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300조 시대, DC·IRP형 규제 풀고 커닝공시 차단

금융위원회

금융당국이 이른바 '커닝공시' 규제에 나선다. 일부 금융사가 꼼수로 퇴직연금 이율을 높여 자금이 쏠리는 '자산이동(머니무브)'을 차단하자는 취지다. 일시금 형태로 받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앞으로 연금 형태로 인출이 가능해진다. 당국은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1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퇴직연금감독규정' 개정안을 다음 달 2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금융위에 따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2018년 190조원에서 지난해 335조9000억원(예상치)까지 늘었다. 금융위는 퇴직연금 300조원 시대에 보다 유연하게 적립금을 운용하게 하고 불건전 영업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만들었다.

머니무브 막는다... 비사업자도 공시 의무금융위는 커닝공시 불건전 영업 관행을 막기로 했다. 지금까지 퇴직연금사업자에게만 적용되던 공시 의무를 비퇴직연금사업자(비사업자)의 원리금보장상품에도 적용한다. 비사업자는 일부 저축은행, 증권사, 수협 등 금융상품을 제공하는 일만 가능하다.

이에 따라 사업자는 물론 비사업자의 원리금보장상품도 익월 적용할 금리를 금월 공시해야 한다. 늦어도 매월 1일로부터 3영업일 이전까지는 공시를 마쳐야 한다.


이는 지난해 연말 비사업자가 퇴직연금 사업자들이 공시한 이율을 훑어본 이후 0.1%포인트씩 더 얹어 고객을 흡수하는 커닝공시를 막기 위한 방안이다.

특히 지난해 연말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단기자금 시장이 경색되면서 300조원에 달하는 퇴직연금의 자금 쏠림이 유동성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단 우려가 커졌던 상황이었다.

앞으로 사업자는 감독 규정에 따라 금리가 공시되지 않은 원리금보장 상품은 판매할 수 없다.

수수료를 활용한 변칙 고금리 원리금보장상품도 판매가 불가하다. 지금까지 일부 사업자가 수수료를 보조금처럼 활용해 고금리 예금 등을 만들어 일부 대기업 확정급여형(DB형) 퇴직연금에만 독점 제공했다.

고영호 금융위 자산운용과장은 "가입자 간 형평에 반하는 것으로 근로자 이익과도 무관하기 때문에 수수료 제공·수취 금지를 통해 영업 관행 개선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IRP형 적립금 연금 형태로 인출 가능

/사진=임종철 디자이너

금융위는 개인형(IRP형) 상품에서 은퇴 근로자들이 적립금을 연금 형태로 인출할 수 있는 '보증형 실적배당보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1인당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지난해 약 5000만원 수준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퇴직연금을 연금 형태로 받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약 7.1%에 불과하다. 여전히 다수 은퇴자가 일시금 형태로 퇴직연금을 수령하고 있다는 얘기다.

보증형 실적배당보험은 납입보험료를 실적배당 상품(주로 펀드)으로 운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운용 이익이 발생하면 실적에 따라 추가 기간 연금을 지급하고 운용 손실이 발생해도 일정 금액을 보증한다.

단 변액연금과 달리 사업비 등을 떼 가지 않지만 보증 수수료는 부과된다. 중도해지 시 이미 납입한 보증수수료를 차감한 실적이 반환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금융위는 보증수수료 요율 검증 절차 등을 마련하고 상품개발·심사 등을 거쳐 내년 이후 출시할 예정이다.

이 밖에 금융위는 확정기여형(DC형)과 IRP형 퇴직연금의 이해상충 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감독규정 개정을 통해 현재 적립금 대비 10%인 계열회사 증권에 대한 편입한도를 DC형은 20%로, IRP형은 30%로 높이기로 했다. 가령 A자동차 근로자 X가 IRP계좌를 통해 A자동차 계열사인 A중공업 발행 회사채를 퇴직연금 적립금의 30%까지 편입할 수 있다.

또 퇴직연금 적립금의 100%까지 편입할 수 있는 상품 범위는 확대한다. 상품 범위에 환매조건부채권(RP)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을 추가한다.

고 과장은 "입법예고 종료 후 증권선물위원회, 금융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3분기 중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