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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窓]콘텐츠는 범죄의 동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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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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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6.07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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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교수
임대근 교수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23세 여성이 영어과외를 하려는 고등학생으로 위장해 또래 여성을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언론과 전문가의 여러 해석이 분출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평소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 범죄수사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관심이 많았다"며 "살인에 대한 충동을 느꼈고 실제 살인을 해보고 싶어 범행했다"는 진술을 공개했다. 범인이 살인 직전 영화 '화차'를 보았다는 소식도 보도됐다.

변영주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화차'는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신분을 바꾸는 캐릭터를 그렸다. 차경선(김민희 분)은 자신의 과거를 지우기 위해 정체성을 세탁하려고 결심한 뒤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자신이 '그녀'인 양 살아간다. 그러나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타인의 정체성을 훔쳐 신분을 바꾸는 캐릭터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더글러스 케네디가 '빅 픽처'에서 그려낸 벤이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며 엄마로 위장해 오누이를 위협하는 호랑이도 그렇다.

이번 사건은 대체로 개인의 일탈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범죄와 콘텐츠 사이 상관관계에 의혹을 보내는 시선도 적지 않다. 범인이 수사장르나 범죄장르 영화와 드라마를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사회적 범죄의 직접적 원인을 콘텐츠라고 지목하는 입장은 아직도 힘센 논리로 작동한다.

콘텐츠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현실 그 자체라고 할 수는 없다. 콘텐츠는 현실을 그럴듯하게 다시 보여주는 '재현물'이다. 재현과 현실의 관계에 관한 수많은 연구는 재현이 현실과 비슷한 이야기를 상상함으로써 현실에 대해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을 준다고 말한다. 현실과 재현의 관계를 다룰 때 설령 실제 이야기를 재현한 콘텐츠도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은 보편적으로 수긍하는 논리가 됐다.

콘텐츠 향유자는 대체로 이런 사실을 이미 내면화한 상태에서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 콘텐츠는 때때로 매우 현실 같아서 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성찰을 가져다주지만 콘텐츠와 똑같은 현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우리는 화면을 물들이는 잔인한 살인사건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 아름다운 화면 위에 펼쳐지는 행복한 사랑의 모습이 현실과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안다.

범죄영화를 보면 범죄 충동이 생긴다는 논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아마 우리 사회는 진작에 그칠 줄 모르는 범죄의 천국이 됐을 것이다. 그러므로 콘텐츠가 곧 범죄의 원인이라는 진단은 옳지 않다. 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없다. 콘텐츠는 현실과 비슷한 허구의 세계를 다루면서 범죄를 소재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콘텐츠 향유자는 현실과 허구를 확실히 구분하고 이를 현실로 옮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범죄가 일어나는 요인은 다양하다. 개인 성격, 윤리의식, 사회요인이 복합적으로 작동한다. 우리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지만 가정, 학교, 직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일상을 보낸다. 음악이나 미술, 스포츠 등의 활동에도 몰입한다. 범죄요인을 콘텐츠와 직결하는 논리는 개인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요소를 무시하고 이른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우리를 데려간다.

우리가 더욱 안전한 사회에서 살아가길 원한다면 타인을 존중하는 윤리와 도덕을 더욱 충실하게 가르치고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노력을 거듭하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저마다 재능과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서로 도와야 한다. 그렇다면 콘텐츠는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 범죄를 예방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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