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 예방 취지는 공감, 세부안엔 우려" 중처법 로드맵에 산업계 온도차

(서울=뉴스1) 박지혜 기자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대재해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 이날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지금껏 형식적으로 운용되고 있던 기업의 ‘위험성평가’를 의무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8년째 정체 중인 산재 사고사망 만인율을 오는 2026년까지 0.29로 감축하겠다는 계획이다. 2022.11.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자율성을 부과한다기에 기대했는데 명목 뿐이고 외려 처벌과 감독 등 규제를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반영해달라는 요구는 이번에도 묵살됐다. 중대재해법 자체를 손보지 않고는 한계가 있다."

중대 재해 감축을 위한 정책 방향을 처벌에서 자율 예방 중심으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로드맵 발표에 대해 산업계는 큰 방향성엔 공감하면서도 세부 내용에 있어선 되레 규제가 강화됐다는 반응을 내놨다.


정부는 3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부는 "그간의 경험에 비춰 다수 입법을 통한 정부 규제와 처벌만으로는 더 이상 사망 사고를 줄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처벌과 감독을 통한 타율적 규제의 한계를 언급하며 안전주체들의 책임에 기반한 자기규율과 예방역량 향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통계를 보면 정부와 정치권이 민망할 만도 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를 막겠다며 법이 시행된 지난 1~9월 중대재해 건수는 483건으로 전년 대비 9건 줄어드는데 그쳤고, 이 기간 사망자 수는 무려 510건으로 오히려 전년 대비 8명 늘었다.

이와 관련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관계자는 "현행 중대재해법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적용대상과 범위가 모호하다"며 "처벌수준도 지나치게 높아 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으며, 법 시행 이후에도 중대재해가 전혀 줄어들지 않으면서 법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내놓은 정부의 로드맵 세부과제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자기규율과 예방체제 구축'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선언했지만 재계는 현 법 구조와 모호한 로드맵 규정 상 외려 기업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관계자는 "정부는 그러면서도 대표적 타율규제인 중대재해법 자체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며 "외려 상습 및 반복 사망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확대시행, 핵심 안전수칙 위반에 대한 무관용, 중대재해시 산재보험료 할증 등 처벌 강화 내용을 다수 포함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부분 선진국들이 자율관리제도로 운영 중인 위험성 평가를 의무화하고 처벌을 신설하는 규제강화 계획을 마련한 것에 대해서는 놀랄 수밖에 없다"며 "아직 중대재해법 이행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중소규모 사업장에 대해 위험성 평가 등을 강제 실시하고 규제를 강화하는건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큰 틀의 방향성엔 공감했지만 현실적 대안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상의 관계자는 "안전책임주체를 노사로 정하고, 양측이 함께 책임을 지며 사고 예방을 추진하는 원칙엔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만 그간 경제계가 호소해 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과 과잉처벌 문제에 대한 개선 방안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외려 경제적 제재까지 검토한다는건 처벌중심 감독이 그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경제계는 한 목소리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해 시행령 등을 통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로드맵 등 큰 틀의 방향성을 보완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법 개정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거다.

상의 관계자는 "내년 1월 말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에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데,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지금이라도 시행령 등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현장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