모두 여성으로 채택하며 체제 전복적인 재미를 준다. 때문에 세자매만큼이나 상아는 이 극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군다나 순수악은 절대악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내밀하고 은근해 연기하기가 쉽지 않다. 아이같은 정서에 복합적인 심리를 얹어내는 것이 이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엄지원이 아니라면 애초에 성립될 수 없을 캐릭터인 것처럼 그는 '작은 아씨들'에서 최고의 매력을 뽐낸다. 순수함이 깃든 알쏭한 말투부터 기품이 잔잔하게 깔린 묘한 아우라, 미묘하게 바뀌는 섬뜩한 감정선까지. 그동안 엄지원에게서 봐온 연기가 총망라 됐고, 이것들이 어우러져 악의 없는 악의 종결자를 탄생시켰다. 엄지원이기에 가능한 여자 악역의 새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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