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공공재'인가 '약탈자'인가

이진우 국장

"약탈적 영업의 공공기관에 다니는 은행원…."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임원의 자조 섞인 농담처럼 요즘 금융권은 '공공재' 논란에 휩싸였다. 그런데 이 논란은 어떤 논리와 표현, 주장을 들이대도 속 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약탈적, 공공재, 은행원 모두 어우러지지 않는 관계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한쪽에선 지지하고 한쪽에선 비판한다. 대화를 끝내고 나도 개운치가 않다.

서로 모순적 관계기 때문이다. '공공재 성격이 있는 은행에 다니는, 이문을 좀 남기는 은행원' 정도로 적당히 타협하면 모를까. 한쪽에서 공격하려 들면 속수무책이다. 방어논리도 마찬가지다. 교통사고로 치면 쌍방과실인데 과실의 범주가 문제다. 논쟁이나 싸움을 하려 들면 한도 끝도 없다. 예를 들어 시중은행은 주주가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정부의 간섭과 도움을 받는다. 매개이자 담보는 고객과 시장이다.

정부 측 인사, 금융업계 종사자, 많은 전문가의 신랄한 지적과 항변, 고상한 분석, 조언이 쏟아지지만 정작 금융권 안팎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래서 이 싸움(?)이 도대체 언제, 어떻게 끝날 건데"로 모인다. 은행은 주식회사면서도 공공성을 지녔다, 민간은행의 독립적 영업을 흔들어서는 곤란하다는 식의 담론은 들을 때만 고개를 끄덕일 뿐 그저 지루하기만 하다.

과거 같으면 대출금리와 수수료를 좀 낮추고 사회공헌을 강화하면서 눈치를 살피다 다른 대형 이슈가 터지면 슬그머니 수그러들겠지 했을 텐데 지금 돌아가는 판은 다르다. 뽑은 칼을 벼리는 정부의 손길이 심상치 않다. 일각에선 대통령의 '공공재' 발언을 기점으로 정치적 이슈로 이미 번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적 이슈가 된다는 것은 지지와 반대가 얽혀 '타협'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과격한 발상이지만 은행이 망하면 내 돈은? 고객이 맡긴 돈은 안전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내 돈'도 모순이다. 세금은 헛되이 쓰이면 분노하고 아깝지만 어차피 내 지갑에서 이미 나간 돈이다. 연말정산으로 환급받지 않는 한 돌아오지 않는 돈이다. 그런데 금융사에 맡긴 돈은 내 지갑으로 찾아올 돈이다. 잘 굴려져서 안전하게 돌아와야 한다. 원금에 손실이라도 생기면 난리가 난다.


그렇다고 은행의 약탈적 본능을 거세하거나 전방위 압박으로 영업을 위축시키면 다른 측면에서 고객과 주주들이 상대적 손해를 본다. 특히 글로벌 시장의 투자자들이 '공공재'로 취급받는, 먹을 것 없는 코리아 금융회사를 거들떠보기나 할까. 그런데 이 역시 모르는 이 없는 뻔한 가정이자 분석이다. 결론은 또다시 진부할 수밖에 없다.

은행의 순기능을 살리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방향이 더 뚜렷해지는 선이 어딘지 찾아야 한다. 총선 어쩌고 하는 정치적 판단은 금물이다. '은행권 경영·영업관행 제도개선 태스크포스'에서 어떤 개선책을 내놓아도 결국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비판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갑과 을이 명확한 상황에서 '약탈자'였다가 '공공재'였다가, 이것도 역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