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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전 재산보다 중요한 게…'베란다'에 처박혀 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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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0.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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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처음 받은 '재난 안전체험'…땅 흔들리고, 컴컴한데 연기 나니 당황해 머리 새하얘져, 전문가 "9.11 테러 때 2947명 중 2937명 살아남은 모건스탠리의 기적, 대피 훈련이 그렇게 중요"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journalism)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 곳곳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그늘에 따뜻한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불이 났을 때 얼마나 중요한 피난 기구인지도 모르고, 화분을 받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해, 베란다 구석에 두었던 '완강기'.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아보려 생각하지 않았다./사진=완강기 상자 뒤쪽을 청소하는 게 늘 고역이었던 남형도 기자
불이 났을 때 얼마나 중요한 피난 기구인지도 모르고, 화분을 받치는 것 정도로만 생각해, 베란다 구석에 두었던 '완강기'. 단 한 번도 제대로 알아보려 생각하지 않았다./사진=완강기 상자 뒤쪽을 청소하는 게 늘 고역이었던 남형도 기자
우리집 전 재산보다 중요한 게…'베란다'에 처박혀 있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자, 건물에 불이 났어요. 밖으로 나가야 해요. 어디로 가죠?"

'옥상인가?' 하고 속으로 갸우뚱하니 김자겸 운영교관이 독심술을 하듯 이렇게 답했다.

"옥상은 건물 안이에요. 화재 연기가 다 거기 모이죠. 최대한 1층으로 가야 해요. 근데 모든 문이 뜨거워서 못 나간다면, 그땐 어떡하죠?"

또 난감한 질문. 속으로 '그럼 꼼짝없이 죽는 거 아닌가요'라고 생각할 때 김 교관이 답했다.

"창문으로 가야 해요. 그런데 뛰어내리면 안 되죠. 대신 피난 기구가 있으면 탈출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가 가리킨 플라스틱 상자가 있었다. 겉에 '완강기'라 쓰여 있는 그것. 아, 어디서 많이 본 거였다. 기억났다. 우리 집 베란다 구석에 처박혀 있고, 자꾸 거미줄이 쳐져 청소하기 곤란하며, 단 한 번도 안 열어보았던.



강남역에서 '화재 사이렌'이 울렸을 때…발이 붙었던 기억


가을 단풍에 물든 서울 광나루 안전체험관 전경. 주차는 어린이대공원 정문 주차장에 하면 좋다./사진=남형도 기자
가을 단풍에 물든 서울 광나루 안전체험관 전경. 주차는 어린이대공원 정문 주차장에 하면 좋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러니 여기, 서울 광나루안전체험관에 온 이유가 있었다.

20대 후반 때였다.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러 내려갔는데, 화재 경보가 요란하게 울렸다. 순간 뭘 어찌할지 몰라 발이 붙어버렸다. 그냥 주위만 두리번거렸다. 다들 나와 비슷했다. 누구도 그 소리에 바로 뛰어나가지 않았다. 다행히 '오작동'이긴 했지만.

그때 생각했다. 재난 상황에서도 이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고. 몸에 배도록 연습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말이다.

광나루안전체험관도 그래서 만들어졌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99년 화성씨랜드 화재 등의 참사가 남긴 배움. 진짜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능력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2003년 3월에 안전체험관이 처음 생겼다. 매년 600명의 체험객이 찾는 안전 교육의 장이 됐다.

홈페이지에서 미리 '재난 안전체험'을 예약하고, 27일 오후 방문했다. 복지관에서 온 단체 체험객들도 있었고,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님도 꽤 많았다. 이날 해볼 재난 체험은 5개였다. 지진, 선박 사고, 화재 대피, 소화기와 피난 기구 사용까지.



'땅이 흔들리겠지' 생각하는 것과, 실제 겪어보는 것


실제 지진이 난 것처럼 저렇게 흔들린다.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겪는 건 또 다르다./사진=다음 차례에 똑같이 겪을 예정인 남형도 기자
실제 지진이 난 것처럼 저렇게 흔들린다. 눈으로 보는 것과 실제 겪는 건 또 다르다./사진=다음 차례에 똑같이 겪을 예정인 남형도 기자
'지진 체험'부터 시작했다. 실제 집처럼 돼 있는 곳이었다. 지진 나면 바깥으로 빠르게 대피한다, 여기까진 알고 있었다. 조금 더 자세히, 김자겸 교관의 설명이 이어졌다.

