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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나이스한 정성일, '더 글로리'로 둔 강수

머니투데이
  • 한수진 기자 ize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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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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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연기가 좋아 무작정 무대에 올랐던 이십대 청년은 어느 새 마흔 중반이 됐다. 주름은 하나 둘 늘어갔지만 알아봐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무명배우의 삶은 녹록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연기를 포기할 순 없었다.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살아있음"을 느꼈고, 부침을 겪을 때마다 가족이 원동력이 되어 꿈을 지켜줬다. 그렇게 귀중한 마음으로 지켜온 배우의 길. 연기를 시작하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에게 마침내 유명배우의 길이 펼쳐졌다. 정성일. 이제 모두가 그의 이름 석자를 기억하며 환호하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작가 김은숙, 연출 안길호)로 찬란한 첫 번째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정성일은 자신과 인터뷰하기 위해 한달음에 달려온 취재진을 보며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말끔한 얼굴엔 긴장과 설렘이 반씩 묻어있었다. 모든 대답들은 진중함을 더한 사려가 묻어나는, 대화 속에서 더 큰 매력을 피어냈다.


정성일은 '더 글로리' 흥행을 확신했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은 예상하지 못했다. 중립적인 인물이기에 대중 반응에 확신이 없었고, 그저 잘 될 작품에 함께하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여겼다.


"'더 글로리' 대본을 처음 봤을 때 큰 확신이 있었어요. 대본만 읽었을 때도 이 정도로 재밌는데 영상화되면 정말 정말 재밌겠구나라는 기대감이 있었죠. 다음 대본이 기다려졌어요. 개인적으로 제 역할이 인기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요. 극이 재밌다보니 드라마 자체에 몰입해 있었고, 극이 잘 되더라도 제 캐릭터는 큰 관심을 받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들이 유치원생인데 수영 선생님이 사인 요청을 해주셨다는 거에 뿌듯하더라고요."


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정성일이 '더 글로리'에서 연기한 하도영은 인생에서도 대국에서도 평생 백보다 유리한 흑만 잡고 살아왔던 굴지의 건설사 대표다. 겉으로는 신사적이지만 평생을 상류층으로 살아온 탓에 우월감이 있는 인물이다. 동은(송혜교)의 복수 대상자인 연진(임지연)의 남편으로, 동은의 의도적인 접근으로 인해 복수의 소용돌이에 함께 휘말린다. 김은숙 작가는 하도영을 두고 "나이스한 X새끼"라고 설명하기도 했는데, 대립하는 두 단어처럼 복잡한 정서를 지닌 인물이다.


"도영을 연기하면서 제일 집중했던 부분은 중립성이었어요. 중립성으로 인해 극에 긴장감을 줘야했던 인물이죠. 그렇기 때문에 밸런스 맞추는데 신경을 썼어요. 작가님이 써주신 '나이스한 X새끼'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에 집중했죠. '나이스한 X새끼'라는 말은 양면성 같아요. 같은 상황 속에서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 수도,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 부분이요. 도영이 사람을 대할 때는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하는 건 없거든요. 자라면서 배어있던 태도들이 상대에게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는, 그게 나쁘게 보이기도 좋게 보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바라보는 측면에 따라 다른 인물 같아요. 진짜 확실한 X새끼의 측면은 사람을 죽인 거죠..(웃음)"


도영은 언제부터인가 일상에 스며든 동은, 그리고 아내 연진과 미묘한 이중 로맨스도 선보인다. 연진에게는 "적게 입어서 마음에 들었다"고 했던 반면, 동은에게는 적게 입어서 "춥지 않냐"고 묻던 남자. 정성일은 두 여자를 향한 도영의 마음이 "사랑의 감정"이었다고 말하면서도 "잘못됐다"며 웃어보였다.


"도영이 연진을 택했던 이유는 적게 입었는데 가벼워 보이지 않아서였죠. 늘 똑같은 루틴으로 살아왔던 평범한 삶에서 주어진 것들 중에서 그나마 변주를 줄 수 있는 여자라는 이유에서 끌린 거죠. 동은의 경우는 진짜 알고 싶었던 것 같아요. 하도영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던지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을 늘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동은은 그 답변을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상대잖아요. 그래서 흔들렸고 궁금했던 것 같아요. 연진이도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고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았고 동은은 호기심과 설렘이 교차한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잘못됐네요."


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정성일, 사진제공=넷플릭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도영의 행동은 잘못됐지만 시청자는 크게 환호했다. 이는 도영을 근사하게 형상화한 정성일의 그윽한 분위기와 진정성 깃든 연기력, 치밀했던 매 장면에서의 사력 덕택이었다. 복잡한 인물의 감정을 탁월한 해석력으로 몰입도 있게 소화하며 '더 글로리'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키 플레이어로 활약했다. 특히 동은의 집을 방문하며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는 장면은 명장면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신에 대해 돌아온 정성일의 대답은 한없이 겸손하면서도 유쾌함이 넘쳤다.


"사실 제가 나온 장면은 부끄러워서 잘 못봐요. 신발 벗는 장면은 제가 아니라 신발이 연기를 너무 잘했죠. 사실 그 구두는 장모님이 선물해 주신 거예요. 그 신발만 스타일리스트 분이 준비해주신 걸 안 썼어요. 저 결혼할 때 장모님이 사주신 거거든요. 그래서 저한테도 뜻깊은 장면이었어요. 그런데 장모님은 모르세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만 의미있는 장면이었죠."


장모님이 사준 구두를 신고 카메라 앞에 설 정도로 가족애가 깊은 정성일은 자신의 연기 원동력 역시 "가족"이라고 말했다. 돈과 명예보다 소중한 가족이라는 존재로 인해 오늘날까지 버텨왔고 힘내서 살아왔다. '더 글로리'에서 딸 예솔을 위한 희생과 사랑이 진실돼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은 아니었을까. 삶의 가치를 따뜻한 마음에 둔 정성일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앞으로를 더욱 응원하게 됐다.


"저의 원동력은 가족이죠. 첫 번째도 가족, 두 번째도 무조건 가족이에요. 돈 명예 다 필요 없고 무조건 가족이에요. 지금도 가족들이 뿌듯해 하고 행복해하는 것에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가족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것 같아요. 인생을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앞으로 배우로서는 그냥 '연기 진짜 잘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 하나예요. 배우한테 그 말만한 극찬은 없는 것 같아요. 외형적인 칭찬도 중요하고 기분 좋죠. 그런데 잘생겼다는 말보다 '연기 미쳤다'는 한마디가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연기 잘하는 배우로 기억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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