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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통' 터지고 '신작 가뭄'까지…"주 52시간, 우리 업계와 전혀 안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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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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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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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시간'에 갇힌 대한민국(2)

[편집자주] 대한민국 산업현장이 기술혁신과 디지털혁명 등으로 급변하고 있다. 또 일하는 방식과 노동 구조의 변화, 해외 인력 수급, 고령화에 따라 노동시장이 대변혁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로 정해진 근로시간제도는 여전히 과거 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기업들은 이 틀에선 새로운 산업환경에 대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근로시간제도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머니투데이가 실제 산업현장의 현실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대작출시 줄줄이 연기, 게임업계 "경직된 주 52시간제 개선해야"


올해 출시 예정이던 엔씨소프트의 대형 신작 TL의 트레일러 영상. 출시가 지연되며 내년 상반기 출시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엔씨소프트
올해 출시 예정이던 엔씨소프트의 대형 신작 TL의 트레일러 영상. 출시가 지연되며 내년 상반기 출시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사진=엔씨소프트
"올해 게임사들이 수년간 개발해온 대작 게임들을 연내 출시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줄줄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완성도를 높이기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개발인력 운용이 타이트하다는 반증입니다. 올들어 게임사 실적과 주가부진도 이와 무관치않습니다. 경직된 현행 주52시간제도 하에서는 이같은 출시지연이 상시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신작 가뭄에 시달리는 게임업계가 근로제 유연화를 호소하고 있다. 신작 출시를 앞두거나 이용자 민원에 적극 대응해야하는 비상 상황임에도 인력운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호소에는 고숙련 인력의 집중 근로가 필요할 때, 제조업처럼 무작정 고용을 늘린다고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는 현실적 배경도 있다.


■ 신작 일정 밀리면서 주가도 '바닥권'

5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대작 게임으로 기대를 모으던 엔씨소프트의 TL, 펄어비스 (48,500원 ▲800 +1.68%)의 붉은사막 등은 출시 일정이 연기되면서 각각 내년과 내후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마저도 각 업체에서는 시기를 확정짓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래 먹거리'를 담당할 신작 출시 지연에 각사 주가도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고 있다.

신작 출시 지연은 과거처럼 신작 개발 마무리 단계에 개발인력을 집중 투입하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활성화된 재택근무에 더해 주 52시간제가 정착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근무가 원천봉쇄된 탓이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과거 유연한 근로가 가능하던 시기엔 크런치모드를 겪고 나면 장기간의 휴가를 재량껏 누렸는데, 이젠 선택지가 없어진 셈"이라고 토로했다.

최근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과 게임업계 간담회에서도 주52시간제 개선요구가 이어졌다. 이들은 비단 신작 출시만이 아닌, 대규모 버그 발생 등 이용자 민원이 폭주하는 시기에도 유연한 근로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했다.


■ 초보 고용 늘린다고 버그 잡지 못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게임업계의 근로시간 완화 요구에는 비교적 고숙련 인력이 투입되는 특성이 반영됐다. 신작 출시에는 전사적 개발역량을 단기간에 모아야해서다. 과거 정부가 주 52시간제 도입 당시 대안으로 제시했던 '고용 증대'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개발 히스토리를 공유하고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버그에 대처할 베테랑들의 집중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용자 민원 발생 등의 돌발상황 대처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출시한 게임이나 서비스에서 대규모 장애가 발생할 때는 소수의 당직 인력만으로 해결하기가 힘들다. 게임은 아니지만, 최근 데이터센터 화재로 각종 서비스가 먹통이 됐던 카카오 (67,200원 ▲2,700 +4.19%)의 경우 전 부문 직원들이 긴급히 출근해 판교 카카오아지트에 밤새 불이 켜진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근로시간을 정해놓지 않는 재량근로제 역시 업무지시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IT 업종에 대입하기는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평상시 자유로운 업무 형태를 띄다가도 집중이 필요한 시기에는 명확한 방향성과 지시 아래 고숙련 인력들이 일사불란하게 집중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IT업계의 특징"이라며 "다른 업계와 근로제도를 다르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연장근로, 1주 12시간 대신 1달 52시간으로 바꿔야"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삽화=임종철 디자인기자
게임업계는 연장근로 정산 기준을 1주일 12시간이 아닌, 1달 52시간으로 바꾸는 방안을 바라고 있다. 1달 전체 근로시간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하게 비상상황에 대응할 여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출퇴근시간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는 선택근로제 단위기간은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길 원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근로시간 유연화가 자칫 1주일 안에 한 달의 모든 연장근로를 쏟아붓는 '주 90시간 근로'와 같은 극단적 형태로 나타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만 이는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등의 제도적 장치 덕분에 실제로 나타나기는 힘들 전망이다.

다만 노조가 없고, 이미 존재하는 근로기준법 등에 대한 위반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중소 사업장에서는 이 같은 근로제도 유연화 방안이 과거 악용되던 '크런치모드'를 다시 불러올 것이란 우려도 여전하다. 한 중소업체 관계자는 "근로제도를 개선하더라도 11시간 연속 휴식 등을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감시 및 처벌을 강화하는 투트랙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스템 먹통사태 빈발, 이유 있었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최근 개발된 대형 시스템들에서 초기 장애나 먹통사태가 빈발하고 있습니다.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주 52시간제 확대 여파 아니냐는 얘기가 많습니다.

