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없다" 빅4도 손사래…'응급실 끝판왕' 운영할 곳 없나요

(서울=뉴스1) =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2023년 제1차 중앙응급의료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권역응급의료센터 추가 지정 추진계획(안)을 심의·의결했다. 앞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적정 개소 수 대비 부족한 응급의료 권역에 센터를 추가 지정한다. 센터는 응급의료법에 따른 최상위 응급의료기관으로 중증 응급환자 진료, 재난 대비·대응을 위한 거점병원 역할 및 응급의료종사자 교육·훈련 등을 한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3.3.2/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람이 생사를 가르는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가장 빨리 이송돼야 하는 곳이 응급실이다. 응급실이 갖춰야 할 시설·인력·장비를 제대로 갖춰 '응급실의 끝판왕', '최상급 응급실' 등으로 불리는 곳이 '권역응급의료센터'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26조 제1항에 근거해 상급종합병원 또는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가운데 신청한 곳 중 자격 조건에 부합할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해 최종 결정된다.

여기서 권역(圈域)이란, 어떤 특정한 범위 안의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서울 지도에서 임의로 동그라미를 그렸을 때 마포구·서대문구가 포함된다면 이 두 구(區)는 같은 권역으로 친다. 그런데 실제로 현재 마포구·서대문구가 포함된 '서울 서부' 권역에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한 곳도 없다. 이른바 '빅5'에 들어가는 세브란스병원(서대문구)이 있는데도 말이다. 또 '국립'의 부산대병원이 있는 부산광역시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부족하다. 왜일까.


16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2025년 12월 31일까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야 할 권역 가운데 5개 권역에서 미달 사태가 벌어졌다. 그중 올해 새롭게 추가되는 권역(경기 서북, 경기 서남, 충남 천안)을 제외한다면 기존에 운영돼온 권역 가운데 두 군데가 탈락한 것이다. 그 두 권역은 ▶서울 서북(종로구·중구·용산구·은평구·마포구·서대문구) ▶부산(부산광역시, 경남 김해시·양산시·밀양시·거제시)이다. 서울 서북 권역은 딱 1군데가 필요하지만 기존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온 서울대병원이 재지정을 받지 못해 구멍이 났고, 부산은 세 군데가 필요하지만 두 군데만 지정된 상황이다.

이에 복지부는 권역응급의료센터가 적정 개소 수보다 부족하게 지정된 지역을 대상으로 추가로 지정하기 위해 16일 의료기관 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권역응급의료센터 모시기'에 나섰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되려면 해당 권역에 위치한 병원 가운데 상급종합병원이거나, 병상을 300개 넘게 가진 종합병원이어야 한다. 하지만 복지부 김은영 응급의료과장은 "신청 당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법정 지정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내년 4월 30일까지 충족시킬 수 있다면 신청할 수 있다"며 병원의 많은 신청을 독려했다. 신청한 병원 가운데 기준에 합격하는 곳을 가려내야 하기에, 현시점에선 자격이 안 되더라도 모수(母數)를 늘려 미달 사태를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서울대 제외한 빅4 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관심 無하지만 기존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온 서울대병원은 제외하더라도 세브란스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삼성서울병원 등 빅5 병원으로 꼽히는 이들 병원은 모두 권역응급의료센터보다 한 단계 아래 등급인 '지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기관은 중앙응급의료센터(1개소)를 컨트롤타워로 두고 그 아래에 권역응급의료센터(36개소), 그 아래에 지역응급의료센터(117개소), 또 그 아래엔 지역응급의료기관(258개소)의 순으로 체계를 이룬다. 지역응급으료센터는 권역응급의료센터보다 합격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병원 입장에선 진입 장벽이 낮다.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에 구멍이 난 서울 서부 권역의 경우 빅5 병원만 두 곳이 포진해 있는데,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탈락한 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세브란스병원(서울 서대문구 소재)이 위치해 있다.


