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의심에 녹음기 숨겼다 불법 도청 기소된 남편, 선고유예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며 몰래 녹취한 대화록을 민사소송에 제출했다 외려 불법 도청 혐의로 형사재판에 넘겨진 남편이 법원의 선처로 처벌을 면했다.

30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이 법원 형사21-2부(부장판사 김정곤·김미경·허경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40대 남성 A씨에 대해 지난 21일 선고유예 판결했다.


남편 A씨는 2020년 2월 자택에 소형 녹음기를 몰래 설치했다. 그는 직장인 아내 B씨가 남성 동료 C씨와 불륜을 벌이고 있다고 의심했다.

녹음기에는 같은 달 17일 B·C씨와 B씨의 가족이 거실에서 나눈 대화가 기록됐다. A씨는 C씨를 상대로 위자료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소송의 1심 재판부는 불륜의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취지로 같은 해 9월 A씨에게 패소 판결했다.

위자료 소송이 항소심에 돌입하자 A씨는 앞서 녹음한 대화의 녹취록을 재판부에 제출했는데, 이 과정에서 몰래 녹음기를 자택에 숨긴 사실이 들통나 고소됐다.


다른 사람의 대화를 무단으로 녹음·청취·누설하면 통신비밀보호법 16조 1항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형과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할 수 있다. 특히 이 처벌조항에는 벌금형이 없다.

A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산정하면서도 형은 선고하지 않기로 했다.

재판부는 "분쟁의 발단과 귀책 사유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불문하고 공무원이던 A씨가 위법하게 녹음한 내용을 소송의 증거자료로 제출한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초범인 점 △범행을 모두 자백·반성하는 점 △B씨와 이혼해 자녀들의 양육비를 책임지고 있는 점 △녹음된 대화의 당사자 모두가 합의를 마쳐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반영했다.

이 판결은 검찰과 A씨 모두 항소하지 않아 지난 29일 확정됐다. 선고유예는 추가 범죄로 인한 징역·금고형 확정 등 특별한 실효 사유가 2년간 발생하지 않으면 형사소송을 면한 것으로 간주한다.

한편 A씨는 C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에서 지난달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1심 판결을 선고한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민사2단독 박현진 판사는 아내 B씨가 직장으로 마사지젤을 주문했다면서도 "용도가 반드시 성인용에 국한된다고 볼 수 없고, C씨와의 부정행위에 사용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박 판사는 또 C씨가 B씨와 B씨 모친과 함께 식사한 뒤 포옹하는 등 신체를 접촉한 점도 "부정행위에 이르지 않은 친밀한 관계에서도 있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봤다. 아울러 C씨가 이른 아침·저녁에 A·B씨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 차량을 몰고 방문한 점 역시 "대부분 출퇴근 시간대의 짧은 시간"이었다며 "부정행위를 위해 방문했다고 보기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민사1부(부장판사 장창국) 또한 지난해 6월 A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C씨가 B씨와 B씨 모친과 함께 식사한 뒤 포옹했다'는 사실을 원심 판결문에서 삭제했다. A씨가 B·C를 몰래 미행하며 동영상을 불법 촬영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사1부는 "불법행위로 취득된 증거 사용을 제한하지 않으면 불법 촬영이 당연시될 우려가 크다"며 A씨가 제출한 자택 녹음 파일 역시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A씨는 상고했지만, 이를 8달여 뒤 취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