한 대기업 IT서비스 기업 소속 개발자는 주 52시간제 도입이후 변화상을 이같이 언급했다. 2018년 7월 처음 공공기관과 대기업을 시작으로 주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됐고 2021년 1월부터는 중소기업에, 같은 해 7월부터는 5인 이상 사업장 전부에 각각 52시간제가 도입됐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가 지난해 7월 발간한 '소프트웨어 산업 근로환경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52시간제 시행 전에는 주 40시간 근로하는 이들의 비율이 29.9%에 불과했으나 시행 후에는 62.7%로 높아졌다. 52시간 이상 근무하는 이들의 비율도 시행 전 24.9%에서 7.9%로 줄었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반면 현장에서는 전반적인 개발역량 저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개발인력에 여유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IT 기업이 개발한 시스템에서 장애가 잦고 후속 대응에 어려움이 커진 것도 이와 무관치않다는 지적이다.

한 IT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52시간제 이행을 위해 기업이 개발자를 더 많이 고용하면 되지않느냐는 얘기는 ICT 업종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라며 "제조업은 사람을 얼마나 투입하느냐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ICT산업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가령 프로그래밍 에러가 발생한 경우 이전 개발자가 어떤 이유로 무슨 코드를 삽입했는지를 알지 못하면 새로 인원이 투입되더라도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먹통' 터지고 '신작 가뭄'까지…"주 52시간, 우리 업계와 전혀 안 맞아"
이에 당국도 수시로 제도 개선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업무량 폭증 등 이유로 특별연장근로를 할 수 있는 기간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렸다. 특정 주간이 52시간을 넘더라도 다른 주간의 근무시간을 줄여 주당 평균 근무시간을 52시간으로 맞추기만 하면 법 위반이 아닌 것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역시 미봉책으로 본다. 소프트웨어산업협회 관계자는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쓴다더라도 사전에 작업량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는데 작업량과 납기 등은 전적으로 발주처가 정하지 기업이 정할 여지가 없다"며 "그나마 탄력적 근로시간제를 적용단위가 종전 1개월에서 3개월로 늘었지만 이 정도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고객 요구에 따라야 하는 수주업종의 특성상 최소 6개월 단위, 가급적 1년 단위로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보안관제의 경우 365일 24시간 무중단 상태로 지속돼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현재 육상·수상·항공운송이나 보건업 등 52시간제 적용예외 업종으로 지정돼 있는데 여기에 보안관제업도 추가시켜줄 것을 업계에서 수차 요구했지만 반영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발주처 현장에 직접 나가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쪽은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한 IT 기업 대표는 "코로나19로 재택·원격 근무가 확산되고 근로시간도 각자 사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두면서 52시간제에 적응해가고 있기는 하다"면서도 "규정·보안상 이유로 개발자들이 발주 고객사로 직접 나가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SI업체 및 보안업체 등은 52시간제가 제대로 이행되는지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한 보안업계 관계자는 "52시간제 등 노동관계를 규율하는 법은 1800년대 영국의 공장법, 가까이는 1953년에 만들어진 국내 공장법을 기초로 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산업의 종류와 고용관계, 근무의 형태도 다양화됐지만 이런 산업특성이 얼마나 고려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근무시간 직원 선택권 높이고 보상과 연계해야"




김현정디자이너 /사진=김현정디자이너
김현정디자이너 /사진=김현정디자이너
전문가들은 특정 시기 일이 몰리는 IT·게임산업 특성상 주52시간제를 획일적으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진단한다. IT·게임업계는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 단위로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 중인데, 이를 분기·연 단위로 확대하고 부서나 팀, 근로자 개인이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화하고 이를 보상과 연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인 전성민 가천대 교수는 "개발자 입장에서도 소프트웨어 출시 등 고강도 집중근무가 필요할 땐 한번에 몰아서 근무하고 쉬는게 나을 수 있다"라며 "다만 해외에선 만성적인 '크런치 모드'를 막기 위해 연장근무에 대한 임금을 더해준다"고 말했다.

근로자가 주48시간 이상 일할지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영국의 '옵팅 아웃' 제도를 도입하되 포괄임금제 폐지 등으로 '공짜 야근'을 없애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미국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선 전일제 근로자가 주40시간을 초과 근무할 경우 시간당 임금의 1.5~2배를 지급한다. 국내 IT업계도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크래프톤 (186,700원 ▲4,700 +2.58%)·네오위즈 (43,350원 ▼50 -0.12%) 등 게임사와 중소 IT기업은 관련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의 60%가 포괄임금제를 시행 중이란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스톡옵션 등으로 회사의 성장이 보상으로 이어지는 직원의 경우 주52시간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같은 기업 내에서도 정해진 월급을 받는 직원들은 주52시간제 완화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스톡옵션·우리사주 등을 받아 주주의 일원인 직원들은 워라밸보다 회사 성장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 수 있다"라며 "회사 내에서도 근무제를 획일화하기보단 직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구성원이 젊고 이직이 자유로운 IT·게임업계 특성상 다른 산업보다 회사와 직원 간 관계가 수평적이어서 장시간 노동만 강제할 수 없다는 진단도 있다. 정진수 노무법인 노엘 대표노무사는 관련 토론회에서 "우수 인재 영입·유지를 위해선 직원들의 수요를 만족시켜줘야 해 회사가 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라며 "최소한의 규제만 남겨두고 회사와 근로자와 대등한 관계에서 근로조건을 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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