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진하자 드러난 부실체력…"노동 유연성 강화해야"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

올해 무역수지 적자가 지난해의 60%를 이미 넘은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부진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한국무역협회는 그동안의 반도체 호황이 일시적 현상이었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며, 체질개선을 위해 노동 유연성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무협은 30일 서울 삼성동 트레이드타워에서 간담회를 열고 올해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3.5%, 수입이 6.6% 감소했다고 밝혔다(지난 20일 기준). 무역수지 적자는 295억 달러(39조원)였다. 지난해 전체(478억 달러)의 62% 수준이다.


수출은 지난 1월부터 매달 '마이너스' 행진을 보였다. 총수출 감소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60.4%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실제 지난 4월까지 반도체 수출은 40.3% 줄었다. 무협은 "위드코로나 전환 이후 컴퓨터·노트북과 주변기기, 스마트폰 등 전방 비대면 IT제품 수요가 감소하면서 반도체 수출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만기 무협 부회장은 이런 현상을 두고 "오히려 지난 몇 년이 특수한 상황이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총수출 중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13.4%다. 지난 몇년 간은 이 수치가 17~20%에 달했는데, 이게 '착시'였을 수 있다고 정 부회장이 언급한 것이다.

정 부회장은 "데이터 중심 사회로 나아가는 국면이었고, 코로나19 발발 이후 비대면 활동이 확산하는 상황이었다"며 "이 수요들이 이제 빠지면서 과거 패턴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 부문이 꺼지니까 우리 수출산업의 기반이 약화된 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정만기 무협 부회장/사진=무협

무협은 수출산업 기반 약화의 증거로 지난 2018~2021년 사이의 설비투자 감소를 들었다. 2017년 68조3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던 반도체 외 제조업 설비투자는 이후 연 40조~50조원 대로 뚝 떨어졌다. 2021년 60조5000억원으로 회복세를 보였지만 여전히 이전 수준에는 못 미친다. 규제 개혁 및 철폐를 통해 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게 무협의 입장이다.


특히 노동 생산성 문제를 해결해야 산업 기초체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주당 실근로시간이 2017년 42.5시간에서 2022년 37.9시간까지 떨어졌고, 실질최저시급도 2017년 6.82달러에서 2021년 8.76달러로 올랐지만, 노동 생산성은 제자리에 멈추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은 시간당 42.9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53.6달러)보다 10달러 이상 낮다.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무협은 주장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주요국 중 한국의 노동 유연성 순위는 97위로 중국(64위) 및 베트남(82위)에도 뒤지는 수준인 게 사실이다. 무협은 △1일(8시간)·1주(40시간) 이중으로 제한 중인 법정근로시간 기준 완화 △연장근로 '주' 단위 제한 기준 완화 및 철폐 △탄력적 근로시간 단위기간 기존 '6개월'에서 '1~3년' 단위로 완화 등의 방안을 거론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주 대만을 찾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대만도 실근로가 주 40시간 수준인데, 이제 한국이 대만보다 일을 덜 한다는 것을 알고 놀라더라. 실근로시간 단축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수출 경쟁력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당 실근로시간을 줄이거나 유지하면서도,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수요가 있는 날은 더 일하고 없을 때는 노는 방식으로 생산성을 높여줘야 한다"고 힘을 줬다.

/그래픽=최헌정 디자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