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궤짝에 담겨온 군인父…70년만에 순직 인정에도 "보상금 못줘" 왜?

박태순씨(72) 아버지 고 박경복씨(향년 22세)는 한국전쟁 중인 1953년 1월 31일 대전 육군 63병원에서 사망했다. 국방부는 2022년 69년 만에 박경복 이병의 죽음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2022년 7월 태순씨와 가족들은 고향에 묻었던 아버지 유골을 수습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영상=박태순씨 제공

"저는 군사고 사망자의 딸 박태순입니다…현충일만 돌아오면 더욱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픕니다."

박태순씨(72)는 숨진 아버지의 군인사망보상금을 지급해달라며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재정관리단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박씨 아버지는 전쟁통에 혼인신고와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입대한 뒤 숨졌다. 국방부는 "1953년 사망 당시 동일 호적 내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군인사망보상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22세 청년이 입대 두달 만에 사과궤짝에 담겨 유골로 귀향

지난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자택에서 박태순씨(72)씨와 남편 함환섭씨(77)가 고 박경복씨 사망사건에 대해 설명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사진=정세진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자택에서 만난 박태순씨는 남편 함환섭씨(77)와 함께 군에서 숨진 아버지에 대해 설명하며 눈물을 흘렸다.


박씨는 1951년 9월25일 경북 상주시 외서면에서 고(故) 박경복·황두분씨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1952년 11월쯤 초가지붕을 덮고 있던 아버지에게 징집관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입대를 해야 한다며 집을 떠났다.

얼마 후 박씨 어머니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아버지로부터 소를 팔아서 돈을 마련해 오라는 연락을 받고 훈련소에 면회를 가 돈을 건네주고 왔다고 한다.

1953년 2월 초 군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씨 어머니와 사촌형제들이 시신을 인수하려 논산 훈련소로 찾아갔다. 훈련소 관계자들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대전 육군병원으로 가보라고 했고 대전에서는 다시 논산으로 가라는 말뿐이었다고 한다. 결국 유족들은 시신을 넘겨받지도 못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박씨는 "며칠 후 면사무소 직원이 군인 2명과 화장한 아버지 유골을 사과궤짝에 담아서 가져왔다"며 "사망 원인도 경위도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22살에 남편을 잃은 박씨 어머니는 재산 문제로 다툼이 일어나 시댁에서 쫓겨났다. 고아가 된 박씨는 5촌 당숙의 양자로 입양됐고 3살이던 1954년에 출생신고와 함께 호적에 올랐다.

전쟁이 끝난 후 이장이 찾아와 '죽은 사람이 호적에 그대로 있으니 집에서 죽은 걸로 신고하자'며 유족을 설득했고 박씨 아버지의 제적등본에는 1951년 12월 17일 외서면 집에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됐다.
70년 만에 아버지 사망경위 알게 됐지만…국방부는 보상금 지급 거절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발견한 고 박경복 이병의 병상일지. 진상위는 1953년 1월 31일 제63육군병원 군의관 유광흥 대위가 발급한 사망진단서도 발견했다. 박경복 이병은 영양실조로 입원해 20일 만에 사망했고 대전화장장으로 보내졌다. /사진=박태순씨 제공

박씨는 2021년에서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로부터 "박경복님이 군 복무중 영양실조로 사망했다"는 조사결과를 받았다. 국방부는 박경복 이병의 순직을 인정했고 고향 뒷산에 모셨던 아버지 묘를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진상위 조사 결과 육군 제2훈련소 소속 훈병 박경복은 1953년1월 10일 영양실조로 입원해 같은 달 31일 오전 11시 30분 사망했다. 박씨는 70년 만에 아버지 군번과 병적기록부를 확인했다.

이후 여러 차례 소송 끝에 박씨는 생년월일을 정정했고 박경복씨와 친생자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 받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군인사망보상금을 신청한 박씨에게 국방부는 "(대통령령인) 규정에 따라 급여 사유 발생일(사망일) 당시 동일 호적 내에 있는 유족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보상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2007년 이후 제적등본 수정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죽기 전에 아버지 명예 회복하고파"

박태순씨 아들 함석문씨가 병무청으로부터 확보한 박경복씨 병적기록부에는 '박경호'로 기재돼 있었다. 병적기록부에는 2022년 3월29일에 '박경호 32년 5월 20일→박경복 32년 5월 22일'로 정정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사진=함석문씨 제공

박씨는 "내가 죽기 전에 아버지 죽음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군에서 가혹행위로 아버지를 죽인 후에 덮으려고 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건강했던 22세 청년이 입대 2달 만에 훈련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진상위 조사관은 "가혹행위 여부를 확인하려면 당시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 2명 이상의 증언이 필요한데 증언해 줄 목격자 등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씨 아들 함석문씨(46)는 "병무청에서 외할아버지 병적기록부를 확보했는데 이름은 박경호라고 돼 있고 사망원인은 전사로 돼 있다"며 "생년월일도 실제와 달랐는데 원본 미비로 1973년에 보완했다고 적혀 있었다. 병적기록 관리도 허술해 외할아버지 죽음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박씨의 법률 대리인은 "폐지된 호주제를 근거로 군인사망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국방부 태도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방부를 상대로 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6개월 이상 걸릴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국방부 관계자는 "제적등본상 고인의 사망신고 당시 누나는 고인과 동일호적내 있어 사망보상금 청구가 가능했으며 청구하지 않았더라도 청구시효 5년이 이미 경과했다"며 "향후 청구인이 제기한 행정소송을 국군재정관리단에서 수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고 박경복 이병 유해. 딸 박태순씨 가족사진과 부인 고 황두분씨(오른쪽위) 사진 등이 붙어있다./사진=박태순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