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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다 무서운 연기·유독가스 제거하는 신개념 스프링클러

머니투데이
  • 조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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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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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키플랫폼 : 진격의 K-브랜드 100] 150년 스프링클러 역사 혁신할 '라보머' 개발, 미국시장 도전하는 김정규 에스피앤이 대표

[편집자주] 브랜드가 가치 높은 이유는 기대한 것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신뢰 때문이다. 특히 선진시장일수록 브랜드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선진시장 소비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최고의 브랜드가 되겠다는 한국의 강소기업들을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키플랫폼(K.E.Y. PLATFORM)이 만나봤다. 키플랫폼은 앞으로 100개 기업의 글로벌 브랜딩 스토리를 계속해서 전할 계획이다.
김정규 에스피앤이 대표
김정규 에스피앤이 대표
192명이 사망한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올해로 20년이 됐다. 방화범 때문에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됐고, 미숙한 대처가 참사 규모를 키웠다. 당시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유독가스에 의해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에도 제천 스포츠센터, 밀양 병원 등에서 대형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 이 사고들 역시 연기와 유독가스로 인해 인명 피해가 컸다.

우리나라는 매년 약 4만건의 화재가 발생한다. 30층 이상 초고층건물은 늘어나고 있지만 화재 대책은 스프링클러에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언론 등을 통해 '사실상 대피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보다 연기와 유독가스가 더 무섭다. 화재 사고 사망 원인의 70%에 달한다. 연기는 시야 확보를 방해해 대피를 어렵게 하고, 유독가스를 마시면 15초 안에 의식을 잃는다. 건축물 내 화재 시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스프링클러이지만 현재의 장치들은 연기·유독가스를 제거하지 못한다. 스프링클러는 개발된지 150년이 됐지만 여전히 물만 뿌려주는 냉각소화 방식이다.

화재 발생 현장에서 초기부터 연기·유독가스를 신속히 제거할 수 있다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한국의 한 기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스프링클러를 곧 선보인다. 이 혁명적인 스프링클러는 이름하여 'LAVOMER'(라보머). 거꾸로 읽으면 'REMOVAL', '제거'라는 뜻이다. 이 회사 이름 SP&E(에스피앤이)도 'Save People and Earth', 사람과 지구를 구하겠다는 의미다.

라보머 스프링클러 시제품의 헤드 안으로 연기가 흡입되는 시연 과정의 한 장면 /사진제공=에스피앤이
라보머 스프링클러 시제품의 헤드 안으로 연기가 흡입되는 시연 과정의 한 장면 /사진제공=에스피앤이


연기·유독가스 제거,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는 스프링클러


경기도 평택시 에스피앤이 본사에서 만난 김정규 대표는 화재 사고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겠다는 간절한 의지를 담아 사명을 직접 지었다고 했다. 사내에 있는 실험장에서 상세한 시연을 보면서 김 대표로부터 이 스프링클러의 작동 원리를 들었다.

"유체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압력은 감소한다는 '베르누이 원리'(Bernoulli's Principle)와 유체가 좁은 면적을 지날 때 압력이 줄어드는 '벤투리 효과'(Venturi Effect)를 응용했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고속으로 차를 운전하다 창문을 살짝 열면 차내 공기가 순식간에 바깥으로 빨려나가는 원리와 같습니다."