"먼저 열어야 할 게 있어요. 현관문이에요. 문이 지진으로 찌그러지면 나중에 나가기 힘들 수 있으니까요."

설명이 끝나니 실전이었다. 이내 바닥이 심하게 흔들렸다. 정말 지진이 난 듯했다. "지진이야!" 교관의 외침에 다들 방석으로 머릴 감싸고 테이블 밑으로 들어갔다. 몸이 들썩거리니 훈련인 걸 알고 있음에도 당황했다. 급하게 들어가느라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세가 불편해 견디기 힘들었다.
실제 지진 체험은 이런 느낌이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흔들린다./사진=머리를 감싸고 책상 밑으로 숨은 남형도 기자
실제 지진 체험은 이런 느낌이다. 생각보다 몸이 많이 흔들린다./사진=머리를 감싸고 책상 밑으로 숨은 남형도 기자
그러다 지진이 잠시 멈췄다. 다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열까지 세고 나오라고 했다. 여덟까지 셌더니 다시 땅이 엄청나게 흔들렸다. 주방 쪽에서 조리기구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시 뒤 흔들림이 멈췄다. 전기와 가스를 끄고 나왔다. 한 체험객이 나오며 말했다. "아우, 무서워."

무사히 밖으로 빠져나오니, 김 교관이 말했다. "잘하셨는데, 현관문을 못 열었지요?" 방금 설명을 들었음에도, 땅이 흔들리는 순간에 당황해 다들 부리나케 피하느라 까먹은 거였다. 실제 해보는 게 그리 중요했다.



'구명조끼'는, 배 안에서 바로 입는 거 아니에요?


선박 사고를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주는 체험장. 실제 배와 동일한 모습이고, 충격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선박 사고를 시뮬레이션해서 보여주는 체험장. 실제 배와 동일한 모습이고, 충격도 똑같이 느낄 수 있다./사진=남형도 기자
"갑자기 폭풍우 영향으로 5m 높은 파도가 일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선 안전한 선내에 머물며 안내 방송에 귀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진짜 배를 탄 것 같은 흔들림. 선박 사고 때 탈출하는 체험은 그리 생생했다. 풍랑이 몰아치고, 배가 오른편 암초와 충돌했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충격이 가해졌다. 사이렌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현 시각, 본 선박은 암초와 충돌해 정상 운행이 불가합니다. 승객 여러분께선 안내 방송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나도 모르게 좌석 아래 구명조끼를 챙겨 나가려 했다. 김 교관의 말에 정신 차렸다. "구명조끼를 챙기고 기다려주세요." 아, 안내 방송을 들어달라고 했었지.
선박 사고 탈출을 위한 체험장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김자겸 광나루안전센터 운영교관님. 귀에 쏙쏙 잘 박히도록, 설명을 잘해주신다./사진=남형도 기자
선박 사고 탈출을 위한 체험장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김자겸 광나루안전센터 운영교관님. 귀에 쏙쏙 잘 박히도록, 설명을 잘해주신다./사진=남형도 기자
잠시 뒤 갑판으로 가란 안내 방송에 계단을 올라갔다. 천장이 없어 하늘이 보이는 여기가, 탈출하는 '비상 집합 장소'. 왼팔로 물이 안 들어가게 코를 가리고, 오른팔로 날 끌어 안 듯 감싸고, 차렷 자세로 다릴 꼰 뒤 누운 자세로 '슬라이드'를 타고 탈출했다. 나도 모르게 "우아아"하면서 내려오니, 밑에서 기다리던 교관님이 "겁 먹으셨죠?"하며 웃었다(맞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구명조끼는 선내에서 바로 입는 게 아니란 것.

