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너도 다쳐" 죽음 내모는 軍성폭력 2차 가해…변한 건 없다

경기도 성남시에 있는 국군수도병원의 장례식장의 고 이예람 중사 빈소. 이중사의 아버지 이주완씨(59)가 500일 넘게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진=정세진 기자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고 故 이예람 중사는 지난해 3월 2일 저녁 자리에서 선임인 장 중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피해를 호소했다. 이후 동료·상관의 회유·압박에 시달리던 이 중사는 결국 남편의 관사에서 5월 21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 수사를 맡은 안미영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13일 이 중사가 직속상관들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해 사망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일상 회복찰은 폐쇄적인 조직 특성 탓에 지휘계통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중사 사건을 수사했던 제 20전투비행단 소속 군 검사도 2차 가해 범죄 수사를 방임하고 피해자 사생활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성범죄 자체도 문제지만 2차가해 범죄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어렵게 하는 경우도 많다.

이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및 입대 전 범죄, 사망사건 등은 경찰 등 민간 수사기관이 담당하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성범죄에 따른 2차가해 범죄는 여전히 군사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실제 사망으로 내몬 원인이 2차 가해로 지목됐어도 이 문제는 개선되지 않은 셈이다.
피해사례가 예방교육 자료로…피해자 일상회복 막는 '2차가해'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 특검팀 안미영 특별검사가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출범 후 100일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성범죄 자체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다"라며 "군 성폭력에선 2차가해가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형사사건에서는 '범죄혐의 발견→수사개시 →입건→구속/불구속→조사→송치→기소/불기소→재판→형집행'으로 이어지는 절차를 통해 범죄자를 처벌하고 범죄를 예방한다. 군 성폭력의 경우 2차가해에 가로막혀 범죄혐의를 발견하거나 신고받기가 어렵다.

또 다른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상담한 사례 중에는 성폭력 피해자가 신고 계통을 통해 고충상담한 피해사례가 소속부대 성폭력 방지 교육 시간에 예시로 사용됐다"며 "해당 교육시간에 피해자도 참석하고 있었는데 가명 처리한 후 사례가 소개됐지만 부대 사람이라면 누가 들어도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했다.

이 중사 사건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상관들은 오히려 2차 범죄 가해자가 됐다. 이 중사와 같은 팀에 근무했던 노 모 준위와 고(故) 노 모 상사는 사건 발생 직후 이 중사가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신고하지 말라'고 이 중사를 회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이 시기 이 중사 상관인 대대장 A씨(44)도 이 중사에 대한 회유 및 사건 은폐 등 시도를 알았지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공군본부 인사담당자에게 '피해자가 가해자와 분리돼 있고 군사 경찰이 장 중사를 다른 부대로 파견하는 것을 조사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허위 보고한 혐의를 받는다.

A씨의 허위 보고로 가해자는 범행 이후에도 17일간 피해자와 같이 근무했던 사무실에 출근하면서 다른 부대로 파견되기 전까지 부대 내에서 '이 중사에게 거짓으로 고소당했다'는 취지의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중사가 죽기 직전 근무했던 제15특수임무비행단에서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여군 부사관에 대한 성폭력이 발생했다. 피해자는 성폭력 수사 과정에서 해당 부대원들의 2차가해를 받아 군 인권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15비 소속 준위 B씨는 여군 하사 C씨를 상대로 지난 1~4월 사이 "남자친구와 헤어졌으면 좋겠다" "나랑은 결혼을 못 하니까 대신에 내 아들이랑 결혼해서 며느리로서라도 보고 싶다" 등 성희롱을 일삼았다. 또한 코로나19(COVID-19) 감염으로 격리된 다른 하사에게 입 맞추기나 침을 핥기를 요구하는 등 고의 감염을 강요한 혐의로 구속돼 군사경찰 수사를 받았다.

B준위는 C하사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로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죽을 수밖에 없을 거야. 협박같이 들리겠지만 절대 협박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길 같아" 등의 문자를 여러 차례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장기 복무으로서 정년까지 군 복무를 하기 위해 장기 복무에 선발되거나 진급을 위해선 인사평정권을 가진 상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C하사는 공군에서 상대적으로 진급이 어려운 부사관 후보생 출신이었고 B준위는 이 사실을 2차 가해에 악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군인권센터는 "피해자가 거부하거나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가해자는 피해자를 업무에서 실제로 배제시킨 적도 여러 번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가해자의 성추행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란 사실 쉽지 않았다"며 "B준위가 '나만 믿으면 장기복무를 할 수 있다'는 취지로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길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군 수사단(군사경찰)은 성추행 피해자를 공공연히 험담하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이를 도리어 B준위에게 알려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를 유발한 상급자(원사)에 대한 명예훼손 사건을 공군 검찰단에 '불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며 2차 피해 유발 행위 등을 형사 범죄로 판단하지 않는 공군 군사경찰의 태도는 계속되는 성추행과 2차 피해를 두둔하는 행태나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장기 복무 원하는 피해자…성폭력 신고할 수 있을까

지난 2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개최된 K-밀리터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군사경찰단이 모터사이클 퍼레이드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음. /사진=뉴스1

현재 경찰은 군대 내 성범죄 사건을 수사하다 2차가해 정황을 인지하면 군 수사당국에 인계해야 한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경찰 이관 대상 군인 범죄 현황'에 따르면, 지난 7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찰이 파악한 군인 성범죄는 32건으로 집계됐다.

군 성범죄를 경찰이 수사하도록 한 뒤에도 하루 1건꼴로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지만 2차가해 범죄 수사는 군 수사당국이 여전히 담당하고 있다.

공대위 관계자는 "장기 복무를 희망해 입대한 상황에서 소문이 빠른 군에서 2차가해를 신고하는 건 쉽지 않다"며 "피해자들은 일상 회복을 원하지만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일상 회복이 어려워지는 모순에 빠진다"고 했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씨(59)는 "성범죄뿐 아니라 2차 가해를 포함한 일반 범죄도 민간경찰로 넘겨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