화재시 스프링클러의 소방수가 빠르게 쏟아지면 스프링클러 헤드 원통 안 내부 압력은 낮아지며, 뜨겁고 팽창돼 높은 압력 상태에 있던 상층부 연기와 유독가스가 자동으로 빨려들어가 물과 혼합돼 액체 미립자계 유독가스는 물에 용해(dissolution)·희석(dilution)돼 제거된다. 동시에 고체 미립자계 그을음, 검댕, 초미세먼지 등은 물리흡착(physical adsorption)시켜 제거하며, 그 물을 분사하는 원리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 스프링클러 라보머가 작동한다면 유독가스가 제거돼 질식사를 막을 수 있다. 연기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어느 정도만 사라져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피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조금만 눈앞이 보여도 더듬어서라도 출구를 찾아 나갈 수 있다. 소방관과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 시야와 안전을 어느 정도 확보해 줌으로써 현장 진입·구조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뜨겁고 팽창돼 높은 압력 상태에 있는 상층부 연기와 유독가스, 미연소 가연성가스를 제거한다는 것의 기술적 의미는 상층부의 높아진 복사열과 압력을 낮추는 것으로, 결국 고온의 미연소 가연성가스의 이동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화재 확산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세계 소방기술의 난제인 화재 확산현상(Flash Over) 및 역류성 폭발(Back Draft)을 해결해 화재 현장 진입 및 구조 시간 단축, 소방관 및 구조대원 보호 등을 가능케 한다.

라보머는 기존 스프링클러 설치 방식과 다르지 않으며 기존 배관을 그대로 사용하고 헤드만 교체하면 돼 편리하게 설치할 수 있다. 스프링클러는 급수배관과 헤드가 체결되는 방식이 ISO(국제표준화기구) 규격이다. 스프링클러 헤드 교환만으로도 사용 가능해 기존 모든 스프링클러에 라보머가 대체 가능하다.

기존 '제연'(制煙)의 개념은 '제어'(制御·Control), 대기 중 배출(Ventilation)의 뜻이지만 라보머의 '제연'(除煙)은 '제거'(除去·Removal), 연기를 제거한다는 뜻이다.

"제연 기능을 가진 스프링클러는 전세계적으로 라보머가 유일합니다. 아파트나 주상복합은 물론이고 학교, 병원, 극장 등 다중이용시설, 물류센터, 공장을 비롯해 터널과 지하도에서까지 쓰일 수 있습니다. 종류별로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상용화할 예정입니다. 보다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ISO 국제 표준 인증 제품으로 만들 것입니다. 소방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 시장인 미국에서도 내년부터 라보머 출시 사업을 시작할 것입니다."

불보다 무서운 연기·유독가스 제거하는 신개념 스프링클러



글로벌 스탠더드 미국 시장 정면 공략


김 대표는 한국과 동시에 미국까지 거점시장으로 정했다. 2027년 기준 시장점유율 한국 27%, 미국 7%에 매출액 약 4000억원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은 화재 사고 빈도가 높은 단독주택이 많은 반면 스프링클러 보급율은 낮다. 경쟁력 있는 기업에 시장 기회가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소방산업 기술력은 미국 기업들이 세계 최고다. UL, FM, ASTM, ANSI 등의 인증제가 시장과 기술을 뒷받침하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 시장이다. 미국에서 인정받으면 전세계에서 통한다.

"지금까지 없었던 제품으로 150년 스프링클러 역사를 바꾸는 대변혁이기에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기반을 다지며 새로운 시장을 열고 싶습니다. 세계가 인정해 줄 기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화재 방재 엔지니어링 분야의 글로벌 최고 명문 우스터폴리테크닉대학(WPI)과 MOU(업무협약)를 체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WPI와의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력을 증명할 수 있게 됐고, 나아가 시장 확대의 계기도 마련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글로벌 소방산업에서 WPI와의 MOU는 하늘의 별 따기이지만 김 대표는 WPI에 협약 제안 이메일을 보낸지 불과 이틀 만에 '환영한다'(Welcome)는 회신을 받았다. 그들은 공동 연구개발부터 인증 및 제품개발까지 돕겠다고 했다. 김 대표는 오직 기술만을 가지고 있던 스타트업 회사로서 세계 최고의 소방대학을 두드리기까지 무척 고민하고 망설였는데 뜻밖에도 바로 환대를 받았다. 그만큼 라보머의 원천기술이 탁월하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라보머는 이미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2021년 시제품 수준의 라보머에 대한 NICE 기술평가에서 T-3 등급을 받았다. 기술력 수준 상위 20%,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 코스닥 상장 기업 또는 우수 중소기업 수준의 기술력 보유 등으로 평가되는 등급이다. 올해 2월엔 혁신성장 유형으로 벤처기업확인서를 받았다. 무엇보다 직접 화재를 진압하는 소방 공무원들이 라보머를 인정한다. 얼마 전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들 앞에서 라보머를 시연했는데 당시 한 공무원이 눈물을 글썽이며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그토록 찾던 제품을 여기서 보게 돼 영광입니다. 어서 빨리 상용화돼 현장에 적용됐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도 한 아파트 화재 사고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복도에 모녀가 쓰러져 있었는데 어머니는 사망하셨고 딸은 어머니 밑에 있어서 생명을 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제품이 작동했더라면 두 분 모두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먹먹합니다."

