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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는 누구의 것인가? [오동희의 思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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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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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를 창업한 연암 구인회 회장의 생가. 연암은 1907년 이곳 승산마을에서 구재서 옹의 장남으로 태어나 옆집에 사는 허을수 여사와 결혼해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친 후 1931년 진주에서 포목상을 하다가 사돈가인 만석꾼 허만정 옹의 자금지원과 그의 아들인 허준구씨(GS 창업자)를 데리고 1947년 부산에서 락희화학을 설립 LG와 GS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생가 안에는 모춘당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정자 기둥에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10계 덕목이 새겨져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LG를 창업한 연암 구인회 회장의 생가. 연암은 1907년 이곳 승산마을에서 구재서 옹의 장남으로 태어나 옆집에 사는 허을수 여사와 결혼해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서울로 유학을 떠나 학업을 마친 후 1931년 진주에서 포목상을 하다가 사돈가인 만석꾼 허만정 옹의 자금지원과 그의 아들인 허준구씨(GS 창업자)를 데리고 1947년 부산에서 락희화학을 설립 LG와 GS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 생가 안에는 모춘당이라는 정자가 있고 그 정자 기둥에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10계 덕목이 새겨져 있다./사진=오동희 선임기자
'형제간과 종족 사이에는 서로 좋아할 뿐 따지지 마라'

LG 창업자인 고 구인회 회장의 경남 지수 생가의 모춘당이라는 정자 기둥에 새겨진 글귀다. 구 창업주의 조부인 만회 구연호공(구한말 홍문관 대재학)이 후손들에게 남긴 10계 덕목 중 한 대목이다. 인화의 LG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구다.

75년간 이어져왔던 인화의 문구에 금이 가는 소장이 접수된 게 지난 2월 28일이다. LG 4대 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에게 고 구본무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들이 상속재산효력회복소송을 제기한 시기로부터 딱 한달이 지났다. 그 한달 동안 집안 어른들의 중재 과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이번 소송에 큰 변화는 없는 듯하다. 그러는 사이 지난 27일 LG 창립 75주년도 조용히 지나갔다. 크게 떠들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상속재산효력회복 소송은 언뜻 보면 유교적 기업의 가풍과 그 집안 여성들의 권리 회복 투쟁처럼 보인다. 2005년 대법원의 문중재산 분할 판결 이후 문중 재산을 두고 다투던 여성들의 권리가 상당 부분 회복됐다. 딸이라서 문중재산을 아들들과 차별적으로 분배받아서는 안된다는 판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LG 그룹의 상속문제는 이런 부분과는 결이 좀 다르다. 딸 뿐만 아니라 장자가 아닌 아들들에게서도 권리의 상당 부분 양도받아 장자에게 승계해 온 전통이 그것이다. 옛날 럭키금성(현 LG의 전신) 홍보실에 가면 아래와 같은 주문 같은 게 있었다.

'인철정태평두/경승학두일극/무능준식'이라는 문구다. 조선왕조의 '태정태세문단세'와 같은 순서를 매기는 운율의 이 주문은 다름 아닌 LG 집안 형제들의 성(姓)과 돌림자를 뺀 이름자다.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의 형제인 철회, 정회, 태회, 평회, 두회와 구 창업자의 아들인 자경, 자승, 자학, 자두, 자일, 자극을 줄인 말이다. 3대로 내려가선 구자경 회장의 아들인 본무, 본능, 본준, 본식의 이름까지 홍보실에선 외우곤 했다. 구본무 회장을 칭할 때는 '1-1-1'로 불렀다. 장손이라는 얘기다. 형제들이 많다보니 헷갈리기도 하거니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는 속담처럼 분란의 소지가 충분했다.
(서울=뉴스1) =구자경 LG 명예회장 75세 생일 가족사진. 구자경 명예회장 부부를 중심으로 앞줄과 좌우는 손자녀들, 뒷줄은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구 명예회장의 4남 2녀 자녀의 부부들과 일부 손녀가 포함돼 있다. (LG 제공)2019.12.14/뉴스1
(서울=뉴스1) =구자경 LG 명예회장 75세 생일 가족사진. 구자경 명예회장 부부를 중심으로 앞줄과 좌우는 손자녀들, 뒷줄은 구본무 회장을 비롯한 구 명예회장의 4남 2녀 자녀의 부부들과 일부 손녀가 포함돼 있다. (LG 제공)2019.12.14/뉴스1

게다가 50년간 함께 사업을 한 허씨 가문(현 GS 그룹)까지 경우의 수를 합치면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았다. 이를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룰이 필요했고, 집단 경영체제 속에서도 구심점이 필요해 '장자승계'의 룰을 정한 것이다. 그 장자에게는 문중 곳간의 열쇠와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선산을 맡겼다. 그 곳간 열쇠이자 선산의 역할을 하는 게 기업으로 치면 경영권 지분이다.

이 경영권 지분은 사적으로 팔 수도 없고,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는 그냥 지키는 것이다. LG가문에선 (주)LG의 주식이 그 역할을 한다.

