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 없던 약물로 인한 독성간염, 국내 연구진이 치료 가능성 찾아

특별한 치료법이 없던 독성 간염의 발병 원인과 효과적인 치료 방안을 국내 연구진이 제시했다.

20일 은평성모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소화기내과 양현(제1저자)·배시현 교수(교신저자)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교신저자) 연구팀은 2017~2021년 약물 복용에 따른 간수치 상승과 간 기능 저하를 이유로 조직검사를 받은 5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간을 자극하는 면역세포의 발현 양상을 연구해 결과를 국제학술지 'Frontiers in Immunology'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 독성 간염은 단순히 독성 물질 때문이 아닌 이를 대사하는 과정에 특정 면역세포가 반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독성 간염의 주요 연관 인자로 밝혀진 면역세포는 CD8 양성 T세포(세포독성 T세포)와 단핵 식세포로 정상인과 달리 독성 간염 환자는 이들 면역세포의 간 침윤이 더 심했고, 침윤 정도와 간 손상 수준도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성 간염 환자의 간에서 관찰되는 T세포 및 단핵 식세포의 다양한 침윤 모습. /사진=은평성모병원

연구팀은 "최신 유세포 분석 기법을 이용한 정밀 분석 결과 활성화 단계에 있는 CD8 양성 T세포와 단핵 식세포가 간 손상의 정도와 더욱 밀접하게 연관된 사실을 파악했다"라며 "두 세포에서 분비되는 사이토카인의 양도 간 손상 정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새롭게 밝혀낸 독성 간염의 면역기전을 바탕으로 면역억제제로 쓰는 스테로이드가 독성 간염의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제시했다. 전체 환자 중 독성 간염이 완치된 50명(94.3%) 가운데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환자는 37명(69.8%)으로, 최소 7일에서 최장 107일까지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으며 투여 중단 후 재발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성 간염은 '약인성 간 손상'이라 불리며 항암제나 진통제 등 약물, 한약, 건강기능식품 등을 무분별하게 복용할 때 잘 발생한다. 약물 등을 해독하는 과정에서 독성 물질이 발생해 간을 망가트리는 병이다. 식욕부진, 오심과 구토, 피로감 등 전신 증상이 나타나고 관절통, 피부 발진이 동반되기도 한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복수가 차고 간성뇌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은평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양현, 배시현 교수와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성필수 교수. /사진=은평성모병원

앞선 연구에서 독성 간염으로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는 매년 인구 10만 명당 12명에 달했다. 최근에는 빠른 고령화와 함께 건강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커지면서 진통제, 건강기능식품 등의 장기 복용으로 독성 간염의 발병 위험도 커지는 실정이다.

양현 교수는 "약물 복용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상황에서 독성 간염 환자의 급격한 증가가 우려된다"면서 "이번 연구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던 독성 간염에서 스테로이드 치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성필수 교수는 "독성 간염 분야에서 면역학적 기전을 밝혀낸 것은 환자 치료는 물론 독성 간염 환자의 유병률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