빅5 병원 관계자 A씨는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은 '국립'이라서 예전부터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해왔지만, 환자들이 전국에서 워낙 많이 몰리면서 회전율이 빨라야 하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그동안 운영해온 게 신기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A씨는 "그런데도 이번에 서울대병원이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탈락한 건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들면서 응급실에서 1차 진료 후 병실·수술실 등 2차 진료를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지체된 게 원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빅5 가운데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빅4 병원은 어떨까. 빅4 병원 관계자 B씨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구축하려면 시설·장비·인력 측면에서 규제가 너무 까다로워 병원 측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응급실 혼잡도가 최고 수준인 상황에서 굳이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어렵게 따낼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위치한 강동경희대병원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정문. /사진=박정렬 기자

이처럼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이미 응급실이 포화상태인 빅5보다는 환자 밀집도가 비교적 떨어지는 빅5 이외의 상급종합병원에서 되레 몸값을 쳐주는 분위기다.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는 강동경희대병원은 동 센터에 지정된 이후 정부로부터 연간 2억원가량씩을 지원받는다. 박성혁(응급의학과) 강동경희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우리 센터에만 의료진이 100명 가량 있어 인건비로는 충분한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료수가가 일반 응급실보다 가산돼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하면 병원 수익 측면에서 도움은 된다"고 설명했다. 박 센터장에 따르면 권역응급의료센터에 선정되면 응급의료 관리료, 전문의 진찰료 등이 더 붙고 진료 행위에 10~20%씩 수가가 더 붙는다. 똑같은 응급질환으로 병원을 찾아와도 권역응급의료센터에서 치료하면 병원은 환자·정부로부터 비용을 더 받는다.

이 같은 수익 향상에도 빅5 병원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받고 싶어 하는 수요 자체가 없다. 상급종합병원 관계자 C씨는 "환자에게 병원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하는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되면 브랜드 파워가 높아질 수 있지만, 이미 환자가 넘쳐나 수익이 높고 브랜드 파워가 강한 빅5의 경우 굳이 돈을 많이 들여가면서까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갖추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응급의학과 전문의)이 없는 것도 문제다. 권역응급의료센터가 되려면 응급실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5명 이상, 소아응급환자 전담전문의를 1명 이상 둬야 하는데 요즘 워라밸을 중시하는 MZ 세대 전공의 사이에서 응급의학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이 분야 전문의를 찾는 것부터가 비현실적이란 지적이다. 게다가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응급실 전담 전문의는 전년도 응급실 내원 환자 수가 3만 명을 초과하는 경우 1명을 확보하고, 1만 명마다 1명을 추가 확보해야 하는 의무도 있다. 반면 문턱이 낮은 지역응급의료센터의 경우 응급실에 전담 전문의 2명 이상을 포함한 전담의가 4명만 있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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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5 병원이 권역응급의료센터를 기피하려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한응급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한 가천대 길병원 양혁준(응급의학과)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응급실은 생사를 가르는 국민의 생명을 최일선에서 다뤄야 해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최상급 응급치료가 가능한 시설·장비·인력 등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에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뿐 아니라 일반 국민이 응급상황에 처했을 때 24시간 최적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응급치료의 사각지대를 없애면서 병원 응급실이 궁극적으로 갖춰야 할 질적 수준의 기준이 권역응급의료센터라는 게 그의 견해다.

빅5의 환자 쏠림 현상으로 응급실에서 2차 진료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병목 현상이 벌어지는 것도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그는 지적했다. 양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의료 수가가 저렴한 편이라 기왕이면 빅5 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빅5에 환자가 몰려들면서 암 환자가 수술받기 위해 수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 초응급까진 아니어도 수술 일정을 앞당기기 위해 응급실로 무작정 들어가는 경우도 적잖다"고 덧붙였다. 빅5에 쏠리는 현상의 출발점이 낮은 의료 수가라는 지적도 그는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