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모르는 미등록 아동들…학대에 목숨 잃어야 알려져

(김천=뉴스1) 공정식 기자 = 경북 구미에서 방치돼 숨진 3세 여아 친언니 A씨(22)의 1심 선고 공판이 열리는 4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정문 앞에 시민들이 하늘로 떠난 여아를 추모하기 위한 밥상을 차려 놓았다. 2021.6.4/뉴스1

#지난해 3월 경북 구미시의 한 빌라에서 3세 여아 A양이 방치 끝에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의 친모로 알려졌던 B씨는 2020년 8월 초에 빌라에 아이를 두고 이사해 같은 달 중순 숨지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A양은 국가에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 아동'이었다. A양이 숨진 지 1년 반이 지났지만 국내엔 여전히 수많은 '미등록 아동'이 있다.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아 이름도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아이들은 교육이나 의료보험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학대나 방치를 당해도 외부에 알려지기 어려워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13일 보건복지부가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출생 미등록 아동 학대 건수는 연평균 83건에 달했다. 연도별로는 2018년 95건, 2019년 89건, 2020년 74건, 2021년 74건으로 집계됐다.

학대유형은 방임이 277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정서 학대와 방임(36건), 신체·정서학대와 방임(9건), 신체학대와 방임(9건), 성 학대와 방임(1건) 순이었다. 학대 피해자는 0~4세의 영유아가 251명(75.6%)으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국내에 출생 미등록 아동이 얼마나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시민단체 보편적 출생신고 네트워크가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출생 미등록 상태였던 아동은 146명이었다. 실제 미등록 아동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생 미등록 아동의 존재는 잔혹한 학대가 끝나고 나서야 알려진다. 2020년 11월 전남 여수의 한 주택 냉장고에서는 출생 미등록 아동인 2세 남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지난해 1월 인천 미추홀에서도 출생 신고가 되지 않은 8세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출생 등록 업무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가족관계 등록은 법원이, 주민등록은 행정안전부가, 아동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출생신고는 각 관할 지자체가 맡는다. 출생 미등록 아동의 실태를 조사하고 관리하는 전담 기관이 없어 이들의 정보를 정리하고 공유하는 곳이 없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출생통보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진다. 현행법은 태어난 아동의 출생 신고를 부모가 하도록 규정한다. 출생통보제는 아동이 태어날 때 의료진이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통보하는 의무를 부여하는 제도다. 국내에서 99% 이상의 분만이 의료기관에서 이뤄져서다.

법무부는 지난해 6월 출생통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등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3월2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상태다. 하지만 정권이 바뀐 후에 해당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출생통보제를 도입함과 동시에 부모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이의 권리가 출생 단계부터 보장될 수 있도록 출생통보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아이와 부모의 권리를 함께 보호하기 위해 부모의 신원을 보호할 수 있는 비밀출산 제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