김 교관은 "배 안은 막힌 공간이라, 물이 차오르면 구명조끼를 입은 게 탈출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인천 앞바다에서 낚싯배가 전복됐을 때, 구명조끼를 입은 이들이 탈출하지 못했단다. '비상 집합 장소'처럼 위가 뚫린 곳에 이동해 입어야 한다고 했다.



소화기를 꽉 쥐시면, '안전핀' 안 뽑혀요


소화기로 불 끄는 체험을 하고 있는 다섯 어린이 친구들./사진=불은 어른이 잘 끌게 너희는 잘 피해, 라고 생각 중인 남형도 기자
소화기로 불 끄는 체험을 하고 있는 다섯 어린이 친구들./사진=불은 어른이 잘 끌게 너희는 잘 피해, 라고 생각 중인 남형도 기자
김 교관의 설명을 들을 때마다 그리 아찔했다. 찰나에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말들. 어쩌면 그리 관심을 안 가졌을까 싶었다.

소화기 쓰는 체험만 해도 그랬다. 불이 났다면 소화기를 가져올 거다. 아마도 손잡이를 꽉 쥘 거다. 그 상태론 '안전핀'을 뽑으려 해도 안 뽑힌다. 왼손으로 손잡이가 아닌 몸통을 잡고, 오른손으로 안전핀을 뽑아야 한다. 그럼 새끼손가락으로도 쉬이 뽑힌다.

실제 불이 나면 더 무섭고 당황할 거다. 소화기 손잡이를 꽉 쥐고 안전핀을 뽑으려다 안 되면 진땀이 날 거다. 그새 불은 자비 없이 더 커진다. 상상만으로 무서웠다. 미리 해보는 게 그래서 중요했다. 화재 피난도 그랬다. 김 교관이 물었다.

"뜨거운 연기를 마시면 기도도 화상을 입어요. 안 마시도록 코와 입을, 옷으로 가리고 대피해야 하는데요. 옷엔 물을 묻히고요. 그런데, 만약 물이 없고 초코 우유가 있다면 대신 묻혀도 될까요?"
컴컴하고 연기가 자욱한 와중에 대피하는 체험. 기댈 게 유도등뿐이다./사진=남형도 기자
컴컴하고 연기가 자욱한 와중에 대피하는 체험. 기댈 게 유도등뿐이다./사진=남형도 기자
한 아이는 "안 돼요"라고 답했고, 어른들도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나도 몰랐다. 정답은 '옷에 음료를 묻혀도 된다'였다.

컴컴한 공간에 들어서자, 가짜 연기가 뿜어져 나와 실제 화재 현장 같았다. 옷으로 코를 가리고, 허릴 굽히고 대피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어둡고 좁고 경사가 있는 공간에서 의지할 건, 비상구 방향을 알려주는 '초록빛 유도등'뿐이었다. 어디에나 있지만, 언제나 관심이 별로 없었던 그것.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숨이 헉헉 찼다. 함께 나온 누군가 중얼거렸다. "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웃으며 말했으나, 실제라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이 계속 무서웠다.



사실상 최후의 피난 수단, '완강기'


완강기로 탈출하는 체험 중인 용감한 어린이./사진=남형도 기자
완강기로 탈출하는 체험 중인 용감한 어린이./사진=남형도 기자
2015년 1월, 사상자 130여 명이 났던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 그때 3~10층 공용 복도 끝엔 '완강기'가 있었다. 하지만 실제 이용한 이는 한 명뿐이었다. 주민들은 완강기가 있단 것도 잘 몰랐고, 알고 있었어도 급박해 쓸 생각조차 못 했다고 했다.

이를 미리 알았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했을 거라 했다. 완강기는 화재가 심해 1층으로 나갈 수 없을 때, 고층 건물서 탈출할 수 있는 피난 도구다. 몸에 줄을 매달고, 건물 외벽을 타고 내려가는 방식이다. 이때 '내려가는 속도'를 줄여주는 게, 완강기 원리의 핵심이다.