김 대표는 한국뿐 아니라 지구 모든 나라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글로벌 차원에서 기술력을 입증받기 위해 과학기술계 최고 권위의 사이언스지 논문 게재를 비롯해 SCI(Science Citation Index·과학기술논문색인)급 논문 30~40편을 지속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그리고 미국 다음에는 일본에 진출할 계획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형 신도시 사업인 '네옴시티'에도 도전해 볼 생각이다.

김 대표는 압력 차를 이용해 연기와 가스를 제거하는 라보머의 원천기술을 가지고 앞으로 다양한 소방 제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건물 내 연기·유독가스를 제거하는 시스템인 제연댐퍼를 개선할 수 있고, 소방호스의 총구 같은 맨 앞부분 관창노즐도 혁신적으로 만들 수 있다. 라보머처럼 관창노즐에 흡입구를 만들면 소방수가 분사될 때 연기·유독가스는 물론 열기까지 빨아들일 수 있다. 그러면 소방관들의 부상을 예방할 수 있고, 소방관들이 화재가 난 지점에 더 빠르게 다가가 진압을 시도할 수 있다.

에스피앤이의 제연 설비 관련 제품의 연기 흡입 모습 /사진제공=에스피앤이
에스피앤이의 제연 설비 관련 제품의 연기 흡입 모습 /사진제공=에스피앤이


세계가 주목할 'K-소방·안전' 브랜드 꿈꾼다


김 대표는 이렇게 세상을 바꿀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기까지 외롭고 험난한 길을 걸어 왔다.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제품인 만큼 안전 기준이나 형식승인 시험 기준을 김 대표 스스로 만들어 공인 기관에 제시해야 했다. 대규모 실험을 반복해야 해 큰 비용을 들여 회사를 더 넓은 부지로 옮기기도 했다. 소방산업 선진국에선 국가 차원으로 기술 보호, 인증제도 운용, 융합형 기술 개발, 해외 수출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지원 정책이나 예산, 투자가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라보머는 세상에 처음 선보이는 혁신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것들을 묵묵히 수용하면서 걸어가려 합니다. 저희가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된다면 우리나라 소방산업을 선순환 구조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방산업은 사회적 관련이 깊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산업인 만큼 정부도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김 대표는 제약회사를 첫 직장으로 다녔고,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에서도 일했다. 2014년엔 의료장비 총판 회사를 창업하는 등 30년 동안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해왔다. 이제는 소방산업으로 파고든 김 대표는 에스피앤이와 라보머가 'K-소방·안전'을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글로벌 무대에 우뚝 서고 싶다고 했다. 나아가 제조 기업들과 연구기관, 인재 교육훈련기관, 인증기관, 정부 관계부처를 비롯해 대규모 실험장까지 갖춘 '소방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것이 김 대표의 최종 목표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화재 감식 전문가를 만나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고 했다. "당신네 제품이 화재 사고 현장에서 탈출 시간을 단 10초만 더 벌어줄 수 있다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 10초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10초를 에스피앤이와 라보머가 만들어 내겠다"는 김 대표의 다짐과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사람을 살리는 이 기술이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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