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 사?" 증권맨도 묻는다…똑똑한 놈 등장에 여의도 '술렁'

"보고서 제목이 죽어도 안 떠오르면 동료들끼리 '챗GPT(ChatGPT)한테 물어봐'라고 우스갯소리로 많이 해요." (여의도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근무 중인 20대 연구원 A씨)


'한국의 월가' 여의도도 챗GPT 열풍이다. 기업 분석, 투자 자문, IB 등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증권맨'들 역시 챗GPT 출시 이후 서로의 미래를 묻는다. 하루가 달리 무섭게 발전하는 AI(인공지능) 기술은 지금처럼 농담으로만 남을 수 있을까.
AI, 금융권도 넘본다…챗GPT 출시 후 달라진 여의도그동안 증권업계는 AI 기술을 해외 자료 자동번역, 가상인간 등에서만 부수적으로 활용했다. 그나마 투자 포트폴리오를 사람 대신 구성하는 '로보어드바이저'(robot+advisor)가 활용도가 큰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챗GPT가 세상에 나온 뒤 실제 현업에서도 점차 활용 범위를 늘리는 분위기다.

챗GPT와 같은 AI 기술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리서치부서다. A 연구원은 "증권사 리서치부서는 엑셀을 많이 쓰는데 GPT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알고리즘을 설정하면 30분~1시간 정도로도 회사 프로그램을 자동화할 수 있는 게 많다"며 "쓸 수 있는 데이터의 한계가 명확하지만, 자동화된 데이터를 쓸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

(좌)삼성증권에서 발간한 '생성형 AI, 인공지능의 한계를 넘다' 보고서. '달리'(DALL-E)에 반 고흐 스타일로 제너러티브 AI로부터 고통 받는 무능한 애널리스트를 그리라고 했다. (우)유진투자증권에서 발간한 'AI 2023년, 테마에서 산업으로' 보고서.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한 아기사자 이미지. /사진제공=삼성증권, 유진투자증권

최근 애널리스트가 발간한 리포트에서도 챗GPT의 등장이 늘고 있다.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표지다. 삼성증권, KB증권, 유진투자증권 등 이미 수많은 증권사가 달리2(DALL·E2)나 미드저니(Midjourney) 등 그림을 그려주는 AI를 이용해 보고서 표지를 제작했다.

IBK투자증권에서 퀀트를 담당하는 김종영 연구원은 지난달 초 '챗GPT를 활용한 혁신적인 리서치 방법론과 활용사례 분석'이란 제목으로 보고서를 냈다. 김 연구원은 "챗GPT가 출시된 직후부터 이를 혼자 활용해 오다가 주변 동료들에게 활용법을 공유해줬더니 반응이 좋아 아예 리포트로 발간하게 됐다"고 말했다.

애널리스트뿐만 아니라 IPO(기업공개)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A 연구원은 "IB는 사람이 하는 일이니 힘들겠지만 적어도 IPO 업무 중 공모개요를 작성하는 등 반복적인 일들은 AI 기술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RA, 애널리스트, 투자자문역의 미래는? "아직은 대체 못하지만…"

기자가 챗GPT에 에코프로 주가의 적정가치를 물었다. /사진=챗GPT 캡쳐

그렇다면 챗GPT와 같은 AI가 조만간 금융업계의 일을 대체할 수 있을까. 아직 챗GPT 수준이 초기 단계인 만큼 당장은 어렵다는 게 증권맨들의 중론이다. 실제 업무에 활용하기에는 아직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여의도의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으로 일하는 B씨는 "최근 국내에서 법률 문서 등을 해석해주는 AI 서비스가 나온 것처럼 현 기술 수준을 보면 금융권의 미래도 앞으로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도 "기업분석, 투자자문 등은 각자의 인사이트라는 정성적인 요인이 많이 들어가는 업무라 완전히 대체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아직 기술적인 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다. 챗GPT가 제공하는 데이터의 정확도가 떨어져 이를 온전히 신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또 AI의 투자 판단을 그대로 활용하기에는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챗GPT에 특정 종목에 대한 주가 전망을 물으면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는 답변이 나온다.

무엇보다 보안성 문제가 가장 넘기 어려운 산이다. 실제 미국 금융권에서도 컴플라이언스 문제를 이유로 챗GPT 활용을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는 추세다. 국내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챗GPT는 아직 리스크가 많고 정확도에 의문이 드는 영역이 많아서 아직 업무에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향후 업무 활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앞으로 충분히 사람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 블룸버그, 모건스탠리 등 미국 금융권에선 이미 자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AI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챗GPT를 전사적인 차원에서 활용하지 않고 애널리스트들이 재미 삼아 혹은 업무 효율화를 위해 개인적으로 쓰는 정도"라면서도 "모든 증권사가 AI를 활용해 자동화를 시작하려는 단계지만 국내 기업 차원에서 구독할만한 상품이 나오지 않아 활용하지 못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 분석이나 투자자문을 하는데 필요한 사람의 인사이트를 챗GPT가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술이 발전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할 것"이라며 "현 챗GPT는 이미 '구식' 모델이기 때문에 챗GPT5처럼 사람 수준의 범용 AI가 나온다면 얘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