실은 나도 이게 뭔지 잘 몰랐다. 김 교관의 설명을 듣고 처음 배웠다. 방법은 간단했다. 완강기 상자를 열면, 쇠로 된 몸체(조속기)가 있다. 거기에 고리를 끼우고, 그 고리를 벽에 고정된 '지지대'에 건다. 그리고 동그랗게 돌돌 말린 릴을 창밖으로 던진다. 1층까지 떨어져야 한다.
완강기 벨트 착용법을 설명하고 있는 김자겸 교관님. 눈 감으실 때 사진 찍어서 죄송합니다.../사진=남형도 기자
완강기 벨트 착용법을 설명하고 있는 김자겸 교관님. 눈 감으실 때 사진 찍어서 죄송합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고 벨트를 착용한다. 김 교관은 "허리가 아니라 겨드랑이까지 쭉 올려서 가슴에 착용한다"고 했다. 그다음에 팔을 내리면 준비가 끝났다. 이제 뒤를 돌아서, 벽을 타고 내려가는 거다. 이때 난간 등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도록, 손으로 통통 짚으면서 내려가면 된다. 발로 차지 않는다.

중요한 건 한 번에 한 명만 이용할 수 있단 것. 반복해서 내려가며 쓸 수 있다. 설명을 듣던 한 부모가 김 교관에게 물었다. "25kg 이상만 이용할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아이들은 어떡하지요?"
실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면 이정도 속도다./사진=남형도 기자
실제 완강기를 타고 내려오면 이정도 속도다./사진=남형도 기자
김 교관은 "25kg 제한이 있는 이유가 너무 가벼우면 안 내려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둘이 탔다가는, 상대적으로 작은 아이가 벨트 사이로 쑥 빠져 위험할 수 있단다. 정 대안이 없으면, 아이가 줄을 잡고 어른이 내려주는 방법도 있으나 그 역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니 다른 피난 기구를 쓰는 게 좋다고 했다.

실제 완강기를 타봤다. 가슴에 벨트를 두고, 겨드랑이에 끼도록 해 단단히 고정했다. 그리고 3층부터 2층까지 내려와 봤다. 속도가 빠를까 싶어 걱정했으나, 완강기가 낮춰준 덕분에 무사히 착지했다. 이제 어떻게 쓰는지 알 것 같았다.



완강기 쓸 줄 아는지 물었더니…응답자 92% "모른다"


기자의 인별그램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완강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기자의 인별그램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완강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이 극히 적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리 재난 안전체험이 끝났다. 단 한 번으로 막 익숙해지진 않았다. 어떻게 하면 몸에 배도록 훈련할 수 있을까. 김 교관은 "너무 잘 들어주셨다, 다시 한번 와달라"고 했다. 긴급한 재난에 대비해, 살기 위해 반복하여 훈련하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값진 투자란 생각이 들었다. 100분을 들여, 무려 내 생명을 구하는 거니까.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걸 몸소 배울 수 있었다. 참 많은 걸 모르고 살았다. 그저 운이 좋았다.

다들 나와 비슷할 거라 여겼다. '완강기'가 뭔지, 쓸 줄 아는지, SNS를 통해 기자의 독자들에게 설문 조사를 했다. 총 1276명이 응답했다.

완강기를 쓸 줄 모르는 이가 무려 92%(1172명)에 달했다. 이 중 72%(920명)는 뭔지는 안다고 했다. 완강기를 쓸 줄 아는 사람은 8%(104명)에 불과했다.

완강기 사용법을 스스로 터득했단 김양수 씨는 보기 드문 사례였다. 그는 "단층집에 살다, 6층 집에 이사 오며 완강기를 처음 봤다. 전 거주자가 완강기 지지대를 떼었길래, 다시 설치하며 설명서를 보며 직접 연습해봤다"고 했다.

그러나 응답자 대부분은 "(완강기 상자)안에 뭐가 있을까 했다", "필요하단 생각은 늘 했는데, 막상 완강기도 지하철 화재 시 필요한 도구도 하나도 모른다"고 답했다.



