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英의 불안감…피치도 국가신용등급 전망 "부정적" 하향

국제 신용평가업체 피치가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가 같은 조치를 내놓은 지 닷새 만이다. 일부 뒤로 물리긴 했지만 영국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대규모 감세안에 대한 후폭풍은 이어지고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AFPBBNews=뉴스1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피치는 영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종전 'AA-'로 유지하는 한편 등급 전망은 '부정적'으로 제시하며 향후 신용등급이 강등될 가능성을 열어놨다. 영란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 역시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피치는 "대규모 재정 부양책이 재원 조달 조치나 거시경제 및 공공재정에 미치는 독립적인 평가 없이 발표된 데다 인플레이션 압박이 거센 상황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엇박자를 내면서 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이번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피치는 "영국 정부가 최고세율 45% 폐지 계획을 철회했지만 정부의 약화된 정치적 자본은 재정 전략의 신뢰와 지지를 더 훼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치는 올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7.8%를 기록하고 내년에는 8.8%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2024년 109%까지 뛸 것으로 추산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정부는 지난달 23일 경제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2027년까지 450억파운드(약 68조원) 규모의 감세안을 내놓으면서 금융시장을 뒤집어놨다. 감세안이 인플레이션 압박을 키우고 정부 재정을 지속 불가능한 수준으로 몰고갈 것이라는 공포가 번졌기 때문이다. 이에 파운드는 역대 최저로 폭락하고 영국 국채 금리는 30년 만의 최고치로 뛰었다. 이례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나서 영국 정부를 향해 감세안 재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극심한 시장 혼란에 영란은행은 최대 650억파운드 규모의 국채 매입에 나서고 정부는 감세안에 포함됐던 부자 감세 계획을 철회하며 시장에 급한불을 껐지만 영국 재정정책에 대한 신뢰 문제까지는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다. 부자 감세 계획 철회는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에 도움을 줬지만 그 규모는 20억파운드 정도로, 전체 계획된 감세 규모의 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영국 국가신용등급 전망도 악화하고 있다. 피치에 앞서 S&P도 지난달 30일 영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했다. S&P는 "영국 경제가 약화돼 성장률이 더 떨어지거나 시장 원리나 긴축 정책으로 정부의 차입 비용이 예상보다 증가하는 등 추가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쿼지 콰텡 영국 재무장관은 11월23일로 예고했던 중간 재정 계획안 발표를 이달로 앞당기겠다는 계획이지만 별다른 기대를 모으지는 못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취임 한 달 만에 감세안 역풍으로 궁지에 몰렸지만 감세를 통한 성장 정책을 거듭 강조하며 정면돌파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5일 버밍엄에서 개최된 보수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감세는 도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옳다"면서 "최우선은 성장, 성장, 성장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