구본무 회장 타계 후 분할 재산 중 경영권 지분을 제외한 구본무 회장의 미술품 등 현금성 자산 등은 부인과 딸들에게 상당부분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 LG에선 경영권을 포함한 주식 등 경영재산과 부동산·예금·미술품 등 개인재산으로 구분한 상속재산을 그동안 관리해 왔다. 이 중 개인재산과 주식을 포함해 세모녀에게 골고루 상속된 부분이 약 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구본무 회장 타계 후 LG 주식 11.3%(1945만 8169주) 가운데 8.8%(1512만 2169주)는 장남 구광모 회장에게 상속됐다. 장녀 연경 씨와 차녀 연수 씨에게는 LG 주식이 각각 2.0%(346만 4000주), 0.5%(87만 2000주)가 상속했고, 부인 김영식 씨의 몫은 이미 보유하고 있는 (주)LG 지분 4.2% 외엔 없다. 이런 분재에 대해 다시 상속권리를 회복시켜달라는 게 이번 소송의 요지다.

사실 구본무 회장이 갖고 있던 경영권 지분의 성격을 보면 앞서 언급했던 '인철정태평두'의 할아버지대 형제자매들과 '경승학두일극' 등 아버지대 형제자매들의 몫이 두루 묶여 있는 재산이다. 앞선 작은 아버지들이나 작은 할아버지들이 자신들의 몫 중 일부를 장자에게 맡기고 기업을 이끌라고 한 몫들이 숨어 있다.
1999년 8월 구본무 회장(오른쪽)과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
1999년 8월 구본무 회장(오른쪽)과 구자경 명예회장(왼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

1969년 12월 31일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이 타계한 후 열흘만인 1970년 1월 9일 장남인 구자경 럭키금성 부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그보다 나이가 많은 숙부인 구철회 럭키화학 사장, 구정회 금성사 사장은 장조카를 위해 경영일선에서 모두 물러났다. 이미 정치권에 입문한 구태회씨 외에 조카보다 어린 구평회 호남정유 부사장과 구두회 금성사 전무만이 현업에 남았다. 유류상속분이 아닌 일부 재산을 떼어 이후 분가했다.

1995년 구본무 3대 회장이 취임할 때는 그나마 남아 있던 구평회, 구두회 회장은 물론 허씨 가문의 허준구 등 원로 그룹이 모두 고문이나 창업고문으로 물러나 신임 회장이 확실한 경영에 나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다. 이후 '태평두' 3형제 또한 유류상속분이 아닌 적절한 선에서 LS로 분가했다.

4대 구광모 회장 때는 LG (88,400원 ▲1,600 +1.84%)에서 수십년을 몸담았던 구본준 부회장이 장조카를 위해 LX 그룹으로 계열분리해 떠났다. 그가 선대 구자경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형인 구본무 회장 만큼은 아니다.

LG의 이같은 기업문화를 구시대적 유교적 문화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분제도나 왕이 없는 우리나라가 왕과 귀족이 있는 영국 등 왕족 국가를 일방적으로 비난하지 않듯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역사와 전통이 숨어 있다. 이번 상속재산 문제는 한국 기업사에서 상속제도와도 닿아 있다.

우리의 상속제도는 대주주의 경우 최대 60%의 상속세를 국가에 헌납한다. 처음 회사 지분 100%을 갖고 있다면 한 세대를 내려가면 40%밖에 남지 않는다. 두 세대를 거치면 원래 100%였던 지분이 16%로 줄어든다. 기업 가문을 이끌어 나가려고 해도 경영권을 행사하기 힘든 구조다. LG가 집단 지도체체와 비슷한 LG 구성원 30여명의 지분의 합을 45%대로 유지하고 그 가운데 리더십을 뽑는 가풍이 나온 이유다.
[다보스=뉴시스] 전신 기자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8일(현지시간) 다보스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 앞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3.01.19.
[다보스=뉴시스] 전신 기자 =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18일(현지시간) 다보스 한 호텔에서 열린 한국의 밤 행사에 앞서 클라우스 슈밥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2023.01.19.

만약 LG가 호주 같은 나라에 있었다면 이런 가풍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호주의 경우 상속세나 증여세가 없다. 한 가족이 기업의 지분 100%를 가졌었다고 하면 그 자녀들에게 물려줄 때 상속세나 증여세를 전혀 물리지 않는다.

단 이 상속이나 증여받은 재산을 통해 얻는 수익에 대해서만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를 45% 가량 물린다. 또 상속받은 자산을 처분할 때 같은 비율의 양도소득세를 매긴다. 가업승계를 계속한다면 가족간 재산을 나누더라도 경영권을 행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보니 LG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장자승계를 위해 경영권 지분을 몰아주는 이 모든 과정은 형제간 분란을 줄여 기업경영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목적이다. 효율적 기업경영은 주주는 물론 회사의 직원들과 고객들에게 모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LG는 이들 모두의 공동 소유물이다.

형제간 다툼이 있는 기업들 중 제대로 안정적 경영을 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것은 불문가지다. 아마도 오는 6월이나 7월 상속 재판이 본격화되면 가족간에 상채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생전 곤지암 골프장 그늘집에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잠시 쉬고 있던 구본무 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욕심없는 전형적인 시골 아저씨 같은 모습을 했다. 그는 그 직전 해인 2008년 모친인 하정임 여사를 여윈 후 진주 단목 외가집(진주 하씨 집성촌)에 들렀을 때 만났던 기자를 기억하고, "집이 단목이가? 성이 하씨가?"라며 궁금증을 못이기는 듯한 순박한 아저씨의 모습을 보였다.

이제 그는 화담숲의 나무와 바람이 되서 그 가족들을 보고 있다. 두달 앞으로 다가온 구본무 회장 타계 5주년 추도식에서 가족간에 얼굴을 붉히지 않고 서로 인화하는 모습을 화담숲에 누운 고인은 바랄 듯하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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