9.11 테러 때…모건스탠리의 '기적'도 평소 훈련 덕분


지진 체험 훈련 전에, 머리를 감싸는 시범을 보이고 있는 김자겸 교관님./사진=남형도 기자
지진 체험 훈련 전에, 머리를 감싸는 시범을 보이고 있는 김자겸 교관님./사진=남형도 기자
실제 사례를 들려줄 필요가 있을 듯싶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들려준, 9.11 테러 당시 모건스탠리의 '기적' 얘기다.

2001년 9월 11일,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다. 사상자가 엄청났다. 그날 세계무역센터 건물 내 모건스탠리엔 직원 2697명, 방문객 250명이 있었다. 입주한 다른 기업은 과반수가 사망했으나, 모건스탠리에 있던 2947명 중 사망자는 10명에 불과했다.

어떻게 이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이 교수는 "1993년에도 세계무역센터에 차량 폭탄 테러가 있었는데, 모건스탠리가 이후 분기마다 한 번씩, 9.11테러까지 30번의 불시 훈련을 했다"고 했다. 반발도 심했단다. 하지만 반복 훈련 덕분에, 실제 상황에서 인명을 많이 구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27일 서울 마곡나루역 공항철도 승강장에서 열린 2022 재난대응 안전한국 시범훈련에서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등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지난달 27일 서울 마곡나루역 공항철도 승강장에서 열린 2022 재난대응 안전한국 시범훈련에서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화재 진압 및 인명 구조 등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재난 훈련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 차이는 크단다. 이 교수는 '게임'에 비유했다. "처음엔 잘 죽잖아요. 게임에 실패하죠. 지형도 모르고, 뭘 가져야 힘이 세지는지도 모르고요. 자꾸 실패하다 보면 점수도 높아지고 순위도 올라가죠. 재난 훈련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해봤다는 것 자체만으로, 실제 상황에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불시 훈련'이 효과가 크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미국은 불시 훈련을 한다. 대피가 끝난 뒤에야 '이건 훈련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 심리 상태까지 볼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시나리오에 짜여진 훈련이 많아, 실제 재난 상황과 잘 안 맞는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일단 사이렌이 울려도 대피하지 않는단다. 공 교수는 "기본적으로 사이렌 오작동이라 생각해서 대피 시간이 길어진다. 실제면 대피를 못 하는 것"이라 했다.

그러니 재난 체험 상태에서 몸으로 터득하는 게 좋다. 그래서 서울엔 광나루안전체험관과 보라매안전체험관 두 곳이 있고, 전국 시도에 18개의 안전체험관이 있다. 화현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광나루체험센터 센터장 "오감을 통해 반복 체험하면, 재난이 발생해 이성적 판단이 힘든 상황에서도, 올바른 대처가 저절로 나올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집 베란다 지지대에 완강기를 실제 설치해 본 모습.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해보는 게 중요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집 베란다 지지대에 완강기를 실제 설치해 본 모습.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해보는 게 중요하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베란다서 완강기 상자를 새삼 발견했다. 한쪽 구석에서, 식물 받침대 정도로 쓰이고 있었다. 처음으로 열어봤다. 지지대를 고정하고, 직접 걸었다. 벨트를 가슴에 묶었다.

눈을 감고 상상했다. 원치 않게 불이 난다. 계단으로 피할 수 없다. 아내와 베란다에 간신히 피신한다. 완강기를 탄다. 아내를 먼저 내려준다. 아내가 내려갈 땐 무섭지 않게, 위에서 줄을 잡아 떨어지는 속도를 더 늦춰준다. 난 그다음 내려간다.

아내가 베란다로 다가와 뭐 하냐고 했다. 내가 물었다.

"혹시 소화기 쓰는 방법 알아?" (기자)
"음, 그거…그냥 스프레이처럼 치이익, 뿌리면 되는 거 아니야?" (아내)

아내가 멋쩍게 웃기에, 소화기 안전핀을 뽑는 연습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이제 내가 구해줄게."
완강기 벨트를 가슴에 착용한 모습. 겨드랑이 아래에 고정되도록 잘 끼어야 한다./사진=설거지 하다가 온 남형도 기자
완강기 벨트를 가슴에 착용한 모습. 겨드랑이 아래에 고정되도록 잘 끼어야 한다./사진=설거지 하